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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 이모야 Feb 09. 2022

당신이 존재하기에 사랑합니다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날

- 어머! 완전히 까먹었었어. 어떻게 해


엄마의 생일이 지나버렸다며 걸려온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나도 언니도 누구랄 것 없이 '미쳤나 봐', '왜 그랬을까'연신 입에서 쏟아냈다.


언니 결혼 전에는 다른 식구 모두 양력으로 쇠고 엄마만 음력 생일을 챙겼던 터라 헷갈리더라도 양력으로 챙겨주곤 했는데 편의상 양력으로만 챙기기로 약속한 지 8번째 해에 이런 실수를 한 거다.


매해 알림 설정 마냥 엄마 생일 잘 챙겨주라고 전화하시던 할아버지의 기억력도 그쯤부터 희미해지셔서 우리가 챙기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기 십상이었다. 죄송하고 감사하게도 엄마 생일 당일에 아빠랑 두 분이서 소소하게 외식 데이트를 하고 오셨단다. 내년에도 또 있는 생일이라며 서운함은 표현하지 않으셨다.

아빠생일 케이크 Photo by Sookyong Lee

우리 가족은 서로의 생일을 잘 챙기는 편이다. 내가 외국에 나가 있을 때에도 나 대신 생일 상을 차려먹는다는 놀림인지 챙김인지 모호한 전화통화는 필수였다. 이와 반대로 가족들이 한 번도 생일을 챙겨준 적이 없다는 친구도 있었다. 어쩌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내 눈에는 자상한 우리 형부도 식구들 생일을 안 챙기는 것이 일상이었어서 연애시절 언니와 엄청 싸웠다고 했다. 없는 살림에도 엄마표 밥솥 케이크에 꼬박꼬박 초를 꼽고 생일 축하노래를 불렀던 우리 가족에게는 다른 세계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모두 미션스쿨을 다닌 덕에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참 많이도 불렀다. 그때는 그 표현이 오글거리고 억지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 말만큼 생일을 기념하기에 좋은 이 없다.


어릴 적에는 친구들을 불러 모아 왁자지껄 먹고 떠들고 노는 파티였다. 철이 들고나서부터는 '생일 축하해'라는 말과 함께 '네가 내 아들딸로/ 형제로/ 친구로/ 애인으로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큰 선물을 받게 되었다. 꼬꼬마 시절 9살 어린 내 동생이,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간 조카들이 꼬불꼬불 글씨와 엉성한 그림으로 사랑을 표현한 생일카드는 그 어떤 선물보다 소중하다. 그리고 형식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맛있는 음식 앞에 다 같이 모여 그 순간을 나누는 따뜻한 의식은 가능한 꼭 지키려고 한다. 그 시절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이자 최대의 사랑 표현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물질적인 선물이 없으면 서운 한티 팍팍 내던 시절도 있었긴 하다.


이런저런 의미에서 각자 삶에 정신이 없다는 핑계로 엄마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평소에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자식이 셋이나 있는데 딱 그 하루, 누구 하나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기도 했고 큰 사고를 당하고 난 뒤에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커졌다. 특히, 어느 순간에도 나를 응원하고 내 옆을 지켜줄 가족들의 소중함과 고마움도 깊이 느끼고 있다. 지금 모습이 어떠하든 간에 건강히 태어나서 지금까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축하하고 서로 사랑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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