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움직인 게임] 프롬소프트웨어 다크 소울 시리즈
게임 내 죽음이라는 건 가장 원초적인 극복 과제다. 피해야 하고 이겨내야 하는 최소한의 장벽을 뜻한다. 그러나 이와 다르게 죽음을 통해 성공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게임이 있다. 더 많은 유저들을 죽음으로 몰아 성공한 게임 시리즈 '다크 소울'(Dark Souls)이다.
1986년 11월 1일 설립된 개발사 프롬소프트웨어(FROM SOFTWARE)는 초기 농업용 소프트웨어 등을 개발, 관리하는 회사였다. 이 회사는 90년대부터 게임 개발로 진로를 변경했고 1994년 자사의 첫 게임 '킹스 필드'를 출시한다. 그리고 새로운 개념의 로봇 전투 게임 아머드 코어 시리즈를 선보이며 급부상했고, 오토기 시리즈와 닌자 블레이드 등의 게임 등으로 다양한 플랫폼 및 장르에 도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프롬 소프트웨어사를 전 세계적으로 급부상시킨 게임은 따로 있다. 바로 데몬즈 소울, 다크 소울로 대변되는 소울 시리즈다. 2009년 데몬즈 소울의 출시는 일본 내 큰 화제가 되지 못했다. 어두운 설정과 다소 어색한 조작성, 과하다 싶을 정도의 난이도와 낮은 편의성 등이 문제가 돼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자국 내 반응과 다르게 서양에서도 호평이 쏟아졌다. 다크 판타지 특유의 컬트적인 매력에 빠진 미국, 유럽 유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빠르게 번졌고 당시 유튜브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스트리머들의 영향력까지 더해져 큰 화제가 됐다. 동양권에서 불편하다고 지적된 내용이 오히려 서양권에서는 재미를 주는 요소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에 탄력 받은 프롬 소프트웨어는 데몬즈 소울 시리즈를 계승한 멀티 플랫폼 게임 다크 소울 시리즈를 선보인다. 이 시리즈의 특징이 확립된 첫 번째 게임은 2011년 9월 22일 출시됐다. 다크 소울 1편은 거대한 보스들과의 전투, 묵직하면서도 절제된 액션, 진행과 상관없이 모든 NPC를 살해할 수 있는 자유도, 그리고 불친절하지만 파고들 수 있는 흥미로운 설정, 죽음을 소재로 한 멀티 플레이 모드, 독특한 맵 구조 등을 내세웠다.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죽음에 대한 개발사의 해석이다. 게임 내 죽음은 필연적으로 벌어지며 어떤 상황에서도 예측하기 힘든 형태로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유저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무수히 많은 존재부터 자신의 지역에 온 이름 모를 유저까지 모두 죽음으로 내몰아야 한다. 내가 죽지 않기 위해 다른 유저나 모든 적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게임에서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다.
유저는 무수한 시행착오 속에서 죽음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해 나간다. 함정에 빠져 사망하고 절벽에 떨어지거나 예상치 못한 강력한 적의 기습에 목숨을 잃게 되면서 유저는 게임 내 있는 죽음이라는 규칙에 적응하고 게임 내 마련된 무수한 단서들을 찾아 헤매게 된다. 죽음을 통해 쌓인 학습 효과가 불친절한 세상 속에서 살아나갈 원동력이 된다는 것. 그래서 소울 시리즈의 죽음은 경험치이자 뛰어난 생존 교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유저를 철저한 약자로 취급하는 환경도 이색적이다. 게임 내에서 주인공은 정말 별 볼일 없는 하찮은 존재다. 게임 내 대 부분의 적은 주인공의 캐릭터보다 강하고 더 크다. 초반 약한 구울 같은 존재(방심하면 이 존재한테도 죽음을 당한다)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존재와 싸움은 곧바로 죽음과 직결될 수 있을 정도다. 특히 좁은 곳을 가는 주인공을 향해 화살을 쏘는 적이나 주인공을 밀거나 차 버리는 절벽 전용 적 등 그야말로 악랄한 수준의 적들이 게임 내 가득하다.
