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면 가족이란
새해를 맞아 우리끼리 자유롭게 찍는 셀프 사진관을 예약해서 다녀왔다. 1시간 동안 맘대로 찍고 보니 무려 170여 장을 찍었다.
신중하게 선택한 다섯 장을 손바닥만 한 사이즈로 출력해 왔다. 그중 세 장을 이어 붙여 소파 뒤 벽에 걸으니 심플한 가족사진 프레임이 되었다.
남편과 둘이 찍은 사진은 안방 화장대 위에 올려놓았다.
다른 집 거실에 걸린 가족사진 액자들을 참 많이 보았다. 사진 속의 가족은 화목해 보인다. 결혼사진 속 커플이 그러하듯 함께 잘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서일 것이다.
가만 바라보니 우리 가족사진도 그렇다.
시부모님 댁에 가면 대형 가족사진 액자가 두 개 걸려 있다. 시부모님과 형님네, 시누이네와 다 같이 20여 년 정도 간격으로 찍은 것이다.
벌써 20대 중반이 넘어 사회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백일쟁이, 돌쟁이였고 각 집의 둘째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의 사진은 시아버님이 퇴직하시던 날에 찍은 것이다. 20대 후반이던 나는 겨울이었는데도 반팔로 된 크림색 터틀넥 니트를 입고 있다.
지금은 여든 안팎이 되신 시부모님도 퇴직이라는 말이 생뚱맞을 만큼 젊은 모습으로 액자 안에 앉아 계신다.
늘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의 순기능은 굳이 꺼내 보는 단계 없이 과거와 오늘을 대비해 보여줌으로써 나에게 잠시나마 순수한 마음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역기능은 굳이 꺼내보고 싶지 않은데도 무단으로 내 눈에 들이닥쳐서 세월의 무상함이라는 어퍼컷을 날린다는 점이다.
나는 이제 팔뚝이 시려서 반팔 니트티를 입지 못 한다 이 말이다.
나는 우리 부부의 결혼사진 액자도 걸지 않았고 아이들의 졸업 사진도 액자로 걸지 않았다.
만약 딸들이 결혼한다 해도 그날의 사진을 큰 액자로 만들어 걸 생각이 아직 없다.
딸들의 결혼사진은 분명 주인공들의 집에 걸릴 테니 거기 갈 때 보는 걸로 하겠다. 나는 맘에 드는 사진 한 장을 손바닥만 하게 뽑아 꽃병 앞에 세워두거나 적당한 벽에 달았다가 눈치를 보아 슬쩍 떼어 보관하는 걸로 만족하겠다.
우리의 첫 공식 가족사진도 전문 사진사의 품격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가족사진을 찍으러 두 명씩 짝지어 걸어갔던 우리 동네의 친근한 거리와, 앞서 가던 큰딸과 남편의 닮은 뒷모습과, 남편이 맨 슬링백에 편안히 앉아 있던 노견의 금빛 털이 날리던 풍경과, 깔깔대며 셔터를 누르던 순간들을 오래 기억하는 걸로 하겠다.
비싼 사진을 멋지게 거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화목하게 보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남편이 긴 퇴근길에 빨리 도착하고 싶은 집이어야 하고, 신입사원인 큰딸이 힘들었던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가족이어야 한다.
열네 살 우리 노견은 가족들이 오면 자다가도 뛰쳐나와 짧은 꼬리를 격하게 흔들다가 엉덩이까지 움직여지며 반가워한다.
우리 가족들에게 우리 집 노견만큼이나 기쁨을 주는 엄마와 아내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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