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토스 계좌이체

by Janet M

어릴 적 나는

엄마가 점심때마다 마시는

믹스커피의 맛이 너무 궁금했다.

종이컵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뽀얀 연기가 가득 품고 있던 달콤 쌉싸름한 향기는

내 앞에 놓인 딸기우유의 단내와는

차원이 다른 냄새였다.

어쩌다가 운이 좋으면

종이컵 가장자리에 고인 갈색 커피의 잔여물을

혀끝으로 핥아먹을 수 있었다.

짧지만 강한 여운이 느껴지던 어른의 세계를

나는 잊을 수 없었다.

금지된 세상이 빼꼼 얼굴을 내밀면

동경하는 마음으로 그곳을 향해

손을 뻗던 어린 시절.

우리는 누구나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했다.



"엄마, 오늘 친구들이랑 순댓국 먹기로 했어."



어느 날 집 밖을 나서며 외치던 아들의 말에

풉, 하고 웃음이 나왔다.

고단한 하루의 끝에 문을 열고 들어가

인생의 쓴맛을 곱씹으며

소주와 함께 들이켜야 할 것 같은 메뉴인 순댓국을

고작 중학생인 아이들이 먹으러 간다니.

어른 흉내를 내는 방식도 정말이지 제각각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의 문화적 개방성은

우리 시대와는 분명 달랐다.

마라탕은 기본이고,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찜질방에 가거나

무한리필 고깃집에서 고기까지 구워 먹고 온다.

물가도 만만치 않은 요즘 교통비와 간식비,

어쩌다 먹는 밥값까지 합치면

용돈 10만 원도 부족할 때가 있다.



"엄마, 나 만 원만 보내줘."



카톡 답장을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아들에게

바로 답장이 오는 순간 중 하나는

바로 용돈을 입금해 줄 때이다.


- 고맙습니다, 엄마.


빛의 속도보다도 빠른 답장을 받는다.

나는 그 순간이 반가워

오늘도 웃으며 계좌이체를 한다.


요즘 아이들은 백 번의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무수한 잔소리와 훈계보다는

한 번의 포옹이 효과적일 때가 있다.

나의 끝없는 걱정과 재촉이 아니어도

아이는 자기만의 속도대로 잘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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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용돈 안에서도 아이는

나름의 방식대로 합리적인 지출을 한다.

때로는 돈이 없는 친구에게 빵 하나를 사주기도 하고

배고픈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사서 주기도 한다.

그런 아이의 마음이 무척이나 따뜻해서

결제 알람이 뜰 때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어느 날에는 평소보다 큰 금액이 결제되었다.

그날 오후 내내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기다렸다.

마침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의 손에

커피와 꽃 한 송이가 들려있었다.


"어버이날이라 엄마 주려고 샀어."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결제 알림 메시지만 보고
괜히 걱정부터 했던 마음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아이의 손에 들린 커피에서
어릴 적 내가 그렇게 궁금해하던

그 믹스커피의 향기가 났다.

종이컵 가장자리에 고인 커피를 몰래 핥아보며
어른의 세계를 상상하던 그 시절처럼,

내 아이도 어쩌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어른의 세계를 조금씩 흉내 내고 있었던 걸까.

순댓국을 먹으러 가고, 친구들과 고기를 구워 먹고,
용돈을 모아 꽃 한 송이를 사 오는 일까지.

그 모든 것이 아이에게는 작은 어른 연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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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에게서 커피를 받아 들었다.
따뜻한 종이컵이 손바닥에 닿았다.

여전히 달콤 쌉싸름했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조금 더 달게 느껴졌다.

아마도 그 안에 아이의 마음이

한 스푼 들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모습이 너무나 기특해

이제는 내가 더 기다리는 용돈 입금의 날.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날

나는 계좌이체를 하며 메시지를 보낸다.


- 먹고 싶은 거 사 먹어 우리 아들.


그러면 아이는 빛의 속도로 답장을 보낸다.


- 사랑해요, 엄마.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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