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사랑
아빠는 늘 말씀하셨다.
딸아,
말을 화려하게 잘하는 사람보다 말수가 적어도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을 만나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쉽게 짜증을 내지 않고 감정을 잘 조절하는 사람을 만나라.
물질보다 책에 더 관심을 갖는 사람,
나보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무시하지 않고
부모를 잘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거라.
그 이를 부모님께 소개하던 날,
인자함 뒤에 면접관이라도 된 듯 매서운 눈초리로 그를 훑어보는
부모님의 상반된 얼굴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20년을 넘게 애지중지하며 키운 딸을 보내려니
마치 오래된 벽지를 뜯어낼 때의 수고스러움처럼,
떼어내도 남겨진 흔적이 도무지 지워지지 않아 애를 먹어야 하는
그 찜찜한 마음이야 헤아릴 길이 있으랴.
식장에 입장하기 전날까지
사랑하는 딸을 보내야 하지만 보내고 싶지 않은 두 감정이
마음 저 너머에서 투닥거리고 있었음을,
왠지 쓸쓸해 보이는 부모님의 뒷모습에서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지독한 애증의 관계가 아닐 수 없다.
평생을 서로의 마음속에 아련한 그리움을 담은 휴전선을 그은 채
끊임없이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는.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던,
미소 속에 한 움큼 머금은 슬픔 가득 안고.
‘내 딸 잘 부탁하네.’
떠나가는 딸에 대한 애틋함을 숨기려
더욱 무덤 한 척해야만 했던 어깨의 작은 떨림과
하마터면 흘러내렸을 눈가에 고인 눈물방울들이
그 날 이후 ‘부모’란 이름에 깊이 새겨져 있다.
단 하루도 괜찮은 날 없었을 것 같은 부모님의 날들.
아직은 어머니보다도 엄마가 더 어울리는 철없는 내게
언제나 불쑥 전화를 걸어도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입 밖에 나올까 목젖 뒤로 애써 삼킨 그 삶의 짐들은 얼마나 큰 것일까.
엄마가 되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관계에 대한 미련들이 매일 밤 나를 갈증 나게 한다.
아무리 벌컥벌컥 물을 마셔 봐도 사라지지 않는 그 목마름은,
다신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한 아련함과 뒤섞여 나를 늘 허기지게 만든다.
완벽하지 않은 모습으로 엄마가 되어 아이를 품에 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늘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사소한 투정을 늘어놓는 것.
그것만이라도 해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은 존재의 가벼움으로
날아가 버릴 것 같은 흔들림 속에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건,
‘엄마’라는 이름이 주는 강한 책임감 때문일 것이다.
나의 엄마도, 당신의 엄마도, 이 세상 모든 엄마들도
얼마나 흔들리며 살았을지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일생에 꼭 한 번쯤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떠나보기를,
매일이 아니더라도 꼭 한 번쯤은 사랑한다 기억에 남을 만큼 깊고 진하게 말해주기를,
새로 생긴 맛집과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애인 대신 주름진 엄마 손 한 번 잡고 가주기를,
필요 없다 말하는 엄마의 어깨 언저리에 얻었다는 핑계로 꽃이나 화장품 몇 번쯤 선물하기를.
늦은 밤 조용한 방문 슬며시 열어 자고 있는 엄마 옆에 한 번쯤 누워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