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움직인 게임 2편] 네더렐름 스튜디오 모탈컴뱃
1992년 8월 9일 서양에서 아케이드용 격투 게임이 하나 출시됐다. 캡콤의 격투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2’가 출시된 후 1년이 훌쩍 지난 시기였다. 실사 그래픽에 5개의 버튼, 뭔가 조작이 독특한 오리엔탈 세계관 느낌의 묘한 게임이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이 게임이 한 세기를 넘어 현재까지 서양을 대표하는 격투 게임 시리즈로 자리매김할지 누가 알았을까. 이 게임의 프로듀서를 맡은 에드 본은 “더 잔인해질수록 더 많은 유저가 열광했고, 판매량 역시 상승했다”라고 한 매체를 통해 말했다.
바로 서양 격투 게임의 선구자이자 격투 게임 시리즈의 판도를 바꾼 게임 ‘모탈컴뱃’(MOTAL KOMBAT)이다. 무엇이 이 게임을 그리 유명하게 만들었고 흥행을 넘어 세상을 움직이게 만들었을까. 비밀로 가득한 이 게임의 이야기를 확인해보자.
모탈컴뱃의 화제성은 단연 잔혹성이었다. 적의 체력을 모두 소진시키면 ‘피니쉬 힘’(Finish HIM)이라는 문구와 함께 비틀거리는 상대방을 볼 수 있고 그때 특수한 커맨드(캐릭터마다 다름)를 입력하면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는 ‘페이탈리티’(Fatality)가 발동된다.
단순히 상대방에게 강력한 공격을 넣는 수준이 아니라 사지를 절단하거나 또는 불에 태워 해골만 남겨버리는 식이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 수준은 서브제로(Sub-zero)로 불리는 캐릭터의 페이탈리티였다. 상대방의 목을 잡아 그때로 뽑아내는데 여기에 척추 뼈가 함께 올라오는 식이다.
상대방을 완전 좌절시키는 페이탈리티는 미국 전역에 모탈컴뱃의 엄청난 인기를 끌게 만들고 이후 슈퍼패미콤, 메가 드라이브, PC 등 20여 개가 넘는 플랫폼으로 확산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그리고 이 성공은 여러 단체와 정치, 교육 단체 등에 표적이 되게 만들었다.
특히 1993년 12월 9일 미국 정치인 제프 리버먼 상원의원은 모탈컴뱃의 잔혹성이 아이들을 폭력스럽게 만들고 무자비함을 키울 것이라며 해당 게임의 유통을 막고 더 이상 개발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연설해 큰 화제와 논란이 됐다. 이 사례는 게임과 정치가 연결되는 첫 번째 사례였지만 그 다음날 더 충격적인 게임이 등장하며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런 부정적인 측면에 모탈컴뱃의 화제성을 키웠지만 정말 유명한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격투 게임의 최초 요소들이다. 이 게임은 경쟁작인 스트리트 파이터 2보다 더 많은 최초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향후 출시되는 수많은 게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모탈컴뱃은 격투 게임 역사상 최초의 공중 콤보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가드 버튼 사용, 숨겨진 캐릭터 등장, 스테이지를 활용한 기믹 연출 등을 활용했다. 그리고 치사한 플레이를 방지하는 제한 요소도 최초로 도입해 눈길을 끌었다.
이 기능은 매우 특이한 기능이었는데 특정 행동을 반복해서 승리하는 걸 막는 장치다. 예를 들어 동일한 공격을 남발하거나 비슷한 패턴을 계속 사용하면 공격이 자동으로 풀리는 그런 형태다. 기능은 시리즈가 발전할수록 진화해 가끔은 유저를 비꼬는 독특한 연출이 등장하기도 하고 전체 대미지의 40%가 넘으면 공격하던 캐릭터가 강제로 쓰러지는 형태로 발전했다.
1편의 성공은 자극이 됐을까. 에드 본은 더욱 잔혹한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다. 2편은 총 17명이 등장하는 대형 게임이 됐고 더욱 깔끔하고 부드러운 그래픽을 선보였다. 또한 1편의 음산한 분위기를 더욱 사실적으로 표현해 한층 공포스러워졌고 페이탈리티는 그야말로 과감해졌다.
