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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 이모야 Aug 10. 2022

짭짤한 여름밤의 파티

원 없이 풀어지게 먹는 날

3면이 바다인 스웨덴에서 신선한 해산물 먹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생선을 사고자 하면 식초나 토마토 같은 양념에 절여있는 것이나 건조되어있거나 훈연되어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외 다른 해산물은 냉동상태다. 생물이 마트에 있어도 가격대가 높아 특별한 날에나 다 함께 먹으려고 구매하는 특식 재료다. 부두 근처 피시 마켓에 간다 해도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다. 그나마 연한 식감을 좋아하는 스웨덴 식문화 덕분에 생연어는 상대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다. 반면 노르웨이가 가까우니 고등어가 저렴할 것이라는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다. 어마어마한 인건비가 동반되어 한국에서 사 먹는 노르웨이산 고등어나 제주산 고등어보다 가격이 더 나갔다. 


가끔 냉동 해산물을 파는 상인이 냉동차를 타고 주택가를 돌아다니며 호객행위를 했다. 내가 살던 집은 예전에 구매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상인이 직접 전단지를 들고 초인종을 누르는 적극성을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경험한 스웨덴 사람들은 서로가 불편해질 수 있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다. 즉, 상업적일지라도 예상치 못한 이의 방문은 극히 드문 일이다.)      


우리나라에 비해 해산물 섭취가 어려운 이 나라에 한줄기 빛 같은 축제가 있다. 백야가 있는 여름의 끝자락 8월, 제철에 즐기는 가재 파티(kräftskiva, 크래프ㅌ휘바)다. 추위의 시작을 앞두고서 조금이라도 야외활동을 하려는 목적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족이나 친구들과 집에서 즐기기도 하고 지역 커뮤니티 사람들끼리 모여 아파트 앞마당에서 밤새 즐기기도 한다. 예전에는 휴가를 즐기는 강가 옆 여름 별장(sommarstuga, 솜마ㄹ스투가)에서도 많이 했다고 한다.(재료 특성상 냄새나 쓰레기 처리에 어려움이 있어 편의상 야외에서 여는 경우가 많다.)     


이 민물가재(kräft, 크래프ㅌ)의 역사는 15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에는 스웨덴 귀족들만이 껍질채 신선하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식재료였으며 중산층은 남은 꼬리 살을 발라 소시지나 패티, 라구, 푸딩 등으로 만들어 먹었다. 1800년대 중반부터는 요즘과 비슷한 형태로 즐기기 시작했으며 중간계급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1900년대에 들어서 스웨덴 전역에 민물가재 낚시가 유행하자 정부에서는 남획을 막기 위해 민물가재의 제철인 8~9월에만 낚시를 허용하였고 이 기간이 오늘날 민물 가재 축제로 자리 잡았다. 그 후, 늘어나는 수요에 발맞춰 터키나 중국,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면서 언제든지 취식이 가능해졌고 가격이 내려가 모두가 편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스웨덴 산도 있지만 가격이 더 비싸다. (마치 한, 중, 일 중 우리나라만 쇠젓가락을 쓰게 된 구전의 흐름과 비슷하다. 왕실과 양반들이 놋그릇과 놋수저를 쓰는 것을 선망하던 평민들이 쇠로 따라 만들어 쓰기 시작한 것처럼)     


예전에는 직접 강에서 낚시한 민물가재를 삶아서 먹었었지만 요즘은 삶아서 냉동된 제품을 사다 먹는다. 마트에서는 함께 곁들일 새우나 랍스터 같은 다른 갑각류도 함께 시즌 상품으로 판매한다. 이런 냉동 상품은 별도의 조리도 필요 없다. 파티 전에 냉장고에서 서서히 해동했다 예쁜 그릇에 소복이 쌓아 올려 내놓으면 끝이다. 차게 먹는 음식인 데다 장식할 딜(허브)도 함께 들어있어 따로 신경 쓸 것도 없다.     


Photo by Anna Hållams/imagebank.sweden.se


8월 첫 번째 수요일에 시작하는 이 파티는 다소 유난스러운 면이 있다. 붉은 가재가 그려진 고깔모자와 밝게 웃는 보름달 장식, 가재를 먹기 위한 별도의 도구는 물론, 먹는 방법을 따로 소개하는 동영상까지 있다.(가재가 그려진 테이블보나 그릇, 앞치마, 냅킨은 옵션이다.) 한국에서 게와 새우를 열심히 먹었던 사람인지라 먹는 방법이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맛있게 즐기려면 체면 따위 다 내려놓고 손으로 헤집고 입으로 쪽쪽 빨아내서 먹어야 했다. 간간한 수프와 묵직한 파이까지 곁들여서 몇 시간을 먹고 즐기다 보면 배불러서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은 기본이요, 냄새나고 끈적이는 손가락과 독한 (snaps, 스납스)로 숙취까지 얻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스납스를 마시면서 부르는 노래들(snapsvisor, 스납ㅅ뷔소ㄹ)도 그렇고 종이로 된 우스꽝스러운 모자와 장식을 보며 ‘오늘 하루만 망가지며 놀자’ 작정하는 의미로 하는 것들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먹고 마실 수 있을 때 즐겨!
Skål! Helan Går!
.


<자료출처>

- https//www.sweden.se

- https://visitsweden.com/what-to-do/culture-history-and-art/swedish-traditions/more-traditions/crayfish-party/



지난 스웨덴 워킹홀리데이 중에 발견했거나 궁금했던 스웨덴 생활과 문화에 대해 공유하고 있습니다. 글 내용과 관련한 스웨덴어는 별도의 블로그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민물가재 파티에 대한 추억...(feat. 스웨덴게이트)


 본 매거진 내 글과 그림, 사진의 무단 도용 금지

이모야가 글 쓰고, 밈미가 그림 그리고 올라가 검토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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