더욱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편의 요소들이 게임 전반적으로 매우 중요시되던 시대에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 느낌의 불친절한 게임성도 이색적이다. 게임 내에는 능력치와 장비 정도를 제외하면 그 어떠한 정보도 없다. 문서나 게임 내 탐험 중 발견하는 자료 정도를 빼면 특별히 세계관, 이야기 구성에 대해서도 전해주지 않는다. 과한 친절에 익숙한 유저들이라면 불쾌할 정도의 불친절함을 자랑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요소들 사이에서 빛나는 묘한 균형감이다. 다크 소울을 시작하면 초반부터 어이없는 공격이나 함정에 짜증을 느끼지만 이게 게임이 말도 안 되게 어려워서가 아니라 내가 조금만 더 신경 썼으면 피하거나 살아남았을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단순하게 무작정 어려운 게임이 아니라 어색하게 어려워서 유저가 조금만 더 잘하면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 그 느낌을 게임은 상당히 잘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는 순간 유저 자신에게는 다른 게임에서 느낄 수 없는 즐거움과 성취감을 경험한다. 여기에 맞춰 조금씩 맵이 추가로 열리고 더 많은 새로운 존재들과 탐험 요소를 찾을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새 이 게임의 재미에 푹 빠지게 된다는 것. 다크 소울은 이렇게 죽음이라는 소재를 통해 다른 게임이 전해주지 못하는 강력한 몰입감과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간접적인 이야기 전개 방식도 인상적이다. 대 부분의 게임들은 진행하는 과정에서 세계관과 목적 등을 얻게 된다. 하지만 다크 소울은 엔딩 이후에도 주인공에게 별 다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간접적으로 세계관과 과 이야기 전개에 대해 유추할 수 있도록 게임 내 이곳저곳에 단서를 마련해뒀다. 이 단서로 그리 선명하지 못하다. 결과적으로 게임 내 모든 자료를 얻어도 100% 진실 또는 확실한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이 요소는 모든 정보를 쉽게 얻고 찾을 수 있는 현대 시대와는 동 떨어진 고전적인 상상을 자극한다.
그래서 100명의 유저가 게임을 즐겨도 100명 모두가 느끼는 것과 유추한 내용이 다르게 나온다. 어떻게 보면 A의 유추가 맞는 것 같은데 다른 단서를 고려하면 B의 생각이 옳은 것 같다. 물론 무엇이 정답인지는 개발자만이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해석과 분석, 유추를 통해 불친절한 세계관은 조금씩 유저들에 의해 완성되어 간다. 어떻게 보면 다크 소울 시리즈가 성공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싶다.
다크 소울 시리즈의 성공은 많은 게임사에게 색다른 자극으로 다가왔다. 그동안은 더 많은 편의 요소와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 유저가 쉽게 게임을 즐기고 따라오도록 했으나 불친절하고 무책임 가득한 게임에 유저들이 열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2000년대 후반부턴 다크 소울의 특징들을 반영한 게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명 소울 라이크(Souls Like) 게임이 그것이다.
이 단어는 'Games like Dark Souls'의 줄임말로 다크 소울과 흡사한 특징, 성향을 가진 게임들을 뜻한다. 중세 판타지 세계 내에서 탐험하며 목적을 찾는 로드 오브 더 폴른이나 1600년 요괴로 멸망해 가는 일본을 담은 인왕, 2D 횡스크롤 기반의 데드 셀과 솔트 앤 생츄어리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솔트 앤 생츄어리의 경우는 개발자가 다크 소울 시리즈에 영감을 받아 이를 2D 느낌으로 구현했다고 언급했고 오마주 수준처럼 세계관과 게임 내 구성이 흡사하다. 2인 팀의 인디 개발사 게임이지만 아주 훌륭하게 다크 소울의 재미를 2D로 잘 표현했다.
이 외에도 할로우 나이트나 코드 베인, 렛 잇 다이, 모모도라: 달 아래의 진혹곡, EITR, 더 서지, 보이드 메모리 같은 게임들은 다크 소울 시리즈의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게임들이다.
다크 소울 시리즈의 곁 모습은 평범한 3인칭 시점의 액션 RPG다. 하지만 그 속에는 죽음에 대한 이색적인 철학은 물론 알 수 없는 신비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어떻게 보면 탐험을 찾고 그리워하던 80~90년대의 올드 게이머들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새로운 도전 요소를 찾는 현대 시대의 게이머들을 호승심을 건드는 그런 게임이 아닐까. 오늘도 어둡고 신비한 다크 소울 세계에선 수많은 유저들이 죽음을 배우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