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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음쓰 논쟁
개인의 가치관과 사회변화까지 함축한 논쟁
by
이명선
Aug 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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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세간의 화제였던 깻잎논쟁 이전에 현실 무림의 중년 주부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오랜 논쟁 주제가 있는데 그건 바로 '음쓰 논쟁'이다.
출근
하는 남편에게 '음쓰가 가득 든 봉투를 들려 보내는 행위가 맞는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른 아침에 말끔하게 입은 남자들이 음쓰 봉투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탄다. 쓰레기장 쪽으로 가서 그걸 버리고 나서야 아파트를 나서는 것은 흔한 장면이다.
한 손에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봉투를 든 남자도 있고, 봉투를 묶은 부분을 물티슈 한 장으로 같이 잡은 남자도 있다.
어떤 경우든 대부분은 젊은 남자들이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는 보기 힘들다.
정작 음쓰 봉지를 든 남자들과 들지 않은 남자들은 서로 무표정인데 그걸 보는
나이 지긋한 주부들이 불편해한다.
-아니, 그 버리기 싫은 음식물
쓰레기를 출근하는 남편에게 꼭 들려 보내야 돼?
-남편이 지가 버리며 출근하겠다고 했나 부지.
-남자들이 먼저? 야야, 내가 아들 둘을 키우지만 있을 수도 없는 얘기다.
-
'
언니 아들
'
이
'
며느리 남편
'
이 되면 달라지나
부지.
-남편이 그런다고 진짜 들려 보내? 출근하는 사람한테?
-그때 말곤 버릴 시간이 없나 부지. 애기가 있거나, 뭐.
-그럼 밤에 시키든지. 왜 그걸 굳이 아침 출근길에!
-남편이 밤에 나가기 귀찮다고 아침에 버린다고 했나 부지.
-그리구
솔직히
애
기 키우느라 쓰레기 버릴 시간도 없다는 게 말이 되니.
애 안 키워 본 사람 있어?
-
맨날이야 그러겠어. 어쩌다 한 번 그러는 거겠지.
도돌이표다. 음쓰 든 남자
의 사정을 이해하는 편이나 아내가 반강제로
음쓰
를 들게 했을 거라고 추측하는 편이나 각자의 근거가 있다. 게다가 나이가 오륙십 언저리의
아줌마들은 대개
자기 주관이 세고 목소리가 크다.
일상적인 대화 중에도 언쟁, 반박, 질타, 비난을 서슴지 않다가 또 언제 격렬한 난타전을 했냐는 듯 '그게 그런가?' 하며 합의에 이르고는 하하하 같이 웃기도 한다.
엉뚱하게도 나는 음쓰 논쟁에서
살아 변화하는 사회 분위기를 보았다.
70대
이상의 어머니들은 아들에게 '남자는 절대 울면 안 된다' 거나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는 게 아니다'는 말을 하며 키웠다.
그렇게 비뚤
어
진 방향으로
곱
게 자란 아들들이 지금의 50대
이상
남자들이다. 자기 손으로 자기 밥을 못 차려 먹는 사람들이 더 많은 나이대다.
그들은 예전의 엄마
가 그랬던 것처럼 아내가 자신을
챙
겨주기를 원한다. 같은 시대 속에서 비슷하게 교육받고 자란 아내들은 혀를 차면서도 남편의 뒤치다꺼리를 다 해 준다. 남자들이 계란프라이 하는 법을 굳이 배우지 않는 이유다.
60대 엄마만 돼도 아들에게 그렇게 말하는 비율이 확 줄어든다. 50대는 더
줄고
만약
40대가 그러면 사회부적응자일 가능성이 높다.
'남자가 출근길에 음쓰 봉투를 들고나가면 안 된다'는 생각
도 어쩌면 점차
사멸해 가는 저 옛날 생각들의
꼬리일 수도 있다.
-이 언니 이담에 며느리한테 우리 아들 뭐 시키지 마라, 우리 아들 뭐 해 줘라 이런 소리 하는 거 아냐?
-내가 미쳤니. 지들이 알아서 사는 거지.
-근데 남의 집 남편이 아침에 음쓰를 들든 말든 왜 열을 내?
-남편 시키는 걸 뭐라는 게 아니라 보기에도 안 좋은 음쓰를 아침부터 버리게 하냐는 거야. 잘못하면 옷 같은 데 튀고 손에서 냄새도 나고...
-언니 아들이 저럴까 봐 걱정인 거야?
-내 눈에 안 보이면 뭐 내가 알겠니. 그리고 난 명절이니 생일이니 하는 날에 굳이 며느리 오라고 안 할 거야. 아들이야 지 엄마 생일이니 와서 밥 한 끼
먹고 가
야 되고.
-오, 진짜? 내가 한번 지켜본다?
음쓰 논쟁의 시작은, 누구에게나 불편하고 하기 싫은 일은 남편이나 자식을 시키느니 내가 한다는 생각과 무엇이든 가정 안의 일은 구성원이 똑같이 해야 한다는 마인드의 차이일 것이다.
후자의 마인드가 옳다고 생각한다. 단지 남자여서 여자여서가 아닌 합리적 기준으로서의 역할 분담과 협업이 자연스러운 세상을 계속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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