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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Feb 05. 2024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

무기력에 대하여

9년 6개월, 회사 최장 육아휴직자인 내가 회사에 복직하고 나서 겪었던 어려움 중에 하나는

"무기력"이었습니다.


다들 승진하고,

다들 뭔가를 이룬 것 같고

나만 10년 전의 과거의 기억을 붙들고 사는 것만 같았어요.


10년 동안 세 아이를 키운 나의 이야기가

처음에는 화제가 되어

"대단하다."

라는 말을 잠깐 듣기도 했지만


이곳은 회사

육아하는 곳이 아니라

일하는 곳이기에


내가 10년 동안 아이를 낳고 키운 것은

중요하게 고려될 수가 없었지요.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내 가슴은 왜  그렇게 아리고 아린지요.


나보다 어린 직원들이

일을 잘해서 칭찬을 받을 때

왠지 나를 욕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매일매일 패배감이 느껴지는

직장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휴직 전에,

그러니깐 10년 전에

내가 회사 가는 것을 두려워했던 그 감정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진짜 인간은 변하기 힘든가 보다. 아이 셋을 낳고 그렇게 고생했는데도, 나는 똑같구나...라고 좌절감이 올라왔습니다.


패배감과 좌절감의

환장의 컬래버레이션이

무기력을 만들어냈지요.


10년을 헛살았네 헛살았어.

다들 승진하고 인정받을 때  난 뭐했나

애 낳고 기르느라 나만 늙었네

늙고 애가 셋인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자기비판(아무도 나를 뭐라하지 않는데 굳이 굳이

내가 나를 때러서 유난히 더 아픈 자기비판)으로 두드려맞고


아픔과 서러움과 두려움과 슬픔으로

쓰러졌을 때,

내 인생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이걸로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때, 문득....

잠투정 심한 첫째 아이를 키우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첫째는 소위 말해 등센서가 매우 예민했습니다.

안고 재웠는데, 바닥에 내려놓으면

눈을 번쩍 뜨고 개운하다는 듯 말똥말똥한 눈빛을 보냈지요.(웬만한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아기가 오분밖에 안 자놓고는 개운해하는 눈빛을 보일 때입니다. 영화 식스센스의 반전보다 더 한 반전이지요.)


누워서는 절대 안 자는 첫째를

어떻게든 재우기 위해

인터넷과 육아서에 나오는 방법들을 찾아보니다.

이 방법

저 방법

온갖 방법들을 시도하고 또 시도했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온갖 방법을 써니...


아이는

잠들지

않았습니다.

두둥...

(극적인 변화와 반전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만 있더군요)


그래서

저는!

아이를 매일 안고 재웠습니다. 허허허~(해탈의 웃음이 아니라 정신 나간 자의 웃음에 가깝습니다.)

아이가 돌이 지나고 두 돌이 지나고 세 돌이 지나서야

아이는 바닥에서 잠을 자게 되었어요.



그 시절 저는

아이를 잘 재우기 위해

정말 열심히 시도하고 또 시도했습니다.


실패하더라도

저는 또 시도했습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고

더 이상 새롭게 시도할 방법이 사라졌을 때


저는 수용, 받아들임을 경험했습니다.

이 아이는 엄마의 품을 매우 좋아하는구나(라고 쓰고 '이 아이는 절대로 바닥에서 잠들지 않구나'). 

허허허~(이 웃음 또한 위와 같습니다)



불변의 진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이 진실을 부정하고 싶어 맘카페와 육아서를 전전했던  수많은 불면의 밤이 떠오릅니다. 또르르르르)

어떻게 하면 아이와 내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까?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그전에는 오로지

하루종일

이의 잠투정에만 꽂혀서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거든요.

아이가 예쁜 것도 모르겠고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잠투정 고치는 것만 알고 싶었어요.



그랬던 내가

아이는 잠 안 자는 아이임을 받아들이고 나니,

아이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거창하지 않습니다.

그냥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는 거부터 시작했습니다.

매우 사소한 것부터요.



그러다,  어느새 

내가

이와 함께(남편 없이) 2박 3일 제주도도 가고

여러 공부도 하고

아이가 셋이 되었을

아이 셋과 (이번에도 남편 없이) 일주일 동안 제주 가 있더라고요.



이때 알았어요.

무기력해지는 이유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을 통제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회사에서

내가 무기력해지는 이유는

10년이라는 육아휴직의 시간을 없애버리고 싶어 하고

나보다 더 많은 경력을 가진 사람보다 뛰어나고 싶어 하고

10년의 나의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고...

나의 모든 것을 부정하려는 나 자신 때문임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여전

회사에서 패배감과 좌절감을 느끼고

종종 무기력에 빠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기력에 한없이 빠지는 대신

다이어리에 질문 하나를 적어봅니다.

정성스레 또박또박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지?"


한 번에 승진하는 것도 아니고

한 번에 천재가 되어

모든 업무를 척척해내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 주어진 일을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고, 사람들이 꺼려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하나하나 정성스레 하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감사와 존중의 마음을 보내며

그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내가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 셋을 꼭 안아주며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덕분에 내 삶이 행복하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엄마라는 경력을 통해

지금 이순간의 내가,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내가

엄마 경력 10년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고 이뤘는지

삶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엄마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와주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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