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움직인 게임 3편] 반다이남코엔터테인먼트 팩맨
1980년 5월 22일 남코(현 반다이남코엔터테인먼트)는 한 개의 게임을 출시한다. 단순한 조작과 구슬(펠렛)을 먹으며 적을 피해 다니면 되는 이 게임은 향후 ‘겔럭시안’과 함께 남코의 성장을 이끈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한다. 바로 팩맨(Pac-Man)이다.
아마 게임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을 해봤을 게임 팩맨은 당시 아이들용 목마를 제작하는 사업체 남코가 아케이드용 게임으로 제작해 선보인 게임이다. 중독성 강한 사운드와 스테이지 내 구슬을 먹는 행위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이 상당했다.
지금도 많은 유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팩맨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당시 아케이드 센터는 1979년 출시된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영향으로 슈팅 게임 장르가 대세를 이루던 시기였다. 남코 역시 겔럭시안을 출시해 괜찮은 재미를 보던 차였다.
당시 남코에서 근무하던 이와타니 토오루 개발자는 쏘고 부수는 형태의 게임들이 범람하면 여성들이 아케이드 센터에 입장하기 꺼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여성이나 커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이 필요하다고 판단, 새로운 장르 개발에 들어갔다.
그는 팩맨 개발 전 몇 가지 콘셉트를 정리했다. ▲모든 캐릭터는 귀여워야 한다 ▲주인공 캐릭터는 공격하지 않고 피해 다녀야 한다 ▲먹는다!라는 느낌을 강조한다 ▲게임 사이에 긴장을 풀 수 있는 휴식시간 도입 등이다.
큰 입을 뻐끔거리는 주인공은 콘셉트 방향성에 맞춰 여러 형태의 프로토타입이 나왔고 그중에서 현재 알려져 있는 노란색의 큰 입과 눈을 가진 캐릭터가 선정됐다. 큰 입을 벌렸다가 닫는 과정을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모습이 완성된 것.
먹는다는 콘셉트는 게임 내 다양하게 반영됐다. 게임 완료를 위해 스테이지에 있는 구슬들을 모두 먹는 과정은 물론 보너스 점수인 ‘디저트’ 역시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큰 구슬(파워 펠렛)을 획득 시 주눅 든 유령을 잡아먹을 수 있도록 한 것도 이 콘셉트 때문에 만들어졌다.
재미있는 점은 이 요소가 게임의 성공과 함께 일본 내 기업 용어로도 쓰였다는 것이다. 당시 자신의 기업을 매수하려는 상대 기업을 역으로 매수하려고 해 막아내는 전략을 일명 ‘팩맨 방어’라고 불렀다. 팩맨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인기를 얻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게임명은 일본어로 파쿠파쿠(ぱくぱ, 뻐끔뻐끔)이라는 뜻에서 착안해 퍽맨(Puck-man)으로 지었다. 하지만 영어의 비속어와 흡사한 발음 때문에 해외 수출에 문제가 생길 것을 야기해 지금의 팩맨으로 수정하게 됐다. 이후 일본어 버전 역시 동일한 명칭을 쓰면서 퍽맨은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출시 당시 팩맨의 반응은 그리 좋지 못했다. 여전히 상당 층의 유저가 슈팅 게임을 즐기고 있었고 주요 타깃인 여성 층에게도 크게 홍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전은 따로 있었다. 수출된 서양 국가에서 그야말로 엄청난 대박을 친 것.
그렇게 팩맨 게임은 이후 ‘미즈 팩맨’으로 여성 층에게 더욱 어필했고 일본 내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게 된다. 고전 게임기인 아타리 2600 이식을 시작으로 다양한 플랫폼으로 확장됐으며, 어레인지부터 여러 형태로 발전했다. 아티리 2600 버전은 비공식적으로 7백만 장 이상 팔렸다.
이렇게 판매된 팩맨 아케이드 게임기는 ‘동전을 넣고 하는 게임기 가운데 가장 성공한 게임’으로 기네스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공식적인 집계는 29만 3822대다. 재미있는 점은 이후 기네스북에 팩맨이 또 오르는 일이 생겼다는 점이다.
팩맨의 총스테이지는 256개로 255 스테이지를 완료한 후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면 엔딩이 나온다. 여기까지 한 번도 죽지 않고 모든 구슬과 파워 구슬, 과일, 적을 먹으면 일명 퍼펙트 스코어 ‘3,333,360’점을 찍을 수 있다.
공식적으로 이 기록이 달성된 건 아케이드로 출시된 그 해도 아니었고 무려 출시 이후 19년이 지난 1999년 7월 4일 미국의 게이머 빌리 미첼의 플레이로 만들어졌다. 그는 6시간의 사투 끝에 기록을 완성했고 이로 인해 기네스북에 팩맨 퍼펙트 스코어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팩맨이 성공하자 이를 이용한 경우도 다수 발생했다. 게임을 그대로 베낀 아류작이 쏟아졌고 심지어 팩맨을 이용핸 DOS 운영체제 바이러스도 나왔다. 영화 픽셀의 메인 악역으로 팩맨이 등장하기도 했고 게임을 패러디한 게임 오마주도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구글은 2010년 5월 22일 게임의 출시 30주년을 맞이해 메인 페이지에 팩맨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구글의 맨트도 화제였다. “이것 때문에 오늘 하루 동안 전 세계의 생산량이 줄어들 것이 확실하지만 그냥 즐기세요. 하고 싶은 거 알아요” 아쉽게도 한국 구글에선 즐길 수 없었다.
팩맨의 성공으로 남코는 세계적인 유명세를 떨치게 되고 이후 ‘제비우스’와 ‘디그디그’ 등의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팩맨은 게임 업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휴식 시간으로 불리는 컷 신은 게임 업계 최초의 컷신 작용 장면이다.
또한 여성을 타깃으로 한 여러 게임의 출시부터 탑뷰 형태의 런 게임 계열 장르의 발전을 이끌어냈다. 아케이드 센터의 장르 다양화를 이끈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팩맨 게임은 구글 내 검색 시 무료로 즐길 수 있고 모바일 버전으로 쉽게 구해서 즐길 수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