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초등학교 방학숙제로 우표를 모아 제출한 적이 있었다. 집으로 오는 우편뿐만 아니라 동네 문방구에서 외국 구제 우표도 사서 끼워 넣었다. 종종 조부모님이나 은사님들께 새해 안부인사차 엽서를 보내거나 또래 친척들과 시답지 않은 말과 스티커를 잔뜩 붙인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내가 방학 동안 얻을 수 있는 우표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웬만한 안내나 고지는 문자와 이메일로 처리하는 요즘 시대에 그야말로 추억이 되어버린 이야기다. 가끔 우체통에 꼽히는 우편물은 이미 사전 납입된 스티커나 인쇄된 것이니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이들은 우표나 크리스마스씰의 존재를 알지 의문이다.
frimärken by Emoya
내가 스웨덴에 지냈던 2017년, 집으로 온 우편물(brev, 브리에ㅂ) 붙은 우표(frimärken, 프리메ㄹ켄)가 반가운 나머지 버려진 우편봉투를 주워 와 고이 모셔 두었다. 서른을 훌쩍 넘은 나이였음에도 새로운 우표만 보이면 조심조심 떼어내서 노트 뒤에 붙여 모으기 시작했다. 특히 가족의 생일이나 부활절, 성탄절에는 유독 많이 생겼는데 내일은 어떤 우표가 더 생길지 기대하고 기다리게 되었다.
하루는 다른 나라로 휴가를 갔었던 스웨덴 친구가 손글씨를 가득 채운 그곳의 기념엽서를 보냈는데 이미 실시간으로 사진과 메시지를 받았었음에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직도 우표를 붙여 우편을 보내는 그들의 모습이 21세기와는 안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정감 있었다. 물론 고지서나 공공 안내문은 한국과 다를 것이 없다.
동네 postnord by Emoya
북유럽의 우편시스템은 포스트노드(PostNord)에서 통합 관리하고 있다. 2009년, 덴마크 Post Danmark A/S와 스웨덴 Posten AB가 합병한 지주회사(holding company다. 이전에는 Posten Norden이라는 이름을 쓰다가 2011년부터 현재의 이름을 쓰고 있으며 스톡홀름 외곽에 본사가 있다. 2020년을 기준으로 스웨덴 내에서는 볼보(Volvo)에 이어 두 번째로 직원이 많은 회사다.(출처: 위키피디아)
예나 지금이나 포스트노드에 관한 불만 에피소드는 끊이지 않고 계속 발생하고 있다. 특히 국제우편물이 요주의 대상이다. 배송이 지연되거나 다른 동네 지점(우체국은 동네 마트 한편에 있다.)으로 소포(paket, 파키-엩)를 찾으러 오라는 경우는 그나마 양반이다. 입던 옷임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내고 찾아가라는 경우나 전화 한 번이면 해결될 것을 아무 조치도 않고 수취인 확인불가로 임의 반송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있다.
그나마 소포는 운송장 번호(spårningsnummer,스-포ㄹ닝ㅅ늄멜)는 가 있으니 어찌 된 것인지 확인이라도 가능하다. 나는 북쪽 키루나에서 한국으로 보낸 엽서(vykork, 뷔-코-ㅌ)가 감쪽 같이 사라진 적이 있다. 속상하고 아쉽지만 항상 그러는 것도 아니고 확인할 방법도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직원수가 많음에도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아직도 수기작업이 병행되기 때문이다. 무조건 전산화로 처리할 경우, 일자리 수에 영향이 있기 때문에 일부는 20세기 시스템을 고수하는 나름대로의 운영철학이 있는 것이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아날로그 우표에서 추억을 얻고 아주 가끔 불편한 배송 시스템을 얻었다. 덕분에 인터넷 쇼핑으로 산 물건은 주문 사실조차 잊을 만할 때 도착한다. 선물처럼. 조금은 불편하긴 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만 구매하는 실용주의 사람을 만드는 나라 인건 분명하다.
조금은 불편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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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스웨덴 워킹홀리데이 중에 발견했거나 궁금했던 스웨덴 생활과 문화에 대해 공유하고 있습니다. 글 내용과 관련한 스웨덴어는 별도의 블로그에서 다루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