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라는 모래성

파도는 멈추는 법이 없고

by 이명선

후배의 남편이 바람을 핀 지 일 년이 넘었고 현재 이혼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상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만난 여자인데 후배의 남편과 동갑이라니 나와도 동갑이다.

부부가 사랑을 하고 두 아이를 키우며 함께 한 20여 년 세월은 갑자기 길바닥에 쏟아버린 물처럼 수습할 수도 없게 되었다.


집으로 오는 지하철에서 만약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면 '나보다 젊고 예쁜 여자'와 피는 게 나은가 어쩐가 생각해 보았다.


'어느 집 남편이 바람났다'는 진부한 소재는 죽지도 않고 들려온다. 사실 그런 화제는 죽기는커녕 줄지도 않는 듯하다.

드라마나 영화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렇다. 다들 어떻게 그렇게 바람이 잘 나는지 모르겠다. 동창회에서 조우하고 동호회에서 친해지고 회사에서 눈이 맞고 상점주인과 손님에서 변질되고 온라인에서도 부끄럼 없이 찾는다니 거의 '삼라만상이 바람의 온상'인 셈이다.

인터넷에 상간녀 카페도 있고 바람난 남자의 조강지처 카페도 있다니 바람피운 남편 당사자들 카페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세 군데 카페에 정회원이 되어 몇 개월간 집중 연구하면 베스트셀러 소설을 쓸 수도 있겠다.

강력한 비위와 멘탈이 필요하다는 것이 문제다.

'부부'라는 관계는 두 아이가 바닷가에 함께 쌓는 모래성이다. 모래성을 만들려면 바다 가까이의 젖은 모래밭에서 해야 하고 그곳은 파도의 간섭을 피하기 힘들다.

예쁘게 세운 모래성은 멈춤 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모서리가 깎이거나 크게 유실되기도 하니까 성실한 개보수를 계속해야 한다. 떤 파도는 터만 남기고 모래성을 쓸어가기도 한다.

두 아이 중 한 아이가 모래성을 돌보는 대신 바다만 바라보고 앉아있거나 이제 그만 놀고 싶다고 떠나면 남은 아이만의 모래놀이가 된다.

남은 아이는 해가 저물도록 혼자 모래성을 지키거나 모래성을 놔두고 떠난다.

부부라는 게, 그리고 부부가 이룬 가정이라는 게 그렇게 소중하다가도 버리자면 또 쉽게 버려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입을 세게 꼬집고 싶은 개소리들이 있는데 '남자는 싫어하는 여자하고는 절대 못 살고, 여자는 싫은 남자하고도 자식 낳고 살다 보면 어찌어찌 산다'는 말과 '남자는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네 남편이 아니다'는 말이다.

결혼 후에 어머니 세대 분들로부터 조언이랍시고 여러 번 들었다.

대체 뭘 말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남편 놈들은 현관문이란 결계를 기어나가서 뭐 어쩌겠다고?

기성 사회는 '남자는 원래 그렇다'며 자기들이 자기들을 위해 만든 면책특권으로 아내들을 가스라이팅 해 왔다.

남자란 원래 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아버지의 바람을 인내하고 자식만 바라보고 여태 살았으니까 나도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물론 가벼운 바람(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정도는 용서하는 아내도 있을 거고, 좀 무거운 바람도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 그저 부모 노릇만 하며 남남처럼 살 수 있다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선택과 결정이다.


모래성을 함께 쌓던 마음이 달라졌다면 모래성을 허물어 모래사장에 돌려놓고 각자 떠나.

하늘과 파도는 영원하고 모래성 쌓기 외에도 바닷가에서 노는 방법은 많기 때문이다.

남의 모래성을 기웃거리는 친구 따위 아웃.

강릉 어느 카페의 벽에 달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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