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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Oct 27. 2024

물건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많이 얽혀 있다는 것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 법정, <무소유>, 범우사, 2009, 23-24쪽




 물건에 대한 명문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기본이다. 단편 수필 '무소유'를 책 제목으로 삼았다. 스님은 마하트마 간디의 소박한 생애를 예로 들며 지나친 소유욕으로 인해 불화가 끊이지 않고 전쟁까지 일어나는 인간사를 비판한다. 그리고 스님 자신이 난초 화분을 너무 아낀 나머지 그에 얽매여 마음과 행동이 부자유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내가 죽을 때는 소유했던 많은 물량도 어쩌지 못하고 태어날 때처럼 빈 몸으로 가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내게 정말 유효하고 의미 있는 것만 가지고 홀가분하게 살아가라고 말씀하신다.       



물건을 덜 사야 하는 이유 

 내게 물건을 들이는 경로를 생각해 보자. 내가 골라서 사거나 만들거나, 외부로부터 받은 것이다. 사실 물건이 우리 곁에 있으려면 수용하는 나의 의사가 가장 결정적이다. 선물이든 이벤트에 당첨이나 사은품이든 내가 원하면 그 물건을 들이지 않고 내칠 수는 있다. 

 나는 얼마 전에 오픈한 베이커리 카페에서 친구 두 명을 만났다. 우리 셋이 음료 한 잔씩 석 잔을 주문하니 13200원이 되었는데 그날 카페에서는 2만 원 이상 구매 고객에게 가방에 달 수 있으며 큼직하고 귀여운 인형을 증정하고 있었다. 

 선착순 증정이면서 인형이 든 상자가 직원 옆에 있었고 그 안에 몇 개가 남았는지, 또 인형상자가 추가로 몇 개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계산대에 섰다. 빵 7000원어치를 더 사서 그 인형을 내 손에 넣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 전날 집에서 크고 작은 인형들을 한데 모아둔 채 어쩌지 못하고 둔 비닐백을 보고 저것을 언제 처리하나 생각한 참이었는데도 말이다)  


 과거에 비해 현대인은 지나치게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고 기능이 중복되거나 불필요한 물건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물건을 쉽게 살 수 있는 반면 내구성 약하거나 디자인이 유행에 떨어져서 같은 품목을 자꾸만 더 사기도 한다.  

 물건 하나를 소유하면 그것을 둘 공간, 관리하는 데 드는 시간과 품이 자연적으로 따른다. 물건이 많아지면 그만큼 공간과 시간과 노력이 소비된다. 물건에 쓰는 수고를 줄이면 다른 방면에 열정을 쏟을 여유가 생긴다. 

 우리가 물건을 사기 전에 꼭 사야 할까를 판단할 시간이 필요하다. 공짜로 얻는 물건조차, 저것이 내게 꼭 필요하며 내 관심의 일부를 줄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판단할 시간이 당장 나지 않으면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 나중에 결정해도 된다. 

 물건 구입을 고려할 때 친구들을 활용해 보자. 친구 중에 새 물건을 쉽게 사지 않으며 있는 물건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속으로 그를 소환한다. 00이라면 이것을 샀을까?

 반대로 물건을 너무 쉽게 사는데 주변 정리가 안 되어 심신이 복잡한 지인도 타산지석으로 삼는다. 미안하지만 그 애처럼 되는 건 수순이야 하며 마음을 잡을 수 있다. 

 청소하기 싫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아주 깨끗한 집 사진을 보거나 반대로 아주 난장판인 집을 보는 것이다. 어느 경우든 발딱 일어나 정리를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물건을 정리하는 방법

 나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인 네이버 카페에 가입해 있다. 그곳은 여느 카페의 통과의례인 신입회원 가입인사나 기본 댓글 수 충족 같은 것은 (꼭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해서) 필수적이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미니멀게임을 시작하라고 권유했다. 

 미니멀게임은 30일 동안 하루에 하나씩(혹은 그 이상도 좋다)을 버리며 인증 글을 올리는 것이다.  

 일단 주변을 정리하려고 하면 자신의 스타일에 따라 금토일 주말이나 연휴 같은 기회에 한 번에 이사하듯 정리하기와 미니멀게임처럼 하루에 하나씩 정리하기 중에 고른다. 물론 두 가지를 다 해도 좋다. 정리할 목록을 미리 적으려 한다거나 너무 버거운 목표를 세우면 시작도 전에 지치든지 진행이 느려지니 주의한다. 학창 시절에 시험공부를 하기 전 책상 정리를 하다 에너지와 시간을 소진하고 쓰러져 버린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도 정리가 오늘 당장 해결해야 할 비상사태는 아니니까 옛 물건을 정리하다 감동을 느끼는 시간도 소중하다. 

