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의 찬가
꽃샘추위
콧물이 주르륵 흘렀다. 봄을 시샘한다는 꽃샘추위를 정통으로 맞아 감기가 든 것이다. 한동안 따뜻해졌다고 봄 점퍼만 입고 나간 탓인 게 분명했다. 양쪽 콧구멍에 휴지를 끼고 설중매 차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작은 유리잔에 꽃 다섯 송이를 넣고 따뜻한 물을 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꽃잎이 하나씩 펴지면서 연둣빛으로 물든 컵에서 향긋한 봄 내음이 났다. 이렇게라도 따뜻한 봄을 미리 맛보고 싶었다.
추위에 움츠러드는 건 사람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작년 이맘때 (3월 말) 쯤이면 산책로 옆 개나리가 70% 정도는 피었었는데 올해는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듣자하니 전국에서 열리는 벚꽃축제는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작년엔 너무 일찍 펴서 문제였는데 올해는 너무 늦게 펴서 발을 동동 구른다는 기사를 보았다. 개나리가 피어야지 곧 벚꽃이 필 텐데. 반쯤 개화한 개나리를 보다보니 뜬금없는 궁금증이 생겼다. 개나리의 이름은 왜 개나리가 되었을까?
개나리는 왜 개나리일까
지난번 <진달래가 알려줄 거야> 편에서 진달래는 먹을 수 있어서 ‘참꽃’, 철쭉은 먹을 수 없어서 ‘개꽃’이라 불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더니 더욱 궁금해졌다. 개나리에는 왜 ‘개’ 라는 글자가 들어가게 된 것일까? 혹시 개나리도 독성이 있나 하고 찾아보니 ‘개나리 꽃 차’ 나 ‘개나리 꽃 주’ 가 있었다. 직접적으로 따 먹거나 나물로 무쳐먹진 않더라도 말린 후 우려내는 방식으로 섭취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개나리를 이용한 음식은 발달하지 않았는지도 궁금해지지만 음식 에세이가 아니므로 넘어가기로 하겠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이름에 대한 가설이 두 가지가 나왔다. 하나는 ‘나리’는 백합을 뜻하는 순우리말인데 개나리의 꽃이 백합보다 크기가 작고 예쁘지 않아서 ‘개’를 붙이게 되었다는 말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사방 천지에 흔하게 피어있는 꽃이라는 뜻으로 ‘개’를 붙였다는 말이 있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개’는 좋은 뜻으로 붙여진 건 아닌 것 같다.
개나리의 꽃말
이름의 유래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꽃말도 함께 알게 되었는데, 이름과는 사뭇 다른 “희망, 기대, 달성, 깊은 정” 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겨 다른 봄꽃들의 꽃말을 찾아보니 매화는 “고결, 충실, 인내, 맑은 마음”, 진달래는 ”사랑의 기쁨“, 벚꽃은 “결박, 정신의 아름다움” 이었다. 흔하고 못생겨서 붙여진 이름과는 반대로 봄과 가장 잘 어울리는 꽃말을 가지고 있는 것이 개나리인 것이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사실 나는 꽃말이 꽤나 신경이 쓰이는 편이다. 모르면 상관없지만 알게 되었을 땐 쉽사리 넘기기가 힘들달까. 예전에 노란색 튤립을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꽃말이 ‘헛된 사랑, 짝사랑’ 이었다. 이루고 싶은 사랑이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왠지 전보다는 좋아하는 마음이 줄어들었다. 방에 장식용으로 노란색 튤립 조화를 놓으려고 했다가 그만두기도 했다. 꽃말때문이라면 너무 귀가 얇아보이니까 살아있지 않은 꽃을 집안에 두면 좋지 않다는 풍수지리적 측면을 탓하긴 했지만 말이다.
믿는 존재
일주일 후, 개나리가 만개한 산책로를 따라 걷는데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공평하게(?) 개나리에게도 꽃말이 적용되어 그런지 앙증맞고 귀여운 꽃이 희망을 가득 품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서양에서는 개나리를 황금종(golden bell) 이라고 부른다던데 ”달성“이라는 꽃말과도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꽃말이 미신이면 어떻고, 장사를 위해 지어낸 말이면 또 어떤가. 가끔은 믿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들이 있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개나리의 꽃말인 희망이라는 것이 그렇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렇다고 증명할 수도 없는 희망이라는 것은 오롯이 사람들이 믿음으로써 존재하는 단어일 것이다. 걸어가는 길 곳곳마다 풍성하게 피어있는 개나리가 다정하게 손을 흔들며 응원의 찬가를 보내고 있다고 믿는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황금빛 개나리들을 보며 봄에 피어나는 새로운 희망을 바라본다.
2025.04 개나리
*글은 2024년도에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