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처음 두 발로
세상을 향해 걸어갔을 때
우린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마치 큰 대회에서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사진을 찍고 박수를 치며 주위에 소식을 전했다.
너의 작은 두 발에 걸린 호기심 한 줌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탐색하느라 정신없었고
열어보고 싶은 마음과 올라가고 싶은 욕구,
만져보고 싶은 생각이 한데 모여
바쁘디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유 없이 씩씩하고 분주한
네 발걸음을 따라가기 위해
나는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어 불안했다.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돌아갈 곳은 어디인지 따위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 듯
너에게는 세상이 넓고 한없이 친절해 보이던 때.
너의 한없이 작고 가벼운 가방이
어디선가 불어오는 태풍에 날아가버릴까
이렇게라도 붙잡지 않으면 견딜 수 없던 날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너의 발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한 것은.
너는 자주 멈춰 섰고 자주 뒤를 돌아봤다.
선택의 기로에서 선뜻 결정을 하지 못하는 날엔
무거워진 가방의 무게만큼 질문도 많아졌다.
늘어난 교과서와 문제집들 말고도 더 무거운 건
성적표에 적힌 숫자와 친구들과의 관계,
답을 알 수 없는 미래라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그 무게가 너의 어깨를 유난히 짓누르는 날,
너는 괜히 창밖을 오래 바라보고
말수가 줄어든다.
가방 속의 책들이 답을 주는 것 같지만 사실
인생의 답은 스스로 써 내려가야 한다는 걸
깨닫는 날이 오겠지.
또 어떤 문제는 답이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는 순간,
어른이 되는 거라고들 말하더라.
정답을 고르는 연습을 하던 아이가
정답을 만들어야 하는 순간에 서게 되는 일.
네가 언젠가부터 함부로 달리지 않고
자주 멈춰 서서 숨을 고른다면 그것은
넘어지는 일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방법까지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너의 걸음이 조심스러워진 거라면
엄마는 그 느림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으려 한다.
많아진 너의 고민만큼이나 무거워진 책가방을
어깨 한가득 메고 나가는 너에게,
힘들면 잠시 내려놓아도 된다 말해주고 싶다.
사실 인생은 직선이 아니라
수많은 쉼표로 이루어진 긴 문장이라는 걸.
가방과 인생의 무게는 비례한다지만
그 무게를 견뎌낸 만큼
너는 더 깊은 사람이 될 것이다.
도무지 좋아 보이지 않는 날들마저
너의 일부가 되어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방향을 제시하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해 줄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너무 애쓰지 말고
네 걸음으로 나아가렴.
엄마는 네가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딛던 그 자리에서
언제든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자리를 지키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