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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Oct 27. 2024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윤동주, '새로운 길', 1938작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교문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잔디밭 가운데에 큰 현판이 서 있었다. 거기에는 이런 글귀를 적었다.


 우리 모두 가자.

 있는 길 가려 말고 없는 길 헤쳐 가서

 흔적 많이 많이 또 많이 남기리라.


 3년을 매일 보던 말이라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한다. 초대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라고 들었다. 고등학생 때의 나는 '없는 길을 헤쳐 가라'는 도전적 표현은 맘에 들었고 흔적을 많이 남기라는 말은 이름을 날리라는 말 같아서 안 좋았다. 사람이 꼭 이름을 널리 알려야 가치 있는 건 아니잖아, 하는 심술이 났던 것이다.


 두 가지 뜻의 '길'을 생각해 본다. 실제로 지면 위에 그려져서 우리를 이곳저곳으로 이동하기 쉽게 해 주는 길과 우리가 살면서 향하는 어떤 목적이나 지향하는 쪽으로의 길이다. 두 가지 길은 지도 위에 있는지 이상 속에 있는지만 다를 뿐 역할이나 함축적 의미는 같다. 

 목적지에 갈 때 어느 길로 가는가는 정답이 없다. 빠르게 가기 위해 고속도로로 갈 수 있고 좀 돌아가더라도 주변 풍경을 구경하고 안전한 속도로 가는 국도를 선택할 수 있고 다른 차들이 덜 가고 내비게이션에서 추천하지 않는 이면도로와 굽은 길이 많은 루트를 굳이 거칠 수도 있다. 누구도 어떤 것이 옳거나 바른 길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빠른 길, 재미있는 길, 낯선 길이 있을 뿐이다.

 인생 길도 그렇다. 지금은 남들이 나보다 앞서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누가 먼저일지 알 수 없고 더욱이 먼저 가는 게 진짜로 좋은 건지도 알 수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많은 길을 거쳐서 여기에 이르렀고 앞으로도 더 멀리 갈 것이다. 길을 인생에 대입한다면 삶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우리는 길 위에 있다. 

 우리 모두는 최종 도착지가 어디인지 모르는 채 달린다. 도착지를 입력하지 않고 모르는 길을 달리는 중이라고 할까. 일단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면 고속도로로 가는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고속도로에서도 어떻게 달리느냐, 어느 차선을 잘 선택하며 가느냐, 휴게소마다 쉬고 있지는 않느냐, 대형 사고가 앞을 가로막지는 않느냐, 내 차가 고장 나지는 않느냐 아니면 운전자가 주행을 포기하고 갓길에 멈추지는 않느냐에 따라 모두 다른 결과를 낳는다. 앞만 보고 속도위반을 하며 요리조리 잘 달려서 쉬지도 않고 도착했다 해도 그곳이 내가 원하던 장소가 아닐 수도 있다. 

 고속도로는 길도 넓고 빠르지만 한번 진입하면 다음 톨게이트까지 빠져나오고 싶어도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신호등이 많은 국도와 제한속도가 낮은 시골길로 달리면서 맛집도 들르고 마을 구경도 하고 내려서 사진도 찍어가며 나중에 도착했지만 그 드라이브 자체가 행복했다고 마침표를 찍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우화를 기억해 보자. 애벌레들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수많은 애벌레의 행군을 따라 한 곳으로 몰려간다. 애벌레들은 다른 애벌레를 짓밟으며 모두가 한 나무 위를 향해 끝없이 오르는 전쟁을 치른다. 밟히고 추락해서 죽는 애벌레들이 속출하고 그 위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다들 남들을 따라 나무 꼭대기에 오르려 한다. 

 무의미한 집단 경쟁이 싫은 애벌레는 대열에서 빠져나와 번데기가 된 애벌레를 만난다. 그제야 애벌레의 삶을 버리고 번데기로 버티는 과정은 힘들지만 이 과정을 거쳐야 아름다운 나비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애벌레로서 나무 기둥을 기어오르는 게 아니라 나비로 탈바꿈하여 나무 위로 자유롭게 날아서 올라간다. 종착지에 이르는 방법에 애벌레로 기어서 올라가는 길과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길이 있는 것이다. 


 시인은 어딘가를 향한 길을 매일 걷는데 그 똑같은 길이 늘 새롭다고 말한다. 집에서 회사까지 오고 가는 길도 같은 길이지만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 길이다. 똑같은 일의 반복은 타임루프 영화 속에서나 일어난다. 매일 같은 시간에 타는 버스도 매일 다르다. 직장에서 매일 보고 맞는 얼굴들과 상황도 매일 다르다. 뭉뚱그려 매일의 반복이 지루하다고 느끼는 대신 그때그때 다른 요소들을 틀린 그림 찾기 게임처럼 대하며 새롭다고 느끼는 것이다. 사실 쉽지만 힘든 일이다.


 당장은 마음에 차지 않는 곳이더라도 어쨌든 회사가 내게 월급을 주고 일할 기회를 주는 데에 감사하며 충실히 배우고 자신의 실력을 쌓아야 한다. 그래야 다른 길을 가고 싶을 때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실력과 노력을 챙긴 후에는 행운이나 기회가 따라줄 때 그 기류에 올라탈 수 있다.  

 예전 같은 평생직장의 개념은 무색해졌고 나 자신의 가치와 커리어를 업그레이드하는 몇 번의 이직이 일반적인 시대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여기를 거쳐 다음번에 어디로 갈지 모르고 갑자기 어떤 길이 연결되며 어디로 이끌지 알지 못한다. 현재 지나는 이 길에서 얻은 자산으로 다음 길을 더 순조롭고 즐겁게 갈 수 있게 노력하면 된다.          

   


 *현직자의 말

 25년차 HR 담당자 - 어떤 길로 가야할 지를 모르는 순간부터가 여행이라는데 인생은 여행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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