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움직인 게임] 세가 버추어 파이터
1993년 12월, 늦은 저녁. 한 일본의 아케이드 센터에 새로운 기기가 들어왔다. 설치가 끝나고 세팅 화면이 지나간 후 뜬 큰 로고 'AM2'와 함께 다양한 방향으로 연출이 되는 건장한 캐릭터들의 대결이 펼쳐졌다. 그때 세가의 직원들은 퇴근도 하지 못하고 내일 나올 게임에 대한 반응에 대해 우려 반, 기대 반 안절부절했다.
다음 날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근처 아케이드 센터로 나간 개발자들은 예상보다 미지근한 유저들의 반응에 실망을 한다. 하지만 이건 기우였을까. 게임을 직접 하지 않더라도 데모에서 펼쳐지는 액션에 감탄하는 유저들이 늘어났고 관련 업계에서는 "어떻게 저런 걸 만들었지"라는 반응을 쏟아냈다. 스즈키 유 디렉터는 그제서야 안심했고 프로젝트를 더욱 늘려나가기로 결심한다.
버추어 파이터(Virtua Fighter)는 세가의 도약기를 이끈 인물로 잘 알려진 스즈키 유가 행온 및 AM2 엔진 개발에 성공 후 오랜 시간 꿈꿔왔던 3D 게임 개발 프로젝트 중 하나로 캡콤의 '스트리트 파이터2'의 대성공에 자극을 받아 개발을 시도한 작품이다. 당시 그는 2D 방식의 격투 게임과 다르게 자신이 개발했던 '버추어 레이싱'처럼 폴리곤으로 만들어진 대전 격투 게임을 만들면 스트리트 파이터2와 경쟁은 물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이제 막 불기 시작한 2D 게임 격투 게임 열풍을 뒤로 하고 3D 폴리곤 기반의 격투 게임을 만든다는 건 당시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시도였다. 이를 경영진이 수락할리도 만무했다. 스즈키 유는 2D 내에서 차별화를 이끄는 일은 어렵고, 이미 세계적으로 성공한 스트리트 파이터2와 경쟁하는 것도 세가 입장에선 유리한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경쟁사들이 치고 올라올 것이라고 경영진을 압박했다.
경영진은 스즈키 유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프로젝트를 승인했지만 조건을 냈다. 1년 안에 개발을 완료하고 출시까지 하라는 것. 다양한 엔진과 에셋이 지원되는 요즘 시기에는 충분히 가능할 수 있었지만 당시 기술로는 무모한 도전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스즈키 유는 승락했다. 그리고 곧바로 프로젝트에 들어갈 인력을 모았다. 그 중에는 초기 개발 중이던 체감형 격투게임 '다크 엣지' 팀의 인력을 대거 영입한다.
스즈키 유는 버추어 파이터 개발 당시 여러 부분을 고민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크게 다룬 점은 '생생한 현장감'이었다. 실제 유저가 게임 내 공간을 느끼고 그 속에서 정말 싸우는 것 같은 그런 현장감을 전달하고자 했다. 또한 스트리트 파이터2처럼 장품을 쏘거나 날아다니는 그런 격투 게임이 아닌 실제 중국 무술이나 길거리 싸움, 레슬링, 복싱, 유도 같은 느낌을 살렸다.
이를 위해 실제로 개발자들에게 격투 무술을 직접 배우게 했고 심지어 동료들에게 본인을 직접 때려보라고 했다. 실제로 맞는 상황, 피하는 상황 등을 몸으로 느끼고 이를 게임 내에서 고스란히 구현하겠다는 의지였다. 당시 버추어 파이터 개발팀은 대 부분 팔과 다리 곳곳에 멍이 있었다.
기술적인 측면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당시 모델1 기판은 성능 면에선 우수했지만 안정성 부분이 많이 떨어졌다. 행온 같은 체감형 아케이드 기기나 레이싱 게임 같은 부분에는 성능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초당 30프레임의 안정적인 움직임과 캐릭터와 배경이 함께 공존하는 공간의 역동성을 제한하기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스즈키 유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모두의 최적화 및 개선 작업을 진행, 지금의 버추어 파이터를 탄생 시킨다.
이렇게 등장한 버추어 파이터는 출시 당시에는 큰 반향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2D에 익숙했던 유저들에게 너무나도 낯선 게임성과 목각 인형과 같은 외형은 흥미를 느끼기엔 부담이 컸기 때문. 하지만 3D 기술력에 대한 언론의 주목과 전 세계 최초의 3D 격투 게임이라는 점, 그리고 실전 격투를 방불케 하는 심리전 등 다양한 장점들이 서서히 발휘되면서 1994년 상반기쯤엔 히트작 반열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게임 업계에는 큰 충격을 줬다. 당시 2D 격투 게임은 스트리트 파이터2의 거대한 영향력에 의해 이를 따라하는 아류작들이 범람하던 시기였다. 용호의 권이나 아랑전설, 사무라이 스피리츠 등 SNK의 명작들이 등장해 장르 확장을 도모하기도 했지만 대 부분의 아류작들은 큰 성과 내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런 상황에서 버추어 파이터의 등장은 완전히 새로운 영역, 장르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버추어 파이터는 당시 2D 격투 게임과는 다른 신선한 시도가 많았다. 우선 실제 격투 대회를 보는 듯한 연출을 위해 넉아웃 개념 후 '리플레이'를 넣었다. 스포츠에서 골 장면이나 주요 장면에 들어가는 리플레이 개념을 도입해 전투 패배 시 유저가 어떻게 승리, 패배했는지를 알게 만들었다. 당연히 3D 연출이 더해져 승리의 쾌감이 몇 배는 강화됐다.
횡이동 개념과 링아웃 요소도 눈길을 끄는 요소였다. 당시 버추어 파이터는 서 있는 상태에서 횡이동이 불가했지만 공격을 받은 후 쓰러진 상태에서 좌우로 굴러 움직일 수 있었다. 이 기능은 실전 싸움이나 액션 영화에서 쓰러진 주인공을 칼이나 발로 내려 찍을 때 피하는 동작에서 착안했다. 덕분에 쓰러진 이후 반격을 도모하던 2D 격투 게임과 달리 한시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재미가 완성됐다. 링아웃도 같은 의미였다. 방어 위주의 플레이는 적의 공격에 밀려 링아웃 되도록 했다. 공방을 주고 받는 심리적인 요소가 작 반영된 부분이다.
버추어 파이터의 등장으로 일본 게임 업계는 3D 격투 게임 개발이 속속히 착수한다. 대표적인 남코(현 반다이남코엔터테인먼트)가 있다. 남코는 버추어 파이터의 경쟁작으로 불리는 철권을 개발해 선보였다. 철권은 10단 콤보, 연속 잡기 등 버추어 파이터보다 한층 발전된 부분을 보였지만 2D 격투 게임 그늘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며, 버추어 파이터의 특징을 따라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가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한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는 이식 및 리믹스로 불리는 확장판 등을 선보이며 승승장구했고 세가의 주력 가정용 게임기 세가 세턴을 지원하는 구세주로 자리매김했다. 1994년 11월 후속작 버추어 파이터2를 선보였고 이로 인해 종전에 없던 메가 히트를 기록한다. 2편은 일본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큰 히트를 치며 버추어 파이터 브랜드의 위용을 높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