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육강식의 세계

by Janet M

어느 날 아침,

아들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등교한 지 한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그 시간에 전화가 온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은 아닌거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OO이가 친구들과 장난치다가 넘어져서

얼굴을 좀 긁혔어요!"


크게 다친 것은 아니라는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지만,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 갈피를 잡지 못한 마음이

온갖 나쁜 장면들을 눈앞에 가져왔다.

아이는 얼굴에 타박상을 입었고

그저 친구와 뛰어 교실로 들어오다가

턱에 걸려 넘어진 것이라고 했다.

“다음엔 조심해.”

하고픈 말들을 억지로 삼킨채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목적지를 잃은 질문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친구와 싸운걸까? 누군가 때린걸까?

혹시 괴롭힘을 당하나?


사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어쩌다 투닥거리는 또래와의 싸움은

그저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나곤 했다.



사소한 오해로 서로 밀고 당기다가도

몇 분이 지나면 다시 어깨동무를 했다.

'아들들은 다 그러면서 크는거야!'

모두가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나 역시 그말에 기대어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고 나니 풍경이 달라졌다.

같은 학년인데도 덩치 차이는 극명했고,

목소리의 굵기와 시선의 높낮이도 달랐다.

이른바 ‘일진’이라 불리는 아이들은 늘 존재했고,

그들 주변에는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힘이 센 아이, 말을 잘 하는 아이,

분위기를 장악하는 아이가 중심이 되고,

그렇지 않은 아이는 자연스레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이른바 '약육강식의 세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거다.


조금만 모자라도, 조금만 눈에 띄어도

누구든지 타겟이 될 수 있고 표적이 될 수 있는 구조.

요즘은 그런 분위기가 교실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단체 채팅방과 SNS 속에서도 서열은 이어진다.

누가 더 재치 있는지, 누가 더 많은 반응을 얻는지,

누가 더 ‘센 캐릭터’인지에 따라

보이지 않는 줄이 그어진다.

말 한마디가 캡처되어 돌고,

농담은 순식간에 조롱이 되기도 한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도 내 아이가

인터넷상에서는 두들겨 맞고 있는 셈이다.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왕따' 이야기가

우리 아이에게만은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다.

그래서 항상 불안 초조한 마음으로 보내다가

아이가 무사히 집에 들어오는 저녁이면

그제야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어느 날 아이는 생전 관심도 없던 운동이 배우고 싶다며

격투기를 가르치는 체육관에 등록시켜달라고 했다.

장난으로라도 친구와 다투는 걸 싫어하고

심지어 축구나 농구 경기에서도

몸싸움을 싫어했던 아이인데

격투기를 배우겠다는 아이 때문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왜?”


“그냥… 나도 좀 세지고 싶어.”


아이의 대답은 짧았지만,

그 말은 내게 오래도록 남아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운동 욕구가 아니라,

지금 서 있는 세계에 대한 아이의 인식이 담겨 있었다.

중학생의 세계는 생각보다 냉정하다.

힘이 있으면 덜 건드려지고,

당당하면 쉽게 무시당하지 않는다.

아이는 이미 그 공기를 읽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고민 끝에 체육관 등록을 허락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가 누군가를 이기길 바라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길 바라면서.

또한 때로 세상은

누군가를 넘어뜨리는 방식이 아니라

상대를 일으켜세우는 힘이 더 세다는 것 또한

배워나가기를 바라면서.




첫 수업을 마치고 나온 아이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힘들었지만 재미있다고 했다.

땀에 젖은 티셔츠를 보며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어제보다 한뼘 더 큰 아이의 등을 바라보며

넘어져 얼굴이 긁히던 언젠가의 날처럼,

치열한 그 세계를 지날 때 또 다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순간이 오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언젠가는 이 약육강식의 세계를 통과해,

힘의 논리가 아닌 자신만의 중심으로

단단히 서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그저 넘어져서 울고만 있는 아이가 아니라

툭툭 털고 일어나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돌아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를 말이다.


나 또한

너의 작은 상처 하나에 발을 동동 구르지 않고
불안을 안고도 하루를 건너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덤덤하게 살아나갈 방법을

우리 모두 배우는 중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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