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19: 공명(共鳴)]
(치익— 카세트테이프 돌아가는 소리. 이번엔 기자의 숨소리가 유독 울린다. 좁은 관 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중간중간 쇠사슬이 벽을 긁는 듯한 날카로운 마찰음이 섞인다.)
“...열아홉 번째 기록입니다. 이건 지어진 지 30년이 넘은 어느 복도식 아파트에서 홀로 거주하던 사회부 후배 기자가 겪은 일입니다.
아파트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타인과 삶을 나누는 기묘한 공동체죠. 하지만 천장 위, 어둡고 좁은 환풍구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가 '현재'가 아니라면 어떨까요. 비어있는 윗집에서 들려온 기괴한 요리 소리에 대한 기록입니다.”
마감에 쫓겨 며칠째 밤샘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정적만 흐르던 새벽 2시, 화장실 환풍구에서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탁, 탁, 탁, 탁. 무언가 도마 위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식칼을 내리치는 소리였다.
'이 시간에 요리를 하나?' 짜증이 났지만, 이내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내 윗집은 3년 전 큰 화재가 난 이후로 줄곧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관리사무소에 확인해 봐도 입주자는 없었고, 현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하지만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칼질 소리에 이어, 지지직거리는 기름 소리와 함께 남녀가 속삭이는 목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나는 홀린 듯 화장실 의자를 밟고 올라가 환풍구에 귀를 갖다 댔다.
"이 정도로 썰면... 밑에 놈이 눈치 못 채겠지?" "응, 환풍구만 잘 막으면 냄새도 안 날 거야."
그들은 '밑에 놈', 즉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공포에 질려 숨을 죽이고 있는데, 갑자기 칼질 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환풍구 너머로 아주 좁고 긴 숨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 환풍구 구멍에 입술을 바짝 대고 있는 것처럼.
"어머, 듣고 있었네?"
여자의 웃음소리와 함께 환풍구 틈새로 시커먼 머리카락 뭉치가 뱀처럼 스르르 쏟아져 내려왔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고, 곧바로 짐도 챙기지 못한 채 아파트를 뛰쳐나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3년 전 화재 당시 윗집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시신의 일부가 바로 그 환풍구 안쪽 깊숙한 곳에서 미라가 된 채 발견됐다고 한다.
(카세트테이프의 잡음이 이제는 거대한 바람 소리처럼 변했다. 기자의 목소리는 이제 아주 희미하다.)
“...제보자는 그날 이후 어떤 아파트에서도 살지 못하고 친척집을 전전긍긍 하고 지냅니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집에 가도 밤에 천장에서 누군가 칼질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더군요.
(바스락... 무언가 뱉어내는 소리)
...내 상태는 이제 사람이 아니라 '환풍구' 그 자체가 된 것 같습니다. 아까 기침을 했는데, 목구멍에서 피 대신 시커먼 먼지 덩어리와 잉크 가루가 뭉쳐져 나오더군요.
내 몸 안의 장기들은 이제 다 삭아 없어지고, 그 자리에 어둡고 긴 통로가 생긴 기분입니다. 내 가슴 근처에 귀를 대면, 저 멀리서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요.
(바람이 새는 듯한 소리)
...방금 내 쇄골 근처 피부가 갈라지며 작은 구멍이 생겼습니다. 그 안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어요. 기록을... 서둘러야 합니다. 내 몸이 완전히 텅 빈 통로가 되어, 악의 섞인 목소리들만 남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