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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t M Nov 23. 2021

손끝에서 나온 말

때로 두 손은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된다

그날 카페에 손님은 나를 포함해서 셋이었다.

창가 쪽에 마주 앉은 두 남녀는 말이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둘 다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작은 원형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그들의 분주한 손동작에

스치는 옷깃으로부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무언의 메아리처럼 카페를 가득 채웠다.


서로의 분주한 손끝에서 나오는 말로 그들의 얼굴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었고,

아무도 알아챌 수 없는 그들의 대화는 신성한 축제 같았다.

무슨 말이길래 저리도 환한 얼굴 표정을 짓는 것인지,

수어를 모르는 나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여태껏 정의 내렸던 언어의 본질이 새롭게 재정비되는 순간이었다.


사전 상의 '언어'는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전달하는 데에 쓰이는 음성, 문자 따위의 수단'이라고 정의하지만,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언어의 균형은 심하게 흔들려 보일 때가 있다.

말 겨루기라도 하듯 단어와 문장을 쏟아내는데, 사실상은 대부분이 쓸데없는 말들이다.


'수어'라는 것은 무엇일까?

청각 장애나 언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손과 손가락의 모양,

손바닥의 방향이나 손의 위치, 움직임을 달리 하여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

어찌 보면 소리로 전달되는 언어보다 진실해 보일 때도 있다.


사실 '말'이라는 것이 때로는 불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누군가를 향한 지나친 언어폭력이나,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기 위해 너무 많은 말들로 언성을 높이는 정치인들을 볼 때 특히 그렇다.

마치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말을 내뱉을 수 있을지 고심하는 사람들 같다.

그런데 말하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듣는 것에 있고,

입술 끝에 걸려있는 말보다 가슴에 간직한 말이 더 진실한 법이다.


시공간을 넘어선 듯한 두 남녀의 대화에서

나는 마지막 장면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사랑한다는 말.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닌 가슴에서 우러나온 말.

그건 꼭 공기를 울리는 소리가 아니어도 알 수 있는 말이었다.


맞잡은 두 남녀의 손은 끝이 아닌 영원한 시작 같았다.





그날 카페에서는 이런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Carpenters의 [A song for you]


Listen to the melody, cause my love is in there hiding.

I love you in a place shere there's no space or time.

이 선율에 귀 기울여봐요, 왜냐하면 저의 사랑이 그 가락 속에 숨어 있으니까.

전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가슴 울리는 영화 한 편을 본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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