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 1년 넘게 있으면서 가장 어렵고 신경이 쓰였던 것은 단연 음식이었다. 그 당시 필자는 스웨덴 가정에서 함께 살면서 저녁식사를 책임지는 입장이었던지라 다소 편협한 식문화에 새로운 음식을 내놓는 것이 부담이었다. 다행히도 자국 내에서 원활한 공수가 어려운 식재료는 세계 각지에서 수입하여 상대적으로 안정된 물가가 유지됐다. 하지만 사람 공임이 들어간 외식비는 상당히 비쌌다.
비싼 물가로 외식보다 더 자제하게 되는 것은 술 한 잔 하러 나가는 것이었다. 정부에서 시스템볼라겟(systembalget)이라는 주류전문점을 통해 주류 소매유통을 독점 관리하는 데다가 기본적으로 술에는 알코올 함량에 따라 고액의 주류세뿐만 아니라 부가가치세 25%까지 소비자에게 추가 징수하기 때문이다. 국가를 지탱하는 안정적이고 주된 예산확보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가 점점 길어지고 따뜻한 햇살이 가득 해지는 계절이 올 때쯤 특출한 특산품이 없는 이 나라에 자랑거리가 하나 생긴다. 바로 하지감자와 딸기.
단맛보다는 새콤한 맛이 더 강한 딸기는 옛 맛(개량종이 보급되기 이전)이라며 좋아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달달한 맛에 길들여진 이들은 시기만 하다며 꺼려지는 맛이다. 그래도 달달한 초콜릿이나 생크림, 아이스크림과는 찰떡궁합이다. 솔직히 스웨덴 하지감자는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자랑할게 감자뿐이라는 점이 척박했던 강원도의 옛 모습이 떠오르게 하지만 단맛이 느껴질 정도로 한국 감자만큼 맛있다.
정말 감자는 스웨덴 사람들이 자랑할 만 아이템이다. 보드카의 원조를 다투는 러시아나 폴란드보다 더 유명한 지금의 스웨디시 보드카 ABSOLUT(앱솔루트)를 있게 한 주 재료이기 때문이다. (단, 현재 ABSOULT의 주원료는 겨울밀이다.)
감자는 밀이나 다른 곡류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했기 때문에 1790년대부터 주류생산의 주원료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800년대 중반부터는 증류 기술과 기계설비의 발전으로 보다 쉽게 다뤄지게 되었고 1879년 앱솔루트보드카의 만든 Lars Olssons Smith가 주류생산의 체계화를 이뤄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특정 선술집 호스트에게 보드카 판매 독점권을 부여하는 등 소량생산과 배급의 제한이 있던 시대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웨덴 정부는 1917년부터 주류유통을 직접 통제하였고 자국 내에서 생산되는 보드카의 원재료도 감자로 지정하고 제한하였다. 같은 해, 앱솔루트는 창립자의 타계(1913년) 이후에 VIn&Sprit 그룹을 만들어 관리되었고 그때부터 ‘Absolut Rent Brännvin’(absolutely pure blendy, 정말 맑은술)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를 시작하였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앱솔루트 브랜드의 시작인 것이다.
1979년부터는 ABSOLUT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진출하여 연간 1억 리터 이상(2018년 조사기준)이 판매되고 있다.
앱솔루트는 내수보다는 해외 수출을 위한 생산을 조건으로 감자 외 다른 재료를 써도 된다는 정부의 유일한 예외 허락을 얻는다. 그렇게 100년이 넘도록 오직 오후스(Åhus, 스웨덴 남부 스코네의 작은 지방)에서 재배되는 재료(겨울 밀)와 물만을 이용하여 그 지역에서 생산하며 ‘One Source and One Community’라는 자부심을 계속 지켜오고 있다.
-오후스는 우리나라 중남부지방의 기후와 유사하다. 스웨덴이라고 어디든 항상 춥지 않아요~
재미있게도 그런 자부심을 갖고 있는 회사가 사실 더 이상 스웨덴의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졌다. 1879년 창립이래 여전히 스웨덴 스톡홀름에 본사를 두고 있으나 스웨덴이 EU에 가입(1995년)하면서 앞서 말한 주류세 등의 이슈로 2008년에 프랑스 그룹(PernodRichard)에 팔았다. 창립자도 본사도, 주재료를 포함한 생산과정도 모두 스웨덴 것이지만 서류상 주인은 달라진 것이다. 스웨덴 국민들은 악명 높은 세금제도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말하기도 한다.
ABSOULT flaskor by Emoya
솔직히 앱솔루트 보드카를 프리미엄급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ABSOULT 하면 바로 떠오르는 세련된 병 디자인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스웨덴에는 최근까지 감자전분으로 만든 맛없는 보드카가 대부분이었고 앱솔루트를 흥행으로 이끈 드림팀이 7가지 감자로 연구 개발해서 출시한 Kalsson’s Gold(2006)라는 보드카가 그나마 제대로 된 감자 보드카라고 할 수 있다.
앱솔루트 보드카는 스웨덴 사람들이 자랑하는 감자로 시작하였으나 더 이상 감자를 재료로 사용하지도 않고 스웨덴의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