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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겜노인 Nov 26. 2018

세가의 마지막 콘솔, 찬란했던 '드림캐스트'

[세상을 움직인 게임] 세가 드림캐스트(Dreamcast)

1998년 11월 27일 닌텐도, 소니와 가정용 게임기 삼파전을 벌이던 세가는 오랜 기간 준비한 차세대 콘솔을 일본에 선보인다. 5세대 게임기 경쟁에서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에 완패한 세가 입장에서 절치부심, 이를 갈고 만든 제품이었다. 시장에 대한 기대도 컸다. 어떻게 보면 6세대 게임기의 끝판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세가의 야심 찬 시도는 찬란했던 꿈처럼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꿈을 방송한다는 뜻의 명칭 드림캐스트(Dreamcast)는 이노 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세가 세턴은 나쁜 게임기는 아니었다. '루나 이터널'부터 '버추어 파이터 2' '가디언 히어로즈' '세가 랠리 챔피언십' '나이츠' '사쿠라 대전'  그란디아' '랑그릿사 3' '파이팅 바이퍼즈' '팬저 드라곤' 등 주옥같은 명작을 쏟아내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의 3D 성능 처리와 독점 게임의 강력함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세가 세턴은 일본 내에서 574만 대 판매됐고 해외 지역에선 352만 대에 그쳤다. (참고로 경쟁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은 전 세계 1억 249만 대 판매됐다)

세가 세턴은 나쁜 게임기가 아니었다. 상대를 좀 잘못 만난 것 뿐이었다. <사진출처: 세가 홈페이지>


당시 플레이스테이션의 성공 비결은 3D 처리 능력이었다. 2D 일변도였던 세가 세턴에 비해 3D 랜더링 처리 능력이 강력했던 플레이스테이션은 이를 활용한 다수의 독점 게임들을 선보이며 일본은 물론 해외 시장에서 주목받았다. 세가 역시 이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며 이후 만들 차세대 콘솔에선 약점을 보완, 확실하게 경쟁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보였다.


그렇게 시작된 프로젝트 D는 강력한 3D 퍼포먼스와 세가 세턴의 2D 강점까지 되살려 당시 출시된 6세대 콘솔 중 최고 성능을 자랑했다. 특히 아케이드 기판에서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던 '나오미'(NAOMI)의 성능과 거의 흡사한 능력을 발휘해 아케이드 못지않은 뛰어난 처리 능력과 짧은 로딩, 그리고 넉넉한 프레임을 보여줬다. 여기에 자체 모뎀을 장착, 인터넷 연결부터 온라인 멀티플레이 기능까지 가능, 그야말로 팔방미인이었다.

당시만 해도 저 얼굴에서 불쾌한 골짜기가 느껴졌을 정도였다. <사진출처: 게임 캡처>


드림캐스트가 출시 전 주목받은 이유는 또 있다. 당대 최고의 그래픽이었던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 3'이 독점으로 나온다는 것. 아케이드용에서도 엄청난 그래픽과 사실적인 지형 움직임 등으로 많은 게이머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게임의 완벽 이식은 출시 전부터 드림캐스트를 구매해야 할 이유가 됐고, 출시 첫날 당연하다듯 이런 이유로 구매자가 대거 몰렸다.


마케팅 측면에서도 차별화를 뒀다. 내수 시장 내 입지가 단단했던 세가는 실제 세가 임원이었던 유카와 히데카즈 전무를 광고 모델로 내세워 구매를 읍소하는 느낌을 강조했다. 기존 "세가 세턴 해라!"는 식의 강력한 남자 마케팅 '세가타 산시로'와 달리 다소 지질한 모습은 강력한 구매 효과로 연결되진 않았지만 한 동안 게임 업계에서 입에 오르내리며 화제가 됐다.


이렇게 시작된 세가의 꿈은 다소 싱겁게 끝났다. 2001년 3월 31일 세가는 공식적으로 가정용 게임기 사업을 포기한다고 선언한다. 여기에 드림캐스트의 생산 및 지원 중단도 함께 발표했다.

70억엔 개발이가 든 쉔무의 실패는 컸다. <사진출처: 쉔무 리마스터 페이지>


드림캐스트의 실패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다. 가장 눈에 띈 문제는 GD롬이었다. DVD를 넣으려다 자체 표준인 GD롬을 사용하게 됐는데 이게 큰 악재가 되며 경쟁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2에 밀리게 된다. 당시 DVD의 표준 용량은 4.7GB였다. 하지만 GD롬은 1.2GB 수준으로 매우 낮았다. 3D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CG 등에 비약적인 투자를 하는 게임사들이 늘어났는데 그런 구조에서 GD롬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드림캐스트가 처음 출시 멀티미디어 게임기라는 콘셉트를 잡았었는데 GD롬 하나 때문에 그 기능들이 전부 묻혀버렸다. 오히려 DVD 플레이어로 플레이스테이션 2가 각광받았고 어댑터 장착 후 사용했던 멀티플레이 역시 플레이스테이션 2가 더 주목받았다.


