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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기다려, 내 집 마련

by 이명선

작은애가 이사하고 석 주쯤 후에 큰애도 자취집을 옮겼다.

큰애는 보증금을 올리고 월세를 여서 살 수 있는 집을 원했지만 그런 매물은 거의 없었다. 월세를 줄이고 싶은 임차인의 마음과 달리 임대인은 묶여있는 보증금보다 매달의 월세 수익을 원하기 때문이다.

국 월세는 비슷하고 보증금을 올려 전보다 더 넓어진 집을 계약하고 나오는 길에 큰애가 비장하게 말했다.


- 2년 뒤엔 집을 사겠어. 영끌을 해서라도.


세상 물정이 그렇다. 미혼인 20대도 자기 집을 사고 싶어 하고 회사나 정부는 그 꿈을 이루도록 자금 면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회사의 복지성 대출에다 나 같은 기성세대에게는 이름조차 낯선 각종 공적 대출 상품이 많다.

신혼부부라서,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서, 자녀가 많아서, 처음 집을 사는 거라서.

집값의 절반까지도 빌릴 수 있고 성실히 모은 시드 머니가 있으면 영끌도 긍정적이다.

거기에 금상첨화로 부모가 좀 보태준다면 미혼인 20대가 아파트 매매계약서에 매수자 도장을 찍는 일이 그리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전례 없는 폭등장을 경험한 후라 어딜 가든 으로 집값이 어찌 된다는 갑론을박이다. 우리 옆 동네는 1기 신도시 재건축이라는 빅이슈로 둘셋넷으로 편이 갈라져 아수라장이다.

내가 이 난장판에서 발을 빼고 음악이나 듣고 드라마나 보는 건 단표누항의 고상한 가치관을 가져서 그런 것은 아니다.

참전할 무기와 용기가 없을 뿐 휴대폰에 깔아 둔 몇 개의 부동산 어플을 괜히 열어곤 한다.

'에, 거기가?' 하는 말이 나오려고 해 입을 다무는 동네까지 안 오른 동네가 없다.

내가 가는 차선만 막히듯 내가 사는 아파트만 안 올랐다.


현기증 나요



독립해 사는 딸들은 휴일에 집에 와서 개와 함께 잘 놀고 아빠가 만들어 준 음식을 잘 먹고는 '이제 우리 집에 가야지'하고 일어선다. 그 집은 본인이 산 집은 아니고 사는 집이지만 돌아가고 싶은 제 집임은 확실하다.


내가 자주 만나는 지인들도 다양게 살고 있다. 부동산이 불장이든 얼음장이든 20년 이상 한 집에 사는 사람도 있고 2,3년 간격으로 여기저기 이사하고 부지런히 투자해서 자산을 키운 사람도 있다. 집 살만한 돈을 가지고 있는데 전세로만 사는 사람도 있고 대학생 아들에게 줄 집을 미리 사 둔 친구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은 한 채.


동사 기본형 '사다'와 '살다'는 완전히 다른 뜻을 가졌지만 일부 활용형에서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명사형 어미를 붙이면 '삼'과 '삶'이 되지만 현재형은 '산다'로 같고 '사는', '사니' 등에서는 맞춤법이 같다.

그래서 때로 집의 재산 가치에 지나치게 치우친 생각들을 타이를 때 '집은 사는(buy) 게 아니라 사는(live) 거야'라고 말한다.

딸들이 는 집이 남의 집이 아닌 자기 집이라음은 더 편할 것이다.

남의 집을 빌려 사는 딸들에게 '여차하면 돌아올 아빠 집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서 애들 방을 그대로 둔다.


언젠가 아이들이 자기 집을 사면 그때 비로소 애들 방 비우며 신나게 남편 방도 만들고 취미 방도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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