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아니, 할머니도 아니,
무조건 엄마만 찾고 안으라고 울고불고하던 그 시절.
집안일 좀 하려고 하면 잘 놀다가도 '안아줘'
잠이 든 것 같아 일어나려고 하면 금방 깨서 '안아줘'
어린이집 문 앞에만 도착하면 울면서 '안아줘'
"너 무슨 안아줘 병이라도 걸린 거니?"
장난으로 푸념하듯 내뱉은 말이었지만,
나는 그때 너로 인해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 아이가 친구도 못 사귀고 학교도 못 가고
사회생활을 잘할 수나 있으려나.
하지만 웬걸, 모든 건 기우에 불과했다.
내가 너에게 단정지은 병에는 유통기한이 존재했다.
하루가 1년이 되고, 키가 조금씩 커갈수록
안아달라는 말의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솔직히 편했지만, 한편으로는 서운함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 얼마나 간사한 마음인가.
방문은 예전보다 자주 닫혀 있고,
식탁에서는 눈보다 휴대폰 화면을 더 오래 바라본다.
응.
아니.
가고 있어.
너와 주고받는 메시지는 짧고 건조해서
나는 너만의 하루를 끝내 모르는 채로
이젠 돌아오지 않을 너의 어린 시절을 회상할 뿐이다.
그때 조금만 더 따뜻하게 안아줄걸.
산더미 같던 집안일 걱정은 잠시 뒤로하고
조금만 더 세게, 조금만 더 오래 안아줄걸.
그런데 어느 날 밤이었을까.
늦은 시간까지 깨어있던 네가
거실로 나와 물을 마시더니 잠시 내 앞에 섰다.
“엄마.”
익숙하지만 낯선 그 한마디에 나는 아무 말 못 하고
네 표정을 먼저 살폈다.
너는 잠깐 망설이다가
정말 오랜만에 내 품에 안겼다.
중학생이 된 너는 늘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예전처럼 쉽게 속마음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훤히 들여다 보인다.
지친 어깨, 길어진 한숨, 말끝을 맴도는 망설임.
표현하지 못한 말들이 쌓여 무거워진 마음을
내 어깨에 가만히 내려놓던 그 밤.
나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대답을
되묻지 않는 방식으로 그저 너의 등을 쓰다듬는다.
'괜찮아, 다 괜찮아.'
입밖에 꺼내지 못한 위로의 말들을
손끝에 꾹꾹 눌러 담아 너의 등을 토닥인다.
그리고 나지막이 기도한다.
너의 안아줘 병이 오래도록 낫지 않기를.
네 키는 어느새 훌쩍 자랐고
두 팔을 힘껏 벌려야만 겨우 안을 수 있을 정도여서
이제는 내가 널 안는다기보다
내가 너에게 안겨있는 것처럼 어색하지만.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그리고 네 앞에서 서두르지 않으려고 한다.
네가 너만의 세계에서 슬며시 빠져나와
무거워진 몸과 마음이 쉴 곳이 필요할 때
언제든 곁을 내어줄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도록,
그때의 너와 나처럼 서로에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품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