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겜노인 Nov 06. 2020

미국 대선 보고 있으니.. 게임 '남북전쟁'이 떠올랐다

[세상을 바꾼 게임] 인포그램의 게임 남북전쟁

1989년 DOS 게임 제작사로 유명했던 인포그램(INFOGRAME)사에서 전략 시뮬레이션 장르 게임을 선보인다. 아타리 쇼크가 지난 후 닌텐도의 일명 '패미컴'의 선전과 세가의 야심 찬 16BIT 게임기 '메가 드라이브'가 막 출시돼 화제를 모으던 시기였다. 바로 미국의 최후의 전쟁을 소재로 한 '남북전쟁'(NORTH & SOUTH)였다.


불현듯 이 게임이 떠오른 이유는 뜨거운 감자 '2020 미국 대선' 때문이었다. 트럼프와 바이든의 대결로 압축된 (미안 카니예 웨스트.. 6만 표 밖에 못 받았더라)이 대결은 현재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혼전으로 거듭나고 있다. 트럼프 측은 부정선거 카드를 꺼냈고, 바이든은 승리 선언을 앞두고 있다.

누가 이기든 어느 정도의 국제적 혼란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미국 대선에서 이런 역대급 혼란이 생긴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무엇보다 코로나 19 장기화로 인한 우편 투표가 급증했다는 점과 처음부터 이를 부정하던 트럼프 측, 그리고 바이든 측에서 터져 나온 성추문과 칩 머니, 잽머니 사건 등으로 비방, 공격 이슈가 그 어느 때보다 쏟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예측 불가의 혼란을 담은 게임이 바로 '남북전쟁'이라는 것이다. 당시 게임들은 단순한 조작에 의한 '정교한 결과'를 요구했다. 포인트 & 클릭 게임들은 딱 정해진 행동 외는 불가능했고 변수가 많이 나는 전략 게임들은 거의 없었다. 틀에 맞춰 진행됐고 결과도 딱 그렇게만 나왔다.

패키지로 나온 인포그램의 전략 게임 '남북전쟁' <출처: 모비게임즈>


하지만 이 남북전쟁 게임은 실시간 전략이라는 당시 없던 획기적인 전투 방식을 채택했으며, 문명 게임의 턴 방식을 비롯해 벨트 스크롤 방식의 액션 모드 등도 더해져 아주 이색적인 플레이가 가능했다. 특히 이런 요소가 매우 개성적이었으며, 세밀한 조작까지도 가능해 DOS 시절을 아는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명작으로 손꼽혔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에 띄는 점은 막장 플레이가 가능했다는 점이다. 이 게임의 진정한 재미는 당시 역사적 사실을 IF 형태로 바꿀 수 있었다는 점을 비롯해 자신의 유닛으로 아군을 박살 낸다거나 상성 요소를 무시하고 오직 현란한 조작으로 적의 다른 유닛을 파괴하는 색다른 재미를 제공했다.


이는 당시 매우 신선한 발상이었다. 게임 내에는 기병과 대포, 그리고 보병의 3개 유닛으로 나눠져 있고 각각 3명, 1문, 6명으로 나눠졌다. 유저는 이 유닛들은 각각 따로 진행할 수 있었고, 모두 실시간으로 처리됐다. 어떤 유닛이 움직이는 동안 다른 유닛도 실시간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꽤나 역동적인 전투가 펼쳐졌다.

VGA를 지원했던 버전에선 이런 화면으로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 


또한 주둔지 역할을 하는 건물이나 심지어 적이 건너오는 다리를 파괴하는 행위 등이 가능했기 때문에 돌발적인 상황들이 자주 발생했다. 아군과 적군 보병이 만나 다리에서 싸울 때 대포로 다리를 날려버리는 그런 상황들 말이다. 실시간이라는 점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들은 이 게임은 상상 이상의 재미를 유저에게 전달했다.


