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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 이모야 Jul 13. 2022

날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프로필 사진 한 장

몇 년 동안 연락이 없던 이들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한두 명이 아니라  일주일 새 못해도 다섯은 넘었다. 조용하던 내 전화기가 요란스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사람은 잘 챙기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여기저기 연락을 자주 하는 타입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이 상황이 갑작스럽고 다소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거리 둘 이유가 없는 이들의 연락이었기에 관계 정리대상에 넣으면 안 된다는 하늘의 뜻이거나 누군가를 기억해야만 하는 시기인가 보다며 희한한 상황을 스스로 일축시키고 넘겼다.


그런데 알고 보니 프로필 사진이 한몫한 거였더라.


다들 인사와 함께 내 인상, 분위기 변화를 콕 집어 얘기했다. 그중에 이름로는 긴가민가하다가 얼굴 보고 생각난 사람도 있을게다. 꽤 긴 시간 동안 풍경이나 그림프로필 사진으로 내걸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사진이 찍혀서 얼굴바꾼 거였다. 내 얼굴 사진 하나가 이런 파장을 가져올 줄이야.


Photo by Sookyong Lee

서로 잘 지내냐는 안부와 함께 근황을 짧게 나누었다. 비록 그동안 직접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종종 뭐하고 사나  생각했었다 했다.


- 그래, 그렇게 간간히 기억하는 것만으로 됐어. 거리도 있고 각자의 삶이 있는데 어떻게 자주 연락하고 만나니.


20년 넘게 알고 지낸 지인이 믿음과 배려가 짙게 깔린 말을 남겼다. 그리곤 내가 사는 제주에 오면 연락하겠노라고 기약 없는 약속으로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어찌 보면 무심한 말이었지만 나는 마냥 고마웠다. 어느 날 문득 뜬금없이 연락해도 어제도 만났던 이처럼 편안한 관계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나를, 내가 그 사람을 추억한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살아온 날들이 따뜻하고 풍성해지는 기분이었다.




얼마 전 부활한 SNS 조상님을 열었다. 쌓여있는 사진과 짧은 글들은 매일 밤 추억 여행하기에 충분했다. 같이한 이들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도 그 시절 그 순간의 기억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그리곤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펜팔 친구의 이름이 머릿속에 번뜩였다. 한 번도 만나본적 없는 제주소년,  그 친구 한번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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