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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오늘 남편이 바빴다고 하면 기쁩니다
회사를 떠나는 그날까지 바쁘길
by
이명선
Aug 3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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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오늘 바빴어?
- 응, 오늘 많이 바빴지.
오늘 하루 남편이 회사에서 바빴다고 하면 기쁘다.
회사를 그만두는 그날까지 바빴으면 좋겠다.
그래서 갑자기 안 바빠진 그날, 더 돌아볼 미련 없이 떠날 수 있게.
남편은 임금피크를 2년 앞둔 대기업 근로자이다. 남편의 회사는 55세부터 임피가 시작되어 60세 정년까지 매해 10퍼센트씩 감봉이다.
임금이 주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임피 시작부터
는
'일하기'보다
'
버티기
'
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재
작년
겨울에 남편도 명퇴
를
희망했다가 회사 일이 많아서 꿈을 이루지 못했다.
언제든 본인이 그만두고 싶을 때
그리고 회사에서 '쟤를 어쩔까?'하는 눈치를 보일 때 그만두기로 약속했다.
내 주변의 남편들도 비슷하다.
임원급인 남편들은 별도의 리그니까 접어두고 부장까지의 직급들이 임금피크로 넘어가서 더 다니냐 그전에 명예퇴직을 하냐를 고민한다.
우리 또래의 많은 근로자들이 임금피크가 시작되기 전에 명퇴를 하는 추세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회사를 떠나는 나이이지, 일을 그만두는 나이는 아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나온 후의 새로운 직업에 대해 모색하고 준비한다.
퇴직 후에도 일을 계속하려는 입장을 크게 나누면, 내가 한번쯤 해 보고 싶던 일을 하려는 사람과 벌이가 가능한 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려는 사람으로 구분된다.
두 영역에 교집합이면 금상첨화다.
돌이켜보면 남편이 처음 대리가 되었을 때가 나는 가장 행복했다. 그 후의 승진은 그만큼 신나지 않았다.
그 기분은 거실 겸 안방이 하나던 15평 아파트에서 거실이 따로 생긴 20평으로 이사 온 날이 가장 좋았던 것과 비슷하다. 그 이후에 넓어진 집들이 준 감동은 덜했다.
대리가 얼마나 높은 사람이었나. 나는 결혼하면서 지방 도시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대리님'이 되어보지 못하고 회사를 나왔다.
회사에 다닐 때 사원의 업무 지시와 허락은 대리님에게 받았다. 대리님의 자리는 평민들과 살짝 구분되어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대리님의 책상은 우리가 먼저 통과해야 할 터널이었다.
남편이 그 높은 대리님이 된 날
우리는 축하파티를 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의 '파티'는 드물고 거한 이벤트가 아니
라
소소한 핑곗거리에도 '그러니까 오늘 파티하자!'라고 소환되는 회합
이
다. 치킨을 시켜도 좋고 족발보쌈을 사 와도 좋
다
. 그냥 집밥과 다른 음식들을 먹으며 별 걸 다 축하한다.
그래도 남편이 명퇴하는 날은 좋아하는 음식을
준
비하고 가랜드도 만들어 걸고 파티를 해야겠다. 1997년부터 30년 가까이의 직장생활을 청산하는 자리이니 만큼 주인공인
우리 아조씨
가 울지도
몰
라.
직장인이라면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남편도
맨날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
던
시절이 있었다. 겨우 회사생활 2년 차인 큰딸이 '아, 내일이 월요일이라니' 하는 것을 보면 퇴사에의 열망은 남녀노소, 직위 고하, 부양가족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직장인의 뱃속에 든 장기 기관인가 보다.
딸에게나 남편에게나 회사에 다니기 너무 싫은
데
꾹 참고 다니라고 하지 않는다.
내가 철이 없는 편이라서 그
런 걸 수도 있겠다.
자기가 도저히 못 다니겠으니 그만두는 거겠지, 회사를 나오면 또 다른 일을 하며 잘 살겠지 하는 마음이다.
원
래
주부가
살림하기 싫고 학생이 공부하기 싫은 것처럼 회사원은 회사 가기 싫고 사장님은 장사하기 싫은 법이
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남편이 회사 가기 싫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회사를 떠날 때가 되긴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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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퇴직
회사생활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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