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by Janet M

10년 전의 너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비련의 주인공처럼

애절한 얼굴로 내게 매달렸다.



그럴때면 난 어느 R&B 가수의

노래 가사를 떠올리곤 했다.


'우리 함께 했던 날들

그 기억들만 남아

너를 보내야만 내가 살 수 있을까

가지마 떠나지마 제발
가지마 사랑하잖아
가지마 나 혼자 남겨두고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에도

어린이집 문 앞에서도

심지어는 화장실에 갈 때에도.




그러던 네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전화를 한 번 걸고,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한 번.

집에 올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

30분 전 보낸 메시지는 읽지도 않았다.


너의 세상을 도무지 알 수 없는 나는

답답함에 한숨을 쉬며 세 번째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가

그만둔다.

그러는 동안 내 머릿속은 늘 같은 상상으로

가득 채워진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길을 잘못 든 건 아닌지,

괜히 불안한 뉴스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나쁜 소식을 들은 것도 아닌데

마음만 먼저 어둠 속을 향해 달려간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마침내 연결된 통화에 말이 곱게 나올리가 없다.

목소리는 높아지고 말끝엔 원망이 묻어난다.


"아, 몰랐어!"


수화기 너머로 네가 속한 세상의 소리들이

어렴풋이 들려온다.

친구들의 웃음 소리, 요란한 발자국 소리,

너희만의 언어 유희와 미성숙한 목소리들,

굳이 설명하기 싫은 불안한 공기들.

그 세계에 나는 더 이상 자동으로 초대받지 않기에

치닫던 서운함을 목 뒤로 삼키고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너의 모든 침묵이 거절은 아니고

너의 모든 무응답이 무관심은 아니기에

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타일러 본다.




이젠 꽉 잡지 않아도 괜찮다고.

때로는 느슨해져도,

가끔씩은 놓아도 괜찮다고.



오늘도 전화를 받지 않던 나의 고객은

여전히 내게 근심과 걱정을 안겨줬지만

그 감정들이 사라지기도 전에 뛰어 들어와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는다.


"엄마! 배고파!"


너의 그 한 마디에

어느새 안도라는 바다가 밀물처럼 밀려들어와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아주 오랜만인 것처럼 식탁을 차리고

네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을 올려놓는다.


고작 몇 시간인 이 기다림이

언젠가는 몇 일이 될 수도 있겠지.

나의 집착이 너의 성장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나는 조금씩 너를 놓는 방법을 연습중이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대답 없는 메시지를 기다리는 것도,

모두 사랑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너는 그렇게 잘 자라고 있다고.






#그림에세이

#성장에세이

#사춘기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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