그렇게 시작된 이 게임의 진화는 끝을 모르고 잔인해졌다. 4편에선 시리즈 최초로 3D화 된 캐릭터들이 등장해 보다 다채로운 연출이 나오기 시작했고 여섯 번째 작품 디셉션에선 화려해진 그래픽과 사실적인 폭력성, 다채로운 기믹의 스테이지로 팬들을 만족시켰다.
하지만 개발사였던 미드웨이가 도산하게 되면서 모탈컴뱃은 시리즈 2008년 ‘모탈컴뱃 VS DC 유니버스’ 작품을 끝으로 사라지게 된다. 전작 ‘아마게돈’에서 65명의 캐릭터가 등장해 막장에 가까운 전개를 보이며 사실상 정규 시리즈는 끝난 것이 아니냐는 팬들의 푸념 속에 등장한 게임이라 뛰어난 게임성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은 부진했다.
더욱 잔혹해지며 흥행가도를 달리던 모탈컴뱃 시리즈는 자신들이 잘하는 것을 하지 못하자 날개 꺾인 새 마냥 추락했다. 결국 2009년 2월 미드웨이는 파산보호 신청을 냈다. 돈이 필요했던 미드웨이는 타임 워너 그룹에 모탈컴뱃과 개발팀 전부를 내주게 된다.
타임 워너 그룹은 단순히 프랜차이즈를 흡수하는 개념에서 떠나 개발팀 전체에게 더 나은 대우를 약속했고 ‘네더렐름 스튜디오’를 설립시켜 모탈컴뱃의 혈통이 이어지도록 지원했다. 2010년 설립된 네더렐름 스튜디오는 ‘워너 브라더스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자회사로 자리매김하며 많은 언론 및 게임 팬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여전히 네더렐름 스튜디오의 수장은 모탈컴뱃의 개발자 에드 본이었다. 그리고 2011년 4월 19일 시리즈 아홉 번째 작품이자 “끝내주는 페이탈리티를 보여주겠다”라고 단언한 에드 본 프로듀서의 야심작 모탈컴뱃(리부트)이 전 세계 출시됐다. 이 게임은 상업적인 성공은 물론 비평가들의 최고의 호평을 이끌어내며 시리즈의 부활을 알리게 된다.
그리고 2015년 현세대 플랫폼인 PS4와 Xbox ONE, 그리고 PC용으로 시리즈의 가장 최신작인 모탈컴뱃 XL이 출시된다. 이 역시 전작처럼 높은 판매량은 물론 호평 가득한 평가를 받으며 흥행가도를 달린다. 아쉽게도 2편 모두 국내에서는 정식 출시되지 않았다.
모탈컴뱃 시리즈는 격투 게임 역사 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임이다. 서양을 대표하는 게임이자 전 세계를 호령한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와 견줄 수 있는 화제성을 갖춘 게임이다. 출시됐던 거의 대 부분의 플랫폼으로 이식됐으며, 뛰어난 게임성 덕분에 킬러 인스팅트, 서바이벌 아츠, 타오 타이도, 블러드 워리어, 카스미 닌자, 스릴 킬 등 수많은 아류작을 탄생시켰다.
또한 공중 콤보부터 스테이지 기믹 연출 등 수많은 격투 게임의 양념처럼 활용됐고 향후 시리즈에서 추가된 대시 시스템을 비롯해 체인 콤보 시스템 등도 여러 격투 게임에서 재현됐다.
어떻게 보면 모탈컴뱃의 잔인함은 단순히 홍보나 논란을 위해 추가한 사항은 아니다. 모탈컴뱃 개발자들은 그들이 만드는 최초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그걸 항상 최고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많은 비판도 있고 여전히 정치권이나 교육 단체들의 비판이 쏟아지지만 자신들이 선택한 길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아직까지 새로운 모탈컴뱃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고 있지 않지만 전 세계 수백만 명의 모탈리언(모탈컴뱃 시리즈의 광팬을 의미)은 에드 본의 SNS에서 신작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쏟아지길 지금도 기대하고 있다. 이번에도 또다시 잔인함을 넘어선 무언가로 성공 신화를 이어나갈지 지켜보자.
모탈컴뱃 리부트는 3~4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것으로 나와 있으나 공식적 집계나 발표는 따로 공개된 적이 없다. 모탈컴뱃 XL의 경우에는 출시 연도에만 500만 장 이상이 팔렸고, PC 버전 출시 때에도 스팀 전체 판매량 순위에서 상위권에 랭크되는 등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참고로 이 시리즈는 올해 26주년을 맞이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