미국 지도를 펼쳐놓고 벌이는 턴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실제 문명의 전개와 유사한 부분이 많은데 폭풍우를 만나면 부대가 고립된다던지, 인디언 또는 멕시코인의 침략으로 인해 부대가 괴멸당하기도 한다. 특히 멕시코인들의 테러 때 나오는 '라쿠카라차' 음악과 폭탄 테러는 당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맵 상에서는 부정적인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이 게임에선 그때 시대상의 핵심인 철도 산업이 등장하는데 여기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벨트 스크롤 방식의 액션으로 제압해야 했다. 칼이 날아온다던지, 총이나 주먹으로 쫓아오는 적들을 물리치는 형태였다. 의외로 재미있어 호평받은 부분이었다.

이렇게 전진해 기차를 세우면 자원을 강탈할 수 있다.


요 부분에서 방어 쪽은 무적인 적군 1명을 상대하기 위해 병사를 내보내는 식으로 막게 된다. 한쪽은 액션이고 다른 쪽은 전략 같은 느낌이다. 전진하는 공격 측이 제한된 시간 내 깃발을 바꾸지 못하면 점령전은 실패로 돌아가고 수비 측에 승리로 끝난다. 반대로 깃발이 바뀌면 점령지가 공격 측 것으로 바뀐다.


가끔 기차가 지나갈 때 이를 강탈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기차에만 어떻게든 올라타면 거의 뺏을 수 있는 전개로 진행된다. 이건 2인 플레이 때에 자원의 격차를 벌리기 위한 좋은 수단이어서 꽤나 피 말리며 위치를 파악해야 하는 전개가 펼쳐졌다.




게임은 이 외에도 당시 타 게임에서 느낄 수 없던 색다른 상황의 재미를 많이 제공했다. 특히 2인 플레이 시에는 주먹이 오고 갈 정도로 골치 아픈 상황이 많이 펼쳐졌고 좀 더 강력했던 남군을 서로 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하는 등의 상황도 있었다. 


남군이 당시에 유리했던 이유는 해상 루트를 통해 보급받는 기점을 남군이 거의 가지고 시작하는 점과 인디언과 멕시코인의 침략이 북군에게 먼저 벌어질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 철도선을 끊어 보급을 차단하는 유리한 위치를 남군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 등이다. 물론 변수가 많아 어중간한 실력이면 그냥 '지옥'이 펼쳐진다.

구석의 인디언이 보이는가.. 폭풍우 등은 옵션에서 제외시킬 수도 있었다.


이 게임은 당시 큰 인기를 바탕으로 패미컴은 물론 아미가로 이식됐다. 나름 괜찮은 그래픽으로 이식됐으나 PC 특유의 조작과 조금 거리가 먼 움직임 때문에 DOS 버전만큼의 큰 사랑은 받지 못했다. 당시 DOS 버전은 2개의 3.5인치 디스크로 제작돼 1, 2번 디스크를 따로 넣어 플레이했지만 향후 통합 버전이 나와 해소됐다.


이후 새로운 운영체제 등장에 맞춰 PC 윈도우 버전으로 추가 이식됐으며 MAC 운영체제 버전 역시 등장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2012년 경에는 iOS용으로 리메이크돼 출시되기도 했다. 당시의 특징들을 잘 반영해 전투의 재미나 열차 강탈 등의 매력은 그대로였으나 그래픽 느낌이 너무 달라 아쉽다는 평가도 많았다.

여러 플랫폼으로 이식된 남북전쟁 게임의 최신 모습


어쨌든 남북전쟁 게임은 당시 새롭고 획기적인 시도로 많은 유저들의 사랑을 받았다. 누군가 유리하고 불리함을 떠나 게임 자체가 주는 박진감과 당시 286 XT 수준 이상(당시 현금으로 구매하려면 100만 원 이상이 필요했다. 그때 당시 라면의 가격은 평균 200원)의 컴퓨터를 필요로 했기에 여러 모로 화제가 됐다.




실제 벌어진 남북전쟁(American Civill War)은 앵글로 아메리카 최초의 전쟁이자 가장 많은 미국인이 사망한 전쟁으로 기록돼 있다. 게임이 주는 유쾌함과 독특함 속에는 실제 내전으로 받은 상처가 조심스럽게 묻어난다. 엔딩에서 보이는 장면은 꽤나 뒷맛이 씁쓸하다. 궁금하다면 직접 찾아 보길 추천한다.


