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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Oct 27. 2024

인간관계

너무 다른 두 세계가 만나고 있다

 김 부장님 보기에 이 대리는 말이 안 돼요. 이 대리의 월급은 김 부장의 3분의 1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도 김 부장보다 돈을 더 씁니다. 전시회다 여행이다 맛집이다 다니느라 바쁘고 패션에도 꽤 신경 쓰고요. 하지만 이 대리 입장에서는 김 부장 월급이 세 배면 뭐 합니까, 용돈은 자기보다 더 적은데. 대출금에 과외비에 그에 따른 온갖 부양에, 끝도 없어요. 

 누가 옳은 걸까요? 둘 다 옳습니다. 부장님은 그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참고 돈을 모아 집을 샀습니다. 그러나 이 대리는 매달 100만 원씩 모아도 집 사는 데 70년이 걸려요. 그래서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사는 것뿐입니다. 너무 다른 두 세계가 만나고 있는 것이죠. 


- 송길영, < 그냥 하지 말라>, 북스톤, 2021, 233쪽    


 



 직장생활 25년 차인 아버지는 딸이 처음 취업을 했을 때 축하의 말과 함께 '회사생활도 결국은 인간관계'라고 당부했다. 승진이나 능력, 성과 같은 것의 배경에는 인간관계가 있다. 회사의 인간관계라는 말에서 누구의 라인이나 백그라운드 같은 것부터 떠올릴 수 있지만 그런 측면을 떠나서 한 명의 팀원으로서 협업을 하는 시스템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당연히 중요하다.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손과 눈이 회사뿐 아니라 전체 인생에서 나를 일으키거나 주저앉히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성공도 실패도 할 수 없다.  

   

 사람이 태어나면 낳아주신 부모와 이미 가족구성원으로 있는 형제와의 관계가 첫 인간관계다. 말을 배우기도 전에 엄마 품에 안겨 만나는 옆집 아기들과의 사회적 관계가 얼기설기 큰 뼈대를 만들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가면서 점점 길고 넓게 확장된다. 초등학교에서 정말 배워야 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잘 지내는 법이다. 

 성장하면서 또래 집단이나 학교 안팎에서의 사람 사이가 복잡하게 형성되고 사회인이 되면 내재적 동기보다는 외재적 동기로 맺어지는 연락처가 더 많이 생긴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웃으며 말을 거는 일보다 같은 업무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가끔은 포장된 호의를 보여야 한다. 다행인 것은 그 관계는 퇴근과 동시에 내 안중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회사 동료나 상사에게는 내가 만든 사적인 시간의 파이를 배당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회사에서 만나 평생 절친이 되기도 한다. 회사를 떠나도 오랜 시간 그때의 인간관계가 남을 수 있으니 회사 분위기가 나와 잘 맞으면 무척 행운이다. 내가 아무리 일을 잘해도 팀의 무드가 나와 겉돌면 회사 다니기가 힘들다.  

 나는 30년 전 직장의 입사동기 다섯이 여전히 만남을 갖는다. 한 명은 그 회사에 남아 있고 두 명은 같은 업계에서 일하고 두 명은 결혼하여 쭉 주부로 산다. 일 년에 몇 번 그들과 같이 하는 식탁에는 회사 동기 시절이 살아나서 우리와 함께 앉아있다. 그때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승진을 했는지 누가 팀장의 최애였는지 따위는 이제 허물없는 수다의 소잿거리가 될 뿐이다. 

 

 회사 내에서는 입사 연차와 직급에 따른 서열이 존재한다. 호칭부터 그렇다. 이름의 성 뒤에 직급을 붙여 지금 밥을 먹는 상대가 대리인지 과장인지를 주지 시켜서 서로에 대한 스탠스를 잊지 말라고 압박한다. 직급은 존대의 밀도를 규정한다. 여전히 그런 호칭을 고수하는 회사들이 더 많긴 하지만 효율을 중시하는 기업들에서는 사내 호칭에 그런 의지를 표현한다. 다국적 기업이 아니어도 영어로 된 닉네임을 쓰거나 본명 이름에 '-님'을 공통으로 붙여 서열을 배제하는 회사도 늘고 있다. 전통적으로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우리나라 기업 문화를 바꿔서 수평적이고 상호적인 분위기로 지향하면 더불어 따르는 장점이 많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평등의 느낌이 사라진 호칭을 쓰는 것은 불편하다. 부르는 말이 불편하면 대화가 편치 않고 자연스레 소통이 준다. 한 분야의 경험과 노하우를 많이 가진 선배와 격변하는 시대 감각을 장착한 활달한 후배가 자유롭게 소통하며 머리를 맞대어 회사가 살아남는다.   


