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홀리데이는 보통 최장 1년 비자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한 번의 생일을 보내게 되는데, 타국에서 맞는 생일은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가끔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 두어 명은 있었으나 생일날에 모여 파티나 식사를 할 여건이 안되었고 그나마 오페어를 시작할 적에 아이들 엄마가 내 생일을 체크해뒀기에 같이 사는 식구들과의 생일이 기대되었다.
생일날 아침,
그랏티스 포 푀델세다겐 (grattis på födelsedagen/ happy birthday to you)!!!
오페어 맘은 눈곱도 제대로 떼지 못한 나를 향해 축하인사를 했다. 아침부터 축하하는 것이 스웨덴 전통이란다.
그런데 케이크를 구워주고 싶지만 아이스크림으로 대체하면 안 되겠냐고 양해를 구한다. 고작 5월이었지만 하필 그 주 내내 해가 지글지글해서 도저히 뜨거운 오븐을 돌릴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스웨덴에 왔으니 프린세스 케이크가 준비된 생일파티를 기대했었는데 차마 내색할 수 없었다. 괜스레 한국에서는 여름철에 아이스크림 케이크로 많이 대체한다는 얘기를 꺼내며 아쉬움을 감췄다.
오페어 맘은 집 근처 슈퍼에서 대용량 아이스크림을 후다닥 사 왔다. 큼지막한 그릇에 아이스크림을 푹푹 퍼서는 초코시럽을 빙빙 둘러주었다. 햇살 좋은 야외 식탁에 아이스크림을 세팅하더니 무언가를 급히 찾는다. 그건 바로 테이블 용 소형 국기. 생일날에 빠질 수 없는 장식이라나 뭐라나. 그렇게 간소한 생일파티를 준비하곤 아이들과 함께 대열을 맞춰 서서 노래를 시작했다. '암~ 너는 오래오래 살 거야' 하면서 으쌰 으쌰 장수를 기원하는 생일 노래....
응, 네가 살기를 바라.(반복) 그래, 네가 100살까지 살기를 바라. 암~ 너는 살 거야.(반복) 아무렴, 너는 100살까지 살 거야.
나 혼자만 앉아서 그들의 노래를 들으려니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가족들도 쭈뼛쭈뼛 민망해하면서도 노래를 끝까지 불러줬다. 후하고 불어 없앨 촛불이라도 있었으면 민망함이 덜했을까. 그래도 신경 써서 챙겨준 식구들이 고마웠다.
백살까지 살아라 by Mimmi
이 생일 축하 노래는 끝에 후라(HURRA)라고 외치는 것이 키포인트다. 번역하자면 만세, 아자, 지화자, 오예 정도 되겠다. 일반적으로 4번을 외치지만 남부 Skåne(스코네) 지방 사람들은 3번만 한다고 한다. 혹시나 스웨덴에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를 일이 있을 때는 일단 힘차게 세 번 하고 눈치껏 마무리하면 된다. 역시나 마흔이 넘은 스웨덴 사람도 후라를 외치며 서로의 눈치를 엄청 본다. 마치 눈치게임을 하는 것 마냥.
혹시 세 번만 외치고 끝난 사람을 발견했다면..."애듀 스코닝?"(Är du skåning? / Are you from Skåne?)하고 아는 척하며 스웨덴 사람과의 대화를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무튼 생일 맞은 모든 이들 만수무강하소서.
후라! 후라! 후라! (후라!)
지난 스웨덴 워킹홀리데이 중에 발견했거나 궁금했던 스웨덴 생활과 문화에 대해 공유하고 있습니다. 글 내용과 관련한 스웨덴어는 별도의 블로그에서 다루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