남북전쟁의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위대한 양보'로 표현된 미주리 협정(1820년)이 컸다. 이때 당시의 도망노예단속법은 무지막지했다. 다른 부분도 있지만 이로 인한 갈등이 협정 실패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고 이는 그때 당시 시대상을 볼 수 있는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서 엿볼 수 있다.


전쟁 초반에는 남부가 유리했다. (아마 저항세력처럼 표현된 남부군이 게임에서 유리하게 표현된 부분도 이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뛰어난 지휘부를 바탕으로 북부군을 유리했고 전략적 승리를 거두며 전세를 완전히 뒤집을 상황까지도 갈 수 있었다.

당시 시대 상황을 엿볼 수 있던 지도


하지만 이미 물량전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이던 북부군은 조금씩 남부군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오랜 전쟁 기간 동안 성장한 북부 지휘군의 다양한 전술에 밀리기 시작했다. 결국 1865년 4월 9일 남북 쪽에 밀려오는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남부군은 버지니아 주에서 항복 문서에 사인을 하게 된다.


물론 현재의 대선의 양상은 당시의 남북전쟁 상황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럼에도 이 게임이 생각난 것은 당시 전쟁으로 하나가 된 미국은 언제든지 분열할 수 있는 조짐을 가지고 있었고 연방제 방식으로 이끌어진 나라는 남북전쟁이 내세운 전후 '재건시대'의 모습과는 조금씩 멀어져 가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후 노예 경제가 해체되면서 농경 중심의 산업에 큰 변화가 생겼다. 대부분의 농장주였던 백인 농장주들의 몰락은 북부에 대한 증오로 남으면서 현재의 정치에까지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또한 KKK 등의 백인우월 주위가 생겨나고 링컨 대통령이 암살되는 등 종전 이후에도 북부와 남부 갈등은 이어졌다.

링컨 대통령 암살


결국 18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남부와 민주당이 '러더퍼드 B. 헤이스'의 당선을 인정하는 대가로 남부의 연방 주둔군이 모두 물러나고 남부 주들의 자치가 보장되는 1877년 대타협 과정이 이어지며 재건도 종료된다. 이후 흑인들은 10년의 시간 동안 참정권을 배제당하고 민주당에 의해 남부 주정부는 장악돼 버린다.




전쟁의 요인으로 손꼽힌 민주당은 공화당에게 독주 체제를 안겨주고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장기 집권하기 전까진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하는 굴욕을 걷게 된다. 공화당은 약 70년 간 장기 집권하고 2차례(그로버 클리브랜드, 우드로 윌슨)를 제외하곤 자신들의 체제하에 미국을 이끌어간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 리더퍼드 B. 헤이스 대통령의 당선 여부였다. 그는 득표에서 지고 선거인은 이기는 뭔가 석연치 않은 결과로 당선이 됐다. 논란이 컸던 지난번 대선 도널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을 이긴 형태와 유사한 결과였다. 지금의 대선만큼은 아니지만 그때의 혼란스러운 상황은 여러 모로 국민들에게 두려움을 줬다.


게임 남북전쟁은 게임 자체로서의 성공도 있었으나 그 이면에는 현재 정치의 혼란과 북부, 남부의 대립, 그리고 흑인과 백인의 인종갈등 등 여러 상징적인 의미가 담겼다. 노예 제도는 사라졌지만 그로 인해 생긴 흑인에 대한 차별, 백인우월 주위, 사회적 갈등 등은 여전히 남아 미국을 괴롭히고 있다.

전쟁의 결말은 씁쓸하다.


2020 미국 대선의 결말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법원을 등에 업고 부정선거 카드를 내민 트럼프가 선거 항복을 하지 않은 채 내년을 맞이할 수도 있고 바이든의 우편 투표가 공식적으로 인정이 돼 트럼프를 압박하는 상황도 전개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를 바라보는 전 세계는 한동안 혼돈을 벗어나긴 어려워 보인다.


이들의 치열한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지금의 대선은 꼭 예상치 못한 변수로 가득했던 게임 남북전쟁의 단면을 보는 것 같다. 분명한 건 누가 이기건 미국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고 인종차별과 지역, 사회주의의 충돌 등의 전쟁이 남긴 씁쓸함이 오랜 시간 미국 국민을 힘들게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