 인간에게 가장 즐거운 자극은 '다른 사람'이라고 한다. 타인의 자극이 즐겁게 다가오면 더없이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힘겨워진다. 우리가 학교를 다니거나 크고 작은 사회적 경험을 하면서 수없이 지나온 관계들을 떠올려 본다. 새 학기가 되면 새로운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만나는 스트레스가 기대감이었기도 하고 불안감이었기도 했다. 그 모든 시간들은 나에게 좋은 기억과 좋지 않은 기억을 동시에 남겼고 제각각 나를 단단하게 성장시켜 준 요인들이다. 

 회사에서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로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날 가능성과 그 반대의 가능성은 반반이다. 이것은 완전히 외부에서 오며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부분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나의 팀원 중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감수해야 한다. 

 너무 아니라고 생각되는 사람과 일을 해야 한다면 나의 경력을 믿어보자. 학교에서 이미 혼자가 아닌 여러 명의 그룹 활동으로 성적을 받아본 적이 있어서 이번이 처음은 아닐 것이다. 야생의 섬에서 거북손을 채취하며 살아남아야 하는 예능 프로그램처럼 각종 유형의 빌런이 잇따르던 조별 과제의 파국에서 살아남은 전적은 회사 내에서도 무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회사 선배는 분명히 나보다는 업무와 회사 전반의 일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 사람 자체가 좋건 싫건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이다. 배울 것, 취할 것은 가져오고 다른 것은 잊어버리자. 다른 사람이 나를 좌우하게 만들지 말자. 내 안의 이유가 아니라 내 밖의 이유 때문에 나의 기분과 오늘의 소중한 시간을 망치지 말아야 한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격언 대로 내가 듣기 싫은 말은 남에게도 하지 않는다. 내로남불에 빠지지 않으려면 부단한 트레이닝이 필요하다. 나와 남을 평등하게 놓고 본다는 전제가 필요하고 남의 입장을 고려하는 눈치도 필요하다. 동료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적당한 선을 그때그때 캐치하는 센스도 요구된다. 이런 감각을 타고나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비슷한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웬만큼은 길러진다.


 위에 인용한 글에서 김 부장과 이 대리는 서로 이해할 수 없다. 때로는 서로가 눈이 마주치면 측은함을 느낀다. 월급 많은 부장이면 뭐 해 자기 삶이 없는 걸, 젊은애가 저렇게 살아서 어쩌려고 쯧쯧. 

 너무나 당연한 것이 나이로만 보면 부장과 대리는 부모 자식 뻘도 된다. 한 세대 차이가 나니 그 갭은 엄청나다. 같은 집에 있다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잔소리나 호통,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는 말대꾸나 거부가 치열할 것이다. 

 세대 차이를 전제하면 그나마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서로 관심을 끊을 수 있지만 비슷한 또래와 비슷한 능력의 동료끼리 핀트가 맞지 않으면 한숨이 커진다. 그런데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할 가능성도 낮다. 서로 안 좋아하지만 대충 내리고 올려 맞춰가면서 일하는 것이다. 

 만약 그다지 별로인 상대가 암묵적인 합의로 대강 맞추고 지내자고 나오는 게 아니라 나에게 화를 내거나 터무니없는 행동을 한다면 분명하게 선을 긋고 나는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려줘야 한다. 

 어떤 좋은 회사도 나의 평안보다 소중하지 않다.    

       


  *현직자의 말

40년 차 중소기업 대표 - 사람이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원인은 능력, 노력, 운 중 하나에 있다는데 내가 보기엔 '인간관계'에 기인하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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