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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사랑보다 독한
사랑을 샀더니 집착이 딸려왔다
by
이명선
Mar 24. 2023
옛날에 무척이나 금슬 좋은 부부가 있었어.
남편은 흔한 남자들과 다르게 순하고 다정했고 아내를 귀하게 여겼지. 아내는 남편을 깊이 사랑했어. 남편이 조용히 앉아
책을 읽는 옆모습
도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대.
그러다 그만 아내가 병으로 먼저 죽고 말았어. 홀로 남은 남편이 슬퍼하는 모습
은
차마 못 볼 지경이었지.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산 사람은 산다고 남편이 재혼을 했대. 새로 얻은 부인은 심성
이 착하고 얼굴도 고왔어. 남편은 원체
자상한 사람인지라 새 부인에게도 전처에게 하듯 잘 대해 주었어.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행복해야 할 새 부인이 안색이 점점 나빠지고 미소와 말수도 줄더니 결국 한 달도 안 돼 도저히 못 살겠다고 도망을
쳐
버렸어.
나중에 들은 얘긴데 말야, 전처 귀신 때문이래.
새 부인이 남편과 잠을 잘 때는 남편 옆에 죽은 아내가 누워 있고, 낮에도 장롱 문을 열면 이불 위에 죽은 여자가 웅크리고 누워서 빤히 쳐다보더라는 거야.
그렇게 무서운데 어떻게 살 수 있겠어.
전처는 죽어서도 남편을 떠날 수가 없던 거지.
문을 잠그고 지킨다는 전설 속의 캐릭터-문고리에 주로 쓴다
어릴 때 우리 할머니는 옛날이야기를
자주 해 주셨다.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면, 옛날얘기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데, 하시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할아버지가 홀려서 죽을 뻔했다는 물귀신 얘기, 할머니 어릴 때 옆집에 살았다는 무당 이야기, 남편이 돈 벌러 간 사이 남편 친구와 바람났다는 젊은 여자
이야기.
지금 생각하면
고작 열 살 손녀에게 들려주던 할머니 이야기의 대부분이 호러, 미스터리 심지어 치정물이었다.
남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죽어서도 남편 옆에 귀신으로 붙어 있는 아내의 이야기는 무섭지만 슬프고, 어쩐지 남일이 아닌 것 같아 섬뜩하다.
사랑에 빠지면 사소한 사실에 질투를 느끼
고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 그 사람의 일에
집착
하게 된다.
사랑을 장바구니에 담을 때 나도 모르게 옵션으로 질투와 집착이 선택돼 있던 건지, 이것도 한번 써 보라고 사랑의 신이 사은품으로 넣어주신 건지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감정은 어리석은 질투와 무서운 집착과 함께 찾아온다.
사랑이나 질투는 몸이 늙는다고 힘이 빠지는 감정도 아니다.
여든 할머니도 남편이 여자들도 있는 국민학교 동창회에 자꾸 간다고 화를 내고, 썸할머니가 생긴 할아버지는 사는 것이 즐겁고 힘이 난다.
그놈의 사랑에 대해 아직도 30년이나 더 경계하며 살아야 한다니 피곤하다.
이야기 속의 전부인이 남편을 정말 사랑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의 사랑은 좋은 세포가 암세포로 돌변하듯 사람을 살리는 이타적 사랑에서 사람을 죽이는 이기적 집착으로 바뀌었다.
지금 사랑을 하는 사람들
이여!
사랑을 시작하던 순간에 슬며시 딸려 온 질투와 집착을 늘 조심해야 한다.
한 손을 들어 바라보자.
이 손으로 쓰다듬고 토닥이면 사랑이고, 아프게 움켜잡으면 집착이 아닌가.
사랑이 내게 있다가 떠날 때 목덜미를 움켜쥐는 대신 가만히 흔들어 배웅하는 손을 가지자.
한 줄 남은 이번 달 달력을 보다가 나의 결혼 26주년 기념일이 임박한 것을 알았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여기까지 왔다.
3월도 한 주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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