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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t M Dec 13. 2021

위대한 손편지

때로 두 손은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된다


# 손글씨의 추억


여러 활자들 속에 섞여 있어도

"어? 저건 OO 글씨네?" 하는 글자 생김새가 있다.

얼굴처럼 눈, 코, 입이 달린 것도 아닌데

우리는 가까운 이의 익숙한 글씨를 잘 알아챈다.

바로 '필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매년 다양하게 열리는 손글씨 대회도 있고,

다소 생소한 이름의 '손글씨 문화확산위원회'라는 집단도 있을뿐더러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는 제목의 책도 있으니,

저마다의 손글씨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동안 펜을 들지 않던 때가 있었다.

결혼하고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면서 육아에 내 인생을 송두리째 쏟다 보니

펜을 들 기회와 시간은 없었고,

어딜 가든 어떤 업무를 보든 미디어를 통한 작업이 이루어지다 보니

자연스레 아날로그에서 멀어진 것도 한몫했지만.


학창 시절 글씨체 하나 바르다는 이유로 무려 6년을 서기로 지냈었는데,

지루한 수업이 끝나고 모두 책상에 엎드려 10분의 꿀잠을 청하던 시간에도

나는 그날 수업의 제목과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느라 깨어있어야 했고,

선생님께서 다음 수업 시작 전 판서를 맡길 때에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교탁 앞으로 나가 분필을 들어야 했다.

그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누군가 뭔가를 써달라고 부탁을 하면 그게 그렇게도 싫었다.

오히려 컴퓨터나 문자메시지로 쓰면 이렇게 편한데 굳이 왜? 하며

손글씨를 거부하기까지 했다.





# 손글씨가 해결책이었다


그런데 최근 손글씨의 위엄을 뼈저리게 느낀 사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10살 아들과의 '소통'의 문제였는데,

아직 이성적인 사고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에게 있어서

물건을 놓고 오는 일은 아주 허다하다.

그렇게 여러 번 일러주고 카톡을 보내도 꼭 하나씩 잊어버리는 물건들이 있다.

그런데 등교 길에 작은 포스트잇에 잊지 말아야 할 물건을 써서 쥐어주니

어쩐 일인지 잘 챙겨 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하루의 일과를 간략히 적어주고

사랑의 메시지까지 손글씨에 꾹꾹 눌러 적어주니

아이는 어느새 일을 다 끝내고 사랑한다는 답장을 적어 나에게 주었다.



컴퓨터 글씨가 해결해주지 못한 일을

손글씨가 단번에 들어준 것이다.





# 때로는 아날로그가 필요하다


휴대폰도 컴퓨터도 없던 시절의 우리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훨씬 간절했다.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 혹은 그토록 듣고 싶은

그 몇 마디의 언어를 최선의 기다림으로 꾹꾹 눌러 담아 아주 조심스럽게 운을 떼는 일.

인간관계는 원래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24시간은 네모난 작은 기계 속에 갇혀

너무나 가벼운 관계들을 만들어내고,

간절함이나 진정성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날들을 살고 있다.

그래서 혼자이지만 사색할 수 없고,

함께여도 고독하다.


그러나 살면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들에 있다.

슬픔을 위로받기에는 하나의 이모티콘보다

가까운 이의 토닥임이 더 따뜻한 법이고,

다친 마음을 치유받기에는 정형화된 컴퓨터 문자보다

투박하게 써 내려간 손 편지가 더 큰 위안을 준다.

편의점에 진열된 도시락은 당장의 허기를 채워주지만,

오래도록 배를 부르게 해 주는 것은 바로 엄마의 손맛이 들어간

집밥인 것처럼 말이다.




매일 바쁜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서

우리는 디지털의 빠른 속도에 몸을 실어야 하고,

순식간에 완성되는 자동 입력장치에 의지해야 하지만,

우리의 인간관계를 유지시키고

한없이 우울에 빠지지 않고 살게 하는 것은

아날로그의 낭만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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