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우리에게 준 교훈
어느 것 하나 칭찬할 거리가 없는 윤석열이지만, 그는 우리에게 권력의 민낯과 반면교사의 중요성을 던져주었다.
‘썩어빠진 검찰’이라는 말은 배움이 부족한 사람들이나 떠드는 말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러나 이번 정권을 거치며, 우리는 그 말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웠는지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썩을 대로 썩고 뭉들어진 조직의 구조,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인간들의 뇌회로. 그것은 단순한 정치 혐오가 아니라 실체로 다가왔다.
김계리는 계엄 선포로 계몽되었다고 했지만, 나 역시도 이번 정권을 통해 우리 사회 권력기관의 민낯을 들여다보며, 어떤 방식으로든 계몽되었다. 물론 그녀가 말하는 계몽과 내가 말하는 계몽은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이것이 ‘아는 것이 고통’임을 새삼 느끼게 한 시간이기도 했다.
윤석열은 우리나라의 권력자들이 얼마나 썩은 정신 상태를 가졌는지를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돈 몇 푼에 정의와 도덕을 파는 사람들이 카르텔로 연결되어, 그야말로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도 뼈아픈 자각이다.
삼권분립이라는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는 이 상황에서, 한 나라의 사법부가 무능력하다는 현실에 눈물이 앞을 막고, 마치 공황 발작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국민이 권력을 감시해야 한다는 말은 교과서 속 문장이 아니라, 이 현실 속에서 고통스레 확인된 진실이 되었다.
물론 우리는 정치에 완전무결한 지도자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의 양심, 상식, 국가 운영 능력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이 땅에서 ‘공정’, ‘정의’, ‘법치’ 같은 말은 가장 많이 사용되었지만, 동시에 가장 많이 배신당한 말이기도 하다. 그것을 입에 달고 다니던 자들이, 정작 권력을 쥐자 가장 먼저 그 말을 저버렸다. 마치 정의를 권력을 얻기 위한 장식물쯤으로 취급한 듯하다.
윤석열은 결국 우리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국가는 누구의 것인가?’ 그가 보여준 파괴적 리더십, 정제되지 않은 말과 태도, 오기와 고집으로 일관된 국정 운영은 단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를 지지했고, 침묵했고, 무관심했던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결국 이 국면은 한 정권을 비판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기회를 통해, 이 사회 전체가 함께 자기반성을 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더 무서운 건 체념이다. ‘도덕은 이기지 못한다’는 학습, ‘정의는 결국 힘 앞에 무너진다’는 냉소. 그것이 이 정권이 남긴 가장 위험한 유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직 믿고 싶다. 이 치욕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성찰을 할 수 있다고. 다시는 이런 인물이, 이런 시스템이, 이런 구조가 이 땅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힘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 글을 단순한 분노의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거울이며,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직시하게 해주는 기록이 되어야 한다. 윤석열이라는 한 개인이 보여준 모습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괴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동안 외면해왔던 구조와 시스템, 침묵과 방조, 그리고 무관심의 결과다.
우리는 더 이상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무관심이 만든 결과가 지금 우리의 현실이고, 우리가 외면한 사이 권력은 더 조용하고 교묘하게 썩어들어갔다. 윤석열의 시대는 그것의 절정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계절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나라를 물려주고 싶은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방향으로 얼마나 가까이 가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 나는 말하고 싶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무너진 것들 속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썩어버린 현실 앞에 고개를 돌리지 않고, 끝까지 응시할 것이다. 언젠가 이 기억이, 이 치욕이, 우리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증거가 되기를 바라면서. 우리가 눈을 떴던 그날을, 영원히 기억하자. 그리고 다시는, 절대로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