또한 뛰어난 성능과 그래픽 처리 능력 등 여러 부분에 대한 어필이 주요하지 못했던 점도 드림캐스트의 실패를 이끈 장본인이 됐다. 당시 소니 진영은 플레이스테이션 2가 드림캐스트보다 3D 처리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식의 마케팅을 진행했는데 이게 소비자들에게 먹혔다. 이유는 간단했다. 6년 가까이 신드롬을 일으킨 플레이스테이션의 가장 큰 강점이 3D 처리 능력이었기 때문에 후속 기기의 성능도 당연히 경쟁 기기보다 앞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겨났던 것이다. 물론 아니다. 성능부터 처리 능력, 개발 난이도 등 모두 드림캐스트보다 아래였다.

나름 드림캐스트 독점작으로 쏠쏠한 재미를 본 불타라, 저스티스 학원! <사진출처: 게임 캡처>


마지막은 라인업 경쟁이었다. 당시 2000년대 플레이스테이션 2 출시 때만 해도 소니 진영은 타이틀 빈곤에 허덕였다. 하위 호환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지만 플레이스테이션 2를 대표할 타이틀이 초반에 등장하지 못해 애를 먹었고 그토록 자신들이 자랑하던 3D 처리 능력을 완벽하게 보여줄 게임 역시 없었다. 당연히 드림캐스트는 당시 라인업이 활짝 피던 시기로 초월 이식을 자랑하는 대작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살리지 못했다. 특히 서드 파티들의 차별은 세가가 두 손 두 발 들게 만든 요인이 됐다. 당시 세가의 게임 라인업은 다소 뻔했다. 쉔무 시리즈와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가 버티고 있었지만 자체적인 라인업은 한계가 명확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서드 파티의 힘이 절실했지만 다수의 일본 게임도 소니의 독점 정책에 맞춰 드림캐스트로 게임 출시를 하지 않았다.

세가스러운 스페이스 채널5 (사진출처: 게임 커뮤니티 페이지>


여러 핑계들이 있긴 하지만 서드 파티가 공통적으로 드림캐스트를 선호하지 않은 건 소니의 정책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도 소니의 퍼스트, 서드 파티 개념은 굉장히 끈끈한 우정을 자랑하는 걸로 유명하다. 일찍이 플레이스테이션에서 큰 성공을 거둔 서드 파티와는 로열티부터 다양한 측면의 지원이 뒤 따랐다. 하지만 자체적으로는 자금력에 한계가 보이던 세가는 소니만큼의 수준을 지원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래도 드림캐스트는 세가의 역작답게 다수의 명작을 출시하며 99년과 2000년대를 확실히 이끌었다. PC버전보다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세가 랠리 2와 하우스 오브 더 데드 2를 필두로 버추어 온 오라토리오 탱크램, 버추어 스트라이커 등의 인기 게임 이식, 사쿠라 대전 시리즈, 소닉 어드벤처 시리즈, 스페이스 채널 5 시리즈, 크레이지 택시 시리즈, 2K 스포츠 시리즈, 그리고 현존 최고의 격투 게임으로 불리는 소울 칼리버 등을 출시했다. 특히 소울 칼리버의 초월 이식은 지금까지도 회자가 될 정도로 화제였다.

소울 칼리버의 초월 이식은 당시 게임 업계 전반에 큰 화제였다. <사진출처:  게임 캡처>


또한 불타라, 저스티스 학원과 스타 글라이에이터, 스트리트 파이터 3 서드 스트라이크, 데드 오어 얼라이브 2,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 죠죠의 기묘한 모험: 미래를 위한 유산, 파워스톤 시리즈, 캡콤 VS SNK 시리즈 등 굵직한 격투 게임 시리즈를 완벽-초월 이식으로 선보이며 시장 내 견제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드림캐스트 포기로 세가가 얻은 것도 많다. 굴욕 같던 포기 선언 이후 세가의 주식이 급상승하게 되는데 바로 플레이스테이션 2로 자사의 소프트웨어 공급이라는 기사가 뜬 것 때문이었다. 또한 쌓여 있던 200만 대 가까운 재고는 가격 인하 정책과 타이틀 껴주기 등 방식으로 순식간에 소진됐다. 여기에 준비되던 서드 파티 및 자체 게임들이 2001년 몰리면서 약 499개의 게임이 쏟아져 수명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세가의 드림캐스트는 전 세계 1천45만 대 판매를 기록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했던 게임기였다. <사진출처: 세가 홈페이지>


이후 6세대 콘솔 게임기 시장은 일본과 미국의 대립으로 변모한다. 플레이스테이션 2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Xbox)가 2000년 3월 10일 공개됐기 때문. 아타리 쇼크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대형 프랜차이즈 콘솔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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