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다른 두 세계가 만나고 있다
평등의 느낌이 사라진 호칭을 쓰는 것은 불편하다. 부르는 말이 불편하면 대화가 편치 않고 자연스레 소통이 준다. 한 분야의 경험과 노하우를 많이 가진 선배와 격변하는 시대 감각을 장착한 활달한 후배가 자유롭게 소통하며 머리를 맞대어 회사가 살아남는다.
인간에게 가장 즐거운 자극은 '다른 사람'이라고 한다. 타인의 자극이 즐겁게 다가오면 더없이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힘겨워진다. 우리가 학교를 다니거나 크고 작은 사회적 경험을 하면서 수없이 지나온 관계들을 떠올려 본다. 새 학기가 되면 새로운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만나는 스트레스가 기대감이었기도 하고 불안감이었기도 했다. 그 모든 시간들은 나에게 좋은 기억과 좋지 않은 기억을 동시에 남겼고 제각각 나를 단단하게 성장시켜 준 요인들이다.
회사에서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로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날 가능성과 그 반대의 가능성은 반반이다. 이것은 완전히 외부에서 오며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부분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나의 팀원 중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감수해야 한다.
너무 아니라고 생각되는 사람과 일을 해야 한다면 나의 경력을 믿어보자. 학교에서 이미 혼자가 아닌 여러 명의 그룹 활동으로 성적을 받아본 적이 있어서 이번이 처음은 아닐 것이다. 야생의 섬에서 거북손을 채취하며 살아남아야 하는 예능 프로그램처럼 각종 유형의 빌런이 잇따르던 조별 과제의 파국에서 살아남은 전적은 회사 내에서도 무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회사 선배는 분명히 나보다는 업무와 회사 전반의 일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 사람 자체가 좋건 싫건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이다. 배울 것, 취할 것은 가져오고 다른 것은 잊어버리자. 다른 사람이 나를 좌우하게 만들지 말자. 내 안의 이유가 아니라 내 밖의 이유 때문에 나의 기분과 오늘의 소중한 시간을 망치지 말아야 한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격언 대로 내가 듣기 싫은 말은 남에게도 하지 않는다. 내로남불에 빠지지 않으려면 부단한 트레이닝이 필요하다. 나와 남을 평등하게 놓고 본다는 전제가 필요하고 남의 입장을 고려하는 눈치도 필요하다. 동료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적당한 선을 그때그때 캐치하는 센스도 요구된다. 이런 감각을 타고나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비슷한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웬만큼은 길러진다.
위에 인용한 글에서 김 부장과 이 대리는 서로 이해할 수 없다. 때로는 서로가 눈이 마주치면 측은함을 느낀다. 월급 많은 부장이면 뭐 해 자기 삶이 없는 걸, 젊은애가 저렇게 살아서 어쩌려고 쯧쯧.
너무나 당연한 것이 나이로만 보면 부장과 대리는 부모 자식 뻘도 된다. 한 세대 차이가 나니 그 갭은 엄청나다. 같은 집에 있다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잔소리나 호통,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는 말대꾸나 거부가 치열할 것이다.
세대 차이를 전제하면 그나마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서로 관심을 끊을 수 있지만 비슷한 또래와 비슷한 능력의 동료끼리 핀트가 맞지 않으면 한숨이 커진다. 그런데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할 가능성도 낮다. 서로 안 좋아하지만 대충 내리고 올려 맞춰가면서 일하는 것이다.
만약 그다지 별로인 상대가 암묵적인 합의로 대강 맞추고 지내자고 나오는 게 아니라 나에게 화를 내거나 터무니없는 행동을 한다면 분명하게 선을 긋고 나는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려줘야 한다.
어떤 좋은 회사도 나의 평안보다 소중하지 않다.
*현직자의 말
40년 차 중소기업 대표 - 사람이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원인은 능력, 노력, 운 중 하나에 있다는데 내가 보기엔 '인간관계'에 기인하는 경우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