 속도보다는 정리 결과와 진도의 밸런스가 중요하다.  

 미니멀리스트 되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리정돈의 첫걸음으로 하루에 하나씩 버리기는 지치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다. 30일간 30개의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는 게 그렇게 큰 차이가 있겠나 싶지만 버릴 물건을 고르는 안목도 길러지고 얼마나 많은 물건들과 무방비 상태로 지냈는지 깨닫게 된다.  

 집을 돌아보고 쓰지 않는 물건이 있으면 보이는 대로 치운다. 물건 정리 기준은 '이것이 현재 나의 삶에 가치가 있는가'이다. 큰 쓰레기봉투와 재활용 쓰레기봉투를 들고 타깃 구역으로 향해 물건을 처리한다. 일단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대부분은 쉽게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버리기가 주저되는 물건은 일단 버리지 말고 따로 상자를 마련해 넣어둔다. 

 한 달이 지나도 그 상자를 열어보지 않고 그 물건을 찾지 않는다면 그 물건은 버린다. 아마 침대에 누워 생각해 봐도 거기 뭐가 들어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내 생활에 필요 없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잡동사니였다는 반증이다. 

 더블체크를 하고 싶다면 지금 버리기가 주저되는 물건이 내가 언제든 부담 없이 (오히려 더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다시 살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언젠가는 쓰겠지라는 생각에 별 거 아닌 물건을 하염없이 보관하느니 깨끗이 버리고 정말 필요할 때는 좋은 것으로 다시 사는 게 낫다. 

 

 미국의 미니멀리스트 죠수아 필즈 밀번은 <덜 소유하고 더 사랑하라-데이원, 2023, 139쪽>라는 저서에서 '만약 지금 이 물건이 순간적으로 연소돼 사라진다면 내 속이 시원할까?'를 묻고 그 답이 '예스'라면 바로 버리라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가진 물건 중에 그런 마음이 드는 게 있을까' 싶지만 있다. 내 처치 레이더에 걸리기 전까지 오랜 시간 무사안일하게 버텨온 것들이 꽤 많아서 놀랍다.  

  

 

 

 정리된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게 잡동사니를 치웠다면 그 자리를 채우지 말고 그대로 둔다. 조그만 물건이 나간 자리가 의외로 시원하게 보일 것이다.  

 정리가 잘 되어 깨끗한 내 집(방)을 찍어서 휴대폰 앨범에 찾아보기 좋게 저장한다. 몇 주가 지나 다시 어지러워져도 다시 정리하는 일이 훨씬 수월해진다. 한번 5킬로미터를 걸어본 사람은 다음번에 다시 5킬로미터 걷기가 전보다는 두렵지 않다. 한번 대청소를 한 방은 다음번 청소에 소요되는 시간이 훨씬 적게 걸린다.     

 독립해 살고 있다면 생필품도 많이 사지 않는다. 두루마리 휴지는 몇 개 남았을 때 한 꾸러미 산다, 마지막 칫솔을 꺼냈을 때 새 칫솔 3개들이 한 팩을 산다 식으로 나에게 맞는 기준을 정한다. 

 한쪽 공간에 예비물건 전용팬트리를 정하고 재고에 따라 추가 구입을 한다. 재고가 한눈에 보이면 좋다. 보통 카페들은 재료나 일회용품의 재고를 그런 방식으로 떨어지지 않게 관리한다.   


 철저한 자본주의 전략을 반영한 알고리즘이 나에게 쓸데없지만 탐나는 물건들을 끝없이 제시한다는 것을 기억한다. 우리는 무엇이 필요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눈으로 보기 때문에 산다. 물건을 매대나 온라인스토어에서 보기 전까지는 그것을 살 이유가 없던 것이다.

 물건은 필요해서 사고 필요한 만큼 사고 필요가 없어지면 처분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어느 나라보다 미니멀리즘이 큰 인기인 일본에는 대지진 같은 자연재해로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물건이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사람들이 많다. 보통은 그 존재가 없어져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 법인데 물건은 반대로 그것이 없어져야 그만큼까지는 필요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물건을 정리하는 테크닉은 다른 영역으로도 확장된다. 복잡한 인간관계를 해결할 수도 있고 업무적인 부분의 효율성을 찾을 수도 있고 내 안의 집착이나 욕심을 버리는 마음의 재정비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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