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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Feb 14. 2023

파리의 노숙자는 와인을 마신다

딸과의 여행은 엄마들의 로망  

 작은딸과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좋았지만 힘들었고, 힘들었지만 좋았다.




 

 힘들었던 이야기


 이코노미 석으로 가는 장거리 비행이 그렇게 힘들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날 오후부터 오른쪽 다리로 디딜 수가 없었다. 저녁이 되자 다리가 통째로 빠지는 것처럼 심하게 아파서 절룩이며 걸었다. 이부프로펜이 든 파스를 잔뜩 사서 허리부터 종아리까지 빈틈없이 붙이고, 내 다리가 움직여지나 밤새 체크하며 자다 깨다 했다.

 30년 가톨릭 냉담 신자인 주제에 기도도 했다.


 주님, 제발 내일 제가 운신을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딸에게 방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제발요.

  

 다행히 다음날 상태가 훨씬 좋아졌다. 한나절을 호텔에서 더 쉬고 나니 저녁부터는 예약한 일정을 찬찬히 할 수 있었다.


 좁은 비행기에서의 오랜 버티기만이 원인이 아니라 여행 전부터 증상이 있었다. 여행용 체력을 기르기 위해 두 달간 운동을 매일 한 시간씩 했는데 부실한 하체 근력을 만들려고 다리 운동과 스쾃을 집중적으로 했었다. 그러다가 정작 출발 사흘 전에 갑자기 고관절과 옆엉덩이에 처음 느끼는 통증이 생겼다.

 이틀 동안 부랴부랴 통증을 다스리긴 했지만 장시간 앉아서 가는 바람에 결국 사달이 났다.          


 힘든 여행을 다녀와서야 우리 나이에는 긴 여행 전에 영양제 주사 두 대쯤은 미리 맞고 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좋았던 이야기


 그동안 다녀 본 동양의 타국들이 이국적이었다면 서양의 나라들은 '완전히' 이국적이었다. 높은기둥으로 받쳐져 신전처럼 화려한 역사 지붕 위에 앉아 있는 여신상, 웅장한 건물의 벽을 둘러 빼곡히 새겨진 조각들, 세상의 빛을 다 모은 듯 눈부신 유리 천장과 미술 교과서에서 보던 거장들의 그림 등 낯설고 아름다운 것들은 황홀했다.  

 딸은 젊디 젊은 자기 자신과 놀라운 풍경을 부지런히 아이폰으로 찍었고 살짝 낡은 나는 사진은 덜 찍고 그저 그 순간들을 잘 보고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모습이 저마다 사람들의 생활양식이나 가치관, 예절 등이 다른 것도 재미있었다. 며칠뿐이지만 그곳 사람들의 방식에 맞춰가며 살아 본 일은 K-아줌마에게 색다른 경험이었다.    


 처음으로 보고 느낀 모든 것들 덕에 시야가 넓어지고 마음이 담대해졌다. 우리 동네에서 남과 비교하며 아등바등 살거나 잘난 체하며 사는 일이 소소하게 여겨졌다.

 영화 포레스트검프에서는 인생이 초콜릿 상자라고 했지만 마치 세계 각 나라가 초콜릿 상자라서 어떤 맛이 나올지 모르겠다는 기분이었다.

 비록 나날이 몸은 힘겹고 돈도 많이 들지만 심신이 가능할 때 상자 안에 많이 남은 미지의 초콜릿을 하나씩 꺼내 먹으며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프랑스의 수도 파리, 영국의 수도 런던의 관광지나 중심 거리 곳곳에는 홈리스가 참 많았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과 다른 것 중 하나다. 작은 강아지를 무릎 위에 소중히 안고 있는 사람을 애틋하게 바라보다가 그가 와인병을 꺼내 코르크마개를 뽑아 마시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파리에서는 노숙자도 와인을 마시는구나. 알고 보니 우리 돈으로 2천 원짜리 와인도 흔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소주가 좀 더 작고 독한 것을 감안하면 가격이 비슷한 셈이다.

 

 어느 날 아침에 그 앞을 지나가던 청년이 그에게 몸을 숙여 뭐라고 말하며 돈을 주더니 담요도 여며 주었다. 그러고 나서 가던 길을 가던 청년과 그 뒷모습에 대고 연거푸 고마워하는 아저씨를 목격했다.

 앞뒤 사정을 다 모르지만 여행객의 눈에 띈 그 몇 초 간의 인간적 교류는 살만한 세상의 증거였다.

 홈리스가 양산되는 원인의 사회적, 개인적 책임 소재를 따지고 공공 차원의 대책과 보장을 갑론을박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니까 당장이 어려운 타인에게 선의를 느낀다.

  

 마음속에 일어난 선의를 실제로 표현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한 해가 지나 나도 52세에서 53세가 되었다. 그토록 심심한 52세 주부가 되니 처음으로 먼 여행도 다녀올 수 있었다. 바쁘게 살아온 지난날이 있으니 심심한 50대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거겠지.

 

 피부가 좀 쳐지고 먹는 약이 늘어난다는 것만 빼면 사실 50대 주부처럼 좋은 직업이 또 있나 싶다.

 

 

내게는 여행이나 그들에게는 일상인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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