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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마치고

빈 방에 가득한 건

by 이명선

이제 딸들이 없는 딸들의 빈 방에 가끔 서 있다. 학생 때부터 쓰던 침대와 남기고 간 옷들과 물건들이 그런 나를 바라본다.

그래봤자 세 평 안팎일 공간인데 행여라도 썰렁하니 인기척이 사라질까 봐 평소에도 방문을 열어 두고 청소기도 돌린다. 창을 열어 환기도 한다.

애들이 우리와 떨어져 처음 따로 자던 무렵이 생각난다. 두 살 터울 자매는 대여섯 살 때부터 둘이 자고 우리는 안방에서 잤다. 처음에 따로 잘 때는 밤에 베개를 들고 들어오기도 하고 자다가 새벽에 깨 보면 어느새 작은애는 내 옆에 큰애는 아빠 발치에서 자고 있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층 침대를 썼고 나중에 이단침대도 썼다. 이층 침대의 이층은 사다리로 오르내리기에 난도가 있으니 언니가 쓰고 동생이 아래층에서 잤다.

조금 더 커서 쓰던 이단 침대에서는 작은애가 윗단에서 잔 거 같은데 아마 아랫단에서 자는 게 더 난도가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윗단에서 자던 사람이 잠결에 일어나 내려오다가 아랫단에 자는 사람을 밟을 수도 있어서다.

각자의 방에 싱글 침대를 놓고 완전히 따로 잤던 건 초등 3, 4학년 때 같다. 옛 기억이라 아리송하다.

어린 시절 매일 밤 한 방에서 자면서 자매가 어떤 추억을 나눴는지 나는 모른다. 둘이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를 밖에서 들으면 흐뭇했지만 엄한 목소리로 '그만 떠들고 얼른 자!'라 했겠지.

이층 침대 시절의 자매




나이 든 개가 나를 따라 방에 들어와 허공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 사람보다 후각이 예민하니 나는 느끼지 못하는 딸들의 냄새를 개는 맡을 것이다.

한 번은 작은애가 집에 온 것도 모르고 개가 늘어져 자고 있었다. 작은애와 거실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는데 우리 개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작은애 방으로 터덜터덜 걸어가서 냄새를 맡는 것이었다.

양쪽 눈에 일어난 백내장으로 눈도 어둡고 귀도 아득하게 안 들리는 개는 잠결에 작은누나 냄새를 맡고 깨서는 작은누나 방으로 간 것이다. 정작 제 옆에 앉아 있는 작은누나를 알아채지도 못하고 말이다.


큰애는 나에게 자기 방을 정리해서 엄마아빠가 쓰고 싶은 용도로 쓰라고 하는데 이다음, 이다음에 그러려고 한다. 나중에 딸들이 결혼을 하거나 진짜 자기 집을 산 다음에는 제발 그러지 말라고 해도 그럴 것이다.

우리 집 방 세 개 중 두 개가 비어 있지만 아직은 방 주인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방을 뭐 하러 비워두냐며 남편과 각자 방을 쓰라고 권하는 친구도 있다. 아무리 오래 산 부부라도 수면 패턴이 다르고 무엇보다 혼자 자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도 코로나 시절에 각자 격리할 때 딸들의 방을 쓴 적이 있다. 그때는 몸이 안 좋았어서 마음도 그랬었던 건지 혼자 자는 게 생각만큼 좋지는 않았다.

인생의 전체 시간에서 남편과 함께 잔 세월이 더 길어져서일 지도 모르겠다.


내가 참 잘한 일 중 하나가 '딸들에게 자매를 만들어 준 것'이다. 아들이나 딸을 낳는 일은 내 맘대로가 아니니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자매를 키우면서 인정한 사실이다.

주변에도 친언니, 친여동생과 관계가 좋은 사람들이 많다. 어릴 때는 많이 싸웠는데 나이가 들수록 좋은 게 여자형제라고 한다. 자매가 없는 나는 은근히 부럽다.

남매는 부모에게 좋고 아이들끼리는 자매나 형제가 낫다던가. 우리 부부가 둘 다 떠나고 없을 미래에 작은애에겐 쿨한 언니가, 큰애에겐 다정한 여동생이 곁에 있다는 게 안심이다.

어느덧 내가 부모의 마음에 더 가까워지는 나이가 되니, 이래서 부모님이 형제간에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그렇게 보기 좋아하는 건가 싶다.





작은애네 집에 온 에어컨 기사님은 수다쟁이였다. 잠깐의 작업 중에 나보다 몇 살 위이며 아들이 둘이며 큰아들은 결혼을 했고 손주도 나올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 따님이 나중에 집에 들어온다 하면 절대로 받아주지 마세요.


기사님이 말했다. 아들이 2년을 나가 살았는데 갑자기 '기어'들어와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빨래 청소 다 해결되는 편안한 삶을 살더니 이제는 나갈 생각을 안 한단다. 부모는 하루하루 나이가 드는데 다 큰 자식이 나갈 생각을 안 하니 그런 고민이 또 없다고 한다.


나는 딸들이 다시 집에 들어와 살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들어온대도 받아줄 것이다. 대신 아빠가 엄마에게 주는 것처럼 생활비를 내라고 해야지.

참, 기사님의 아들이 생활비를 내는데도 같이 사는 게 힘드신지 물어볼 걸 그랬다.


한여름의 이사 두 개가 끝나서 시원하다.

어쩌면 내년 이맘때 또 이사를 할는지 모르지만 올해의 경험과 배움으로 나는 더 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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