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베토벤과 지휘자뿐이다

너만의 헤어스타일

by Janet M

다 같은 교복, 다 똑같은 헤어스타일.


곱슬머리였던 나는 귀밑 3센티미터까지만 허용되는

'두발 검사'가 끔찍이도 싫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내 머리카락은

갈 길을 잃고 사방으로 뻗쳤다.

가뜩이나 외모 비수기이던 중학생 시절에

촌스러운 단발머리는 나를 더 못생기게 만들었고

예민했던 사춘기 시절에 자존감마저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머리카락은 개성이라기보다 관리 대상이었다.

조금만 길어도 불려 나갔고, 조금만 튀어도 잘려 나갔다.

그 시절을 무사히 통과한 우리는, 그래서인지

아직도 ‘단정함’의 기준이 머리 길이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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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되면서 아들은 도통 머리를 자르려고 하지 않는다.

6학년까지만 해도 눈썹과 귀를 가리지 않아

누가 봐도 깔끔하게 자른 남자아이의 머리였는데.


이제는 미용실 이야기를 꺼내면 고개부터 젓는다.

(한 번은 아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짧게 자른 미용사 때문에

하루 종일 오열을 한 적도 있었다.)


“지금이 딱 좋아.” “절대 안 자를 거야.”


짧게 자른 게 더 시원하고 깔끔하다는 내 설명은

아들의 취향 앞에서 힘을 잃는다. 그도 그럴 것이

하교 시간에 정문을 빠져나오는 아이들을 보면,

우리 아들만 그런 것도 아니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를 연상시키는 파마머리에

지휘자처럼 앞머리를 쓸어 넘기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몰려나온다.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카락이 그들에겐 규칙을 어긴 흔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처럼 보인다.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변화다.





어렸을 때 아들은 미용실만 가면 울고불고 난리였다.

가운을 씌우는 순간부터 도망칠 준비를 했고,

가위 소리만 나도 몸을 비틀었다.

결국 내 무릎 위에서 겨우 머리를 잘랐다.

그래도 미용사가 잘라주는 데로 집에 오면 만족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혼자 미용실에 간다.

더 놀라운 건 파마까지 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스타일로?”라는 원장님의 물음에,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사진을 보여주고 이렇게 해달라고 한다.

그 모습이 낯설면서도, ‘아, 이 아이가 이렇게 컸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문제는 집 밖이다.
명절이 되면 친척 어르신들은 입을 모아 한 마디씩을 한다.


“남자가 머리가 왜 이렇게 기냐.”
“학생이면 학생답게 잘라야지.”
“공부는 잘하고 다니는 거냐?”

그 말들이 아들을 향할 때마다, 나는 순간적으로 과거로 끌려간다.

우리를 단정함이라는 이름으로 줄 세우던 시절로.

예의와 성실함이 머리 길이로 판단되던 때로.

설명하고 싶다가도, 설명이 통하지 않을 걸 알기에 웃으며 넘긴다.

하지만 아들의 표정을 힐끗 보게 된다.

상처받지는 않았을지, 괜히 자기 자신을 부정하게 되지는 않았을지.


머리는 그냥 머리가 아니다.

취향이고, 메시지고, 자기표현이다.

남들과 달라지고 싶은 욕망을 속으로만 삼켜온 나는 가끔 부럽기도 하다.

아들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자기 취향을 말하고,

그 취향을 실천할 수 있는 시대에 자란다는 것이.

물론 마음이 완전히 편한 건 아니다.

‘너무 튀지는 않을까.’
‘괜히 오해받지는 않을까.’
‘세상이 아직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은데.’

내 걱정은 늘 현실적인 방향으로 흐른다.

하지만 그 걱정 끝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걱정이 정말 아이를 위한 건지, 아니면 내가 익숙한 기준을 놓지 못해서인지.


결국 나는 마음을 정리했다.
머리는 언제든 다시 자라고, 스타일은 언제고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존중받지 못한 기억은 오래 남는다.

누군가의 시선 때문에, 어른들의 기준 때문에.

명확한 이유 없이 차단당해야 하는 의견과 생각들.

나는 아들에게 그런 기억을 남기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제는 아들에게 넌지시 귀띔해준다.


‘네가 선택한 스타일이 제일 멋져.’


어쩌면 이건 비단 머리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너는 더 많은 선택을 할 것이고,

그 선택들 중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다시 고민할 것이다.

잔소리를 할지, 존중을 할지. 통제할지, 믿어줄지.

지금 너의 긴 머리는 그 연습 문제 같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아들을 본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단단해 보인다.

나는 그 얼굴을 오래 보고 싶다.

베토벤 같든, 지휘자 같든, 상관없다.
하루를 맑은 웃음으로 채울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우리 시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너는 네 인생의 지휘자가 되어가고 있으니까.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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