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이루어주는 꽃잎
소원을 이루어주는 꽃잎
벚꽃이 만개한 벚나무 아래를 걷고 있으니 벚꽃잎이 살랑살랑거리며 내려왔다. 잡아보려고 했으나 찰나의 순간으로 놓치고 말았다. 만약 재빨리 무릎을 굽히고 손을 더 왼쪽으로 뻗었다면 잡을 수 있었을까? 끝 쪽이 살짝 반으로 갈라진 옅은 분홍색 꽃잎이 검은색 아스팔트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다시 길을 걷는데 이번엔 바람이 세게 불자 벚꽃비가 내렸다. 머리 위로 아까보다 더 많은 벚꽃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잡을까? 말까? 손을 뻗으려다가 이내 도로 제자리로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잡아서 뭐해. 소원도 안 이루어지는데. 벚꽃잎이 맨투맨 소매 끝을 스치는 걸 얌전히 보고 있는데 의문점이 하나 생겼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무슨 소원을 빌었더라?
떨어지는 벚꽃잎을 손으로 잡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어디로부터 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때문에 매해 벚나무 아래를 걸을 때 꽃잎을 잡아 책에 껴서 말리곤 했었다. 잡지 못하면 소원을 이룰 기회를 놓치는 것만 같아 꽤나 필사적이었다.
벚꽃잎을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리고 10년 전에도 잡았다. 그런데 그때 빈 소원이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무언가를 빌긴 빌었으니까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불평을 하고 있는 걸 텐데. 기억할 만큼 간절했던 소원이 아니었을까?
이미 이루어졌을지도
나는 변덕스럽다. 무언가 꾸준히 해내는 게 없고 이것저것 다양하게 배우는 걸 좋아한다. 그러다 한 가지에 푹 빠지면 그것만 주야장천하고 살다가 짧은 시간 안에 흥미를 잃고 시들시들해한다. 그래서 내 방에는 십자수 실도 100 개나 있고 미싱에, 코바늘, 라탄, 색종이, 물감, 붓 펜, D.I.Y 키트들이 옷장을 두 칸씩이나 차지하고 있다. 좋아하는 것이 시시각각 변하고, 흥미로운 것은 매번 잘도 찾아낸다.
이런 성향을 토대로 볼 때 작년에 빌었던 소원도, 재작년에 빌었던 소원도 모두 달랐을 것이다. 사실 소원이 안 이루어졌다는 것도 순전히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4월에 빌었던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졌을 땐 이미 다른 소원을 달님에게 열심히 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원을 기억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 다른 이유로는 언니가 나와 꼭 닮았다면서 보내준 속담이 하나 있다. “평생소원이 누룽지.” 기껏 요구하는 것이 너무나 하찮은 것임을 뜻하는 말이다. 나는 그릇이 큰 사람이 아니라 애초에 아주 사소한 걸 소원으로 빌었을지 모른다. 예를 들면 좋아하는 아이돌 앨범을 살 때 최애의 포토카드가 나오게 해주세요, 같은. (물론 진짜 그걸 빌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없는 일은 아닌 것 같다.) 키는 작아도 꿈은 크게 가지라 했거늘. 타고 태어난 신체적 특징처럼 나의 바람은 자잘하고 아담하다.
꽃이 작고 색이 옅다. 꽃 가지에 5송이 이상 함께 피어난다. 짧은 시간 잠깐 피었다 빨리 시든다.
나의 소원은 벚꽃을 닮았다.
벚꽃은 백일동안 꽃을 피울 수 없다.
오랫동안 나의 치명적인 약점이자 단점이라 여겼다. 열망의 화력이 약한 것. 이것만 고치면 좀 더 성장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매번 아쉬워하면서 나 자신을 다그쳤다. 그럼에도 도저히 바꿀 수가 없었다. 마치 설정값이 존재하는 소설 속 인물처럼, 벚꽃을 피우기로 결정된 벚나무처럼 말이다.
만개한 벚꽃을 보며 배운다. 벚꽃은 향이 거의 나지 않는다고 한다. 꽃 크기도 작은 데다 색도 연해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럼에도 꿀벌과 나비를 불러들일 수 있는 건 풍성하게 모여서 꽃을 피우기 때문이라고 한다.
10일 동안 꽃을 피우는 벚꽃은 100일 동안 꽃을 피우는 백일홍을 부러워해봤자 백일홍이 될 수 없다. 동전만 한 꽃을 피우는 벚꽃은 어린아이 얼굴만 한 모란을 질투해 봤자 모란이 될 수가 없다. 그러니 벚나무로 태어난 걸 받아들이고 백일홍과 모란을 부러워할 시간에 최대한 많은 꽃들을 피워낼 노력을 해보기로 했다.
바닥에 수북이 쌓인 연분홍빛 꽃잎들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성실하게 작은 성취들을 쌓아나가기를, 많은 것을 탐구하고, 탐험하고, 탐닉하며 살기를 바란다.
2025.04. 벚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