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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나는 가끔 내 딸들이 부럽다
우리 엄마도 내가 부러울까
by
이명선
Aug 18. 2023
2주 간의 짧은 여름 방학을 보내러 작은딸이 오는 날이다. 사람보다 짐이 먼저 도착했다.
제일 큰 사이즈의 우체국 택배 상자 두 개를 그대로 놔두면 보기에도 답답하지만 나다니기도 불편해서 일단 물건들을 꺼내 놓고 상자를 치웠다. 거의 아는 물건들 중에 어쩌다 처음 보는 옷이 나오면 조금 낯선 느낌이 든다. 주인이 알아서 정리하라고 한데 잘 쌓아 놓았다.
나는
어른스러운 딸들이 부럽다.
딸들은 대학 1학년때부터 쭉 학교 기숙사에 살았고 취업을 한 큰딸은 회사 근처로 나가 산다. 자기의 일상을 스스로 감당하며 사는 것이다.
나는 우리 딸들보다 더 먼 거리의 학교와 직장을 다녔지만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먹으며 지하철과 버스로 통학했다. 그때는 대학에 기숙사도 거의 없었고 여자의 자취는 아예 생각지 못했다. 더 먼 곳에서 매일 통학하는 애들이 많았으니까 다들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딸들은 각자의 결정에 따라 대학에서 한 학기씩 휴학을 했다. 공대에 다녔던 큰딸은 어려워진 전공과목을 따로 공부하겠다고 휴학했고 인문대에 다니는 작은딸은 기업의 인턴을 하느라 3학년 한 학기를 휴학했다. 엄마아빠에게 휴학과 그 이후의 계획을 또박또박 설명했다.
지금은 안 하는 대학생이 없을 정도라는 휴학도 90년대 초반에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휴학은 군입대를 하는 남자애들이 하는 거였다. 여자애들이 휴학을 한다면 몸이 아프거나 등록금이 마련되지 않았거나 하는, 주로 주변을 의식하며 말해야 하는 이유들이었다.
요즘 대학생 둘셋 중 하나는 다녀온다는 교환 학생 제도도 거의 없었다. 아마도 그 시절의 어떤 집에서는 딸을 대학교에 보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스물일곱 살에 결혼하면서 처음 친정집을 떠났다. 지금까지 혼자 살아본 경험이 없고 굳이 혼자 살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어쩔 때는 일찌감치 집을 떠나 사는
의젓한 딸들이 부럽다. 각자 룸메이트가 있으니 혼자 사는 건 아니지만 자신을 챙기며 살아가는 20대의 하루하루가 부럽다.
나는 자상한 아빠를 둔 딸들이 부럽다.
남편은 주말마다 애들에게 뭐를 해 먹일까 고민하며 수요일부터 식재료를 주문한다. 작은딸이 장학금을 계속 받기 위한 성적 기준에 신경을 쓰니까, 성적을 위한 공부는 남는 게 없다고 너 하고 싶은 만큼 공부하라고 말해 준다.
직장 2년 차 큰딸과 25년 차 남편이 회사 문화라든지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아빠와 같은 직무를 준비하는 작은딸이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질문을 하면 남편은 바로 답을 준다.
그런 시간을 갖는 아빠를 가져서 부럽다.
우리 아버지는 선량한 사람이었지만 내가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아버지가 인생에서 과연 필요한가를 의심하기도 했다.
그리고 평생 엄마를 외롭게 만드는 분이다. 여전히 세상 태평해 뵈는 아버지를 보면 자기 자신 외에 소중한 것이 없나?라는 생각이 들어 좀 서글프다.
남편이 피부염이 생긴 노견의 배를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며 약을 바르고, 아이들에게 때마다 다정한 톡을 남기고, 내가 지나가는 말로 먹고 싶다고 한 것을 사 올 때 나는 내 딸들이 부럽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아빠, 아내를 사랑하는 아빠가 있는 딸들이 너무 부럽다.
만약 나에게 든든한 힘이 되는 아빠가 있었다면 내 삶의
만족도는 더 촘촘해졌을까?
나는 두 살 터울의 자매가 있는 딸들이 부럽다.
지들은 서로 너무 다르다고 투덜대지만 시시콜콜 연락하며 의지하는 게 보인다.
엄마아빠의 기념일이면 둘이 의논해서 큰딸대로 작은딸대로의 역할을 다 한다.
아쉽게도 나는 자매가 없다. 나이가 들수록 자매가 있어 좋다는 친구들을 보면 딸들에게 자매를 만들어 준 것이 참 잘한 일이구나 싶어 나 자신이 대견하다.
큰 이변이 없다면 우리 부부가 없는 세상에서도 둘이
음식을 나눠먹으며 잘 지낼 것이다.
갑자기 친정엄마 생각이 난다.
우리 엄마는 노후의 시간을 공유할 자매도 없고 도란도란할 남편도 없고 살가운 딸도 없다. 나는 자상한 남편이 있고 살가운 딸이 있으니 엄마는 내가 부러울까?
엉뚱한 얘기지만, 엄마가 우리 삼남매를 안 버리고 키워준 덕에 내가 자상한 남편 만나 예쁜 딸들과 함께 잘 사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엄마가 도망가서 혼자만 잘 사셨다면 나는 일찍이 소녀 가장이 됐을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결론은, 딸들과 남편 그리고 엄마에게까지 두루두루 고맙다는 말이다.
네 살, 여섯 살 때의 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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