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t M Nov 22. 2021

손을 그리기 시작했다

프롤로그





# 결혼 반대의 이유


남자 친구와 오랜 기간 연애 중인 친구가 있었다.

결혼을 결심한 그들은 서로를 부모님께 소개하기로 했다.

며칠 후 친구는 훌쩍이며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의 아버지가 결혼을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단다.

그 이유는 아주 예상 밖의 것이었다.

바로, 남자의 '손'이 투박하고 거칠었던 것 때문.


그녀의 아버지는 딸이 소개한 남자의 거친 손을 보는 순간, 순탄하지 못했을 그의 삶을 짐작했고,

만약에 딸이 그 남자에게로 간다면 고생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 결혼 반대의 이유였다.

황당한 이유가 아닐 수 없었다.

건축업에 종사하고 있던 그 남자는 손을 써야 하는 일이 많았고,

관리해야 하는 시간보다 노동에 써야 하는 날들이 더 많았기에 손의 까칠함은 어쩌면 당연지사였을텐데,

처음에는 친구 아버지의 주장이 너무 억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마침내 내 손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아주 자세히.

세 번의 출산과 육아의 소용돌이 속에서 장렬히 생을 유지하고 있는 나의 두 손은

비록 20대의 미끈함은 사라졌지만 그것 또한 성실하게 살아온 날들의 결과였고,

그것이 삶 전체의 판단 기준의 척도가 된다는 것은 조금 억울하다는 결과에 이르렀다. 


친구와의 전화 통화 이후 '손'에 대한 생각이 온통 머릿속에 가득 찼다.

그때부터 막연하게 손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틈틈이 그들의 손을 관찰했다.

세상 모든 사람의 지문이 각기 다르듯이 손의 생김새 또한 천차만별이었다.

그리고 '손에도 표정이란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희노애락은 얼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손의 모습이나 움직임에서도 드러난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손이기에,

그의 인생이 손에 송두리째 녹아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결혼을 반대했던 친구 아버지의 입장도 결코 무리한 이유는 아니었던 것이다.




# 거칠지만 따뜻하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다.

화려한 색과 보석으로 치장한 겉모습에 반해

주름지고 거칠어진 손에 눈이 가는 일이 드물어진다면,

지금껏 우리가 존중하고 열망하도록 배워온 많은 것들의 가치를

다시 한번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하는 것들의 대부분이

후자의 드러나지 않는 열정과 희생에서 비롯되며,

나아가 행복을 이해하는데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마땅히 존중해야 할 가치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거친 손이 단순히 거칠기만 한 것이 아니다.

투박해진 외형이 그리 간단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복사기가 찍어낸 해바라기의 복제 그림보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 진품 한 점이 훨씬 값비싼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일회용 믹스커피보다 바리스타가 직접 만든 커피 한 잔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기계가 뽑아낸 자장면보다 30년 경력 중화요리사의 손맛이 들어간

수타 자장면에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삶의 내공과 열정이 차곡차곡 쌓인 손은 거칠지만 더욱 따뜻하다.





나는 이 책에서 손을 통해

우리 곳곳에 숨어 있는 인생의 가치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우연히 스친 손끝에서 갑작스러운 사랑이 시작되는 것처럼,

책의 어느 페이지를 넘겨도 그것이 당신 삶의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그 작은 변화가 지금껏 당신 곁을 지켜온 가장 소중한 사람의 손을

한 번 더 어루만져줄 수 있는 동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당신의 두 손이

누군가의 모자란 체온에

1도가 될 수 있기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