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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 이모야 Apr 11. 2022

스웨덴 부활절 필수 아이템

그 깃털 가지 버리지 마오

따스한 햇살과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기분 좋게 만드는 4월 초, 이러다 갑작스레 눈발이 날리고 나면 스웨덴에는 진정한 봄이 온다. 아주 짧게.


4월이 되면 길가엔 부활절 준비로 새로운 장식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 국교(종교)는 루터파 개신교인 나라이지만 일상에서는 그 특색이 드러나지 않는다. 유럽 내 가톨릭 문화권의 영향인지, 어떻게 해서든 하루라도 더 놀려는 속셈인지 알 수 없지만 부활절과 성탄절은 정말 거하게 챙긴다. (참고로 스웨덴은 국교인 루터교의 비율이 가장 높으 종교활동의 목적보다는 절세나 아이들 체험활동의 이유로 서류상 신자 등록만 하는 경우가 많다)


봄이, 부활절이 왔음은 인테리어 소품 매장에서 제일 먼저 알아차릴 수 있다. 노랑, 주황 봄을 알리는 화사한 패턴이 즐비한 소품들의 향연을 모른 채 할 수가 없다. 달걀(다산, 비옥함, 새 생명을 의미)과 토끼(루터교에서 유래된 알 나눠주는 토끼(풍요, 나눔을 의미) 이야기) 모양의 장식품과 형형 색색의 깃털 장식 생소하면서도 눈에 띈다.


날씨가 아무리 좋아도 만나서 같이 놀 사람이 없던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적십자를 향해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스웨덴어 수업은 없었지만 부활절을 앞두고 적십자 회원이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깃털을 철사에 꼬아 나무에 묶는 자원봉사(라고 쓰고 '무급노동'이라고 읽는다)를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스웨덴어 듣기 연습이라도 할 요량이었다.


열댓 명의 어르신들이 잔 깃털을 폴폴 날리며 깃털 장식 만들기 삼매경이셨다. 벌써 보름째 하고 계신단다.(작업량과 인원수로 봤을 때, 한국이었으면 일주일 안에 이미 끝냈을 양이었다.) 이렇게 만든 장식은 부활절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자선 바자회에서 판매하기도 하고 인근 상점에 직접 팔아 수익을 남기신다고 한다.


다정한 할머니들과 어버버버 말하고 우쭈쭈쭈 칭찬받으며 하하호호 이야기하는 장면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사치였다. 스코네(Skåne/스웨덴 남부지역) 생활 7개월째, 이제 웬만한 스웨덴어는 눈치껏 알아듣는다고 꽤나 자부했는데 그곳에 계신 대부분 어르신들은 고약한 남부 사투리(Skånska, 스콘스카)를 쓰는 분들이었다. 제주도 사투리 급이라 듣기 연습이고 뭐고 귀머거리가 되어버려서 방법이 없다. 그냥 구석에 조용히 앉아 손끝이 시뻘겋게 아리도록 철사를 꼬았다. 묵언수행을 하고 있으려니 오만가지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한국에서도 부활절에 달걀을 꾸미고 나누는 것은 많이 보았으니,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과 생명 탄생의 환희 등등을 의미하는 것 까지는 이해하겠다. 그런데 왜 부활절에 깃털 장식을 하는 것일까. 또 굳이 이 나뭇가지에.

Drawing By Mimmi

살아있는 박물관 급 할머니들께 어찌어찌 여쭤보니 한바탕 대 토론이 벌어졌고 그 결과는 허무했다.

글쎄, 모르겠는데. 그래도 예쁘잖니.


에잇. 이럴 땐 구글링이 답이다.


달걀은 예로부터 봄의 햇빛의 의미하는 밝은 색으로 칠해졌으며, 삶지 않고 위아래 구멍을 뚫어 내용물을 빼내고 장식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인지 부활절 음식에는 달걀을 이용한 요리가 꼭 포함된다. (사실 스웨덴 사람들이 잔치를 벌일 때 삶은 달걀 요리가 들어가지만 부활절, 성탄절 음식 구성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말한다. 마치 떡국과 송편이 우리네 명절을 구분하듯이 말이다.)


1800년대부터는 종이로 된 달걀 모형에 달다구리(godis, 구-디스)를 넣기 시작했고 자작나무에 색깔 있는 깃털(fjäder, 피에데ㄹ)로 장식하는 풍습은 1880년대 즈음부터라고 한다.

(출처: https://sweden.se/culture-traditions/easter)


자작나무에 색 깃털을 장식하는 부활절 풍습은 주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이렇게 깃털이나 달걀 장식으로 꾸며진 것을 포스크뤼스(påskris/easter twigs)라 부른다. 17세기에 행했던 성금요일(långfredag/good friday) 채찍질(예수의 고난을 상기하고 묵상하는 일종의 의식)의 영향으로 자작나무 가지를 사용하고 있다. 예전에는 자작나무도 숲에서 직접 베어 왔지만 요즘에는 동네 슈퍼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재미있게도 이 자작나무 가지는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물이나 흙에 꼽아두면(물꽂이 또는 삽목) 새순이 돋고 자라난다).


왜 색 깃털로 꾸미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찾기는 어려우나 이른 봄에 부활절 장식을 위한 꽃이 충분하지 않아 색 깃털로 대신 꾸미게 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출처: https://www.allas.se/inredning/darfor-anvander-vi-paskfjadrar).


그래도 속 시원히 풀리지 않는 호기심에 사전을 찾아보니 스웨덴어  fjäder(영어 feather)의 첫 번째 뜻은 깃털이요 두 번째 뜻은 스프링(용수철)이었다. 여러 자료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부활절은 시기상 봄에 있으며 여러 가지 장식 또한 다산이나 새 생명에 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다시 돌아와, 스프링은 영어로 spring 즉, 봄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러한 시기적 이유와 다른 장식의 의미에서와 같이 생명이 움트는 봄이기에 언어유희 측면에서 깃털을 쓴 것이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그리고 정말 스웨덴스럽게도 동물보호 차원에서 칠면조나 다른 조류의 털이 아닌 인조 깃털을 쓰자는 대대적 운동과 함께 인조 깃털만 취급, 판매하겠다는 각 도시별 선언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아무튼 다들 따뜻한 에너지 넘치는 행복한 부활절 되시길.


글라드 포스크 (glad påsk!!)
.



지난 스웨덴 워킹홀리데이 중에 발견했거나 궁금했던 스웨덴 생활과 문화에 대해 공유하고 있습니다. 글 내용과 관련한 스웨덴어는 별도의 블로그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깃털 장식 관련 에피소드(feat. 스웨덴어 공부)


 본 매거진 내 글과 그림, 사진의 무단 도용 금지

이모야가 글 쓰고, 밈미가 그림 그리고 올라가 검토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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