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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Jan 15. 2024

잘하고 싶은데 잘 안돼!!!!

두려움에 대하여

복직을 하고, 내가 맡은 일은 회계와 예산 분야입니다. 다들 꺼려하는 일이고, 신규직원들이 많이 하는 경향이 있는 업무요.


진급은 이미 진작에 멀리 떠나갔고, 회사에서 알아주지 않는 업무이지만, 나는 내가 맡은 일을 잘하고 싶었습니다.


업무와 관련된 지침과 법규를 찾아보며, 약 10년이라는 간극을 따라잡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습니다.(지금도 그러합니다.) 출근하고 퇴근할 때까지 화장실 가는 것도 잊을 채 일에만 몰두하는 날이 많았습니다.(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일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열심히 해도 일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큰 좌절이고 비극이었습니다. 매일 크고 작은 실수를 하는 나 자신이 보잘것없어 보였습니다.


휴직하기 전에 승진에 대한 큰 야망을 품고, 열심히 일하고 인정을 받던 내가 한순간에(사실 10년 만이지만 느낌상으로 한순간이었습니다.)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입사 연도가 가장 빠르지만 가장 일을 못하는 직원이 되다니.... 일 못하는 내가 너무 한심스러워 집에서 남편을 붙잡고 "나는 우리 회사에서 일을 제일 잘하고 싶어"라고 말하면서 울기도 했습니다.


잘하고 싶고 실수하고 싶지 않아 지침을 보고 공부할수록, 더 많은 실수를 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처음에는 내가 바본가? 내 두뇌에 이상이 있나?라는 의심을 품었다가, 이내 무언가가 단단히 잘못됨을 알았습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항상 잘하고 싶어 했습니다. 누군가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기특해하고, 누군가는 꼭 그렇게까지? 하며 부담스러워했습니다.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과도해지면

과도함이 나를 옥죄고,

장하게 만들고

나의 심리적인 평온을 깨뜨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나 잘하고 싶어 할까요?

잘하고 싶다는 크나큰 욕망의 밑에 있는 진짜 내 마음은......


"나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나는 사람들에게 똑똑하다는 말을 듣고 싶고,

나는 사람들에게 잘한다는 말을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듣고 싶습니다.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 자체에도 잘못은 없습니다. 그러나,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욕망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조절하지 못하여 앞으로 마구마구 내달리,

내 삶에서 '나'는 사라지고 '타인의 눈'으로만 가득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하루종일 나를 바라보는(사실, 타인은 내게 관심이 전혀 없을 수도 있는데) 시선만을 느끼며, 남들에게 내가 어떻게 평가받을까에 대해 긴장하고 걱정하다 보니

내 삶에 '나'가 존재할 수 없고

'나'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주 최강으로 일을 제일 잘하고 싶다는 (10년 휴직가 지니기에는 좀, 아니 너무?) 큰 욕망 뒤에

우주 최강으로 사람들에게 제일 잘 보이고 싶다는 내 마음 뒤에 하나를 더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까 봐 두려워."


두려움에도 잘못은 없습니다. 두려움이 없이 살아라, 두려움을 떨쳐내라... 등의 두려움은 부정적인 것이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는 수많은 말들에 두려움이 참 억울할 것 같습니다.


에릭 와이너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가장 열중한 순간들의 총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내가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내가 두려움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내 삶은 두려움의 순간들의 총합이 된다는 생각에

온몸에 힘이 쭉 빠져버렸습니다.


사람들이 날 미워하지 않도록

학창 시절에는 뛰어난 학생이 되도록 노력했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일 잘하는 직원이 되도록 노력했고

엄마가 되어서는 좋은 엄마가 되도록 노력했던

방향은 달라 보이지만

두려움으로 가득 찬 내 삶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도록 40년을 뛰어다니고 내 몸과 마음이 무척 지쳤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40대가 되고 좋은 점은 더 이상 두려움을 피해 뛸 체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두려움을 피할 수 없고, 이제 두려움을 마주할 때가 되었습니다.


내 삶을 되돌아보며,

두려움으로 가득한 내 삶이 후회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후회보다 이제는

'나의 두려움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구나.'라는

안도감이 일렁입니다.(물론 더 빨리 알아차렸다면 침대에 누워 이불 킥하게 만드는 수많은 기억들이 사라졌겠지만요.)


미움받을 거라는 두려움에 꽉 붙잡혀

휴직 9년 6개월의 시간을

몇 달 사이에 뛰어넘으려 했던 나를 찬찬히 바라보게 됩니다.

무리해서라도 잘하고 싶었고,

무리해서라도 미움받는 것을 피하고 싶었던

나의 두려움에 인사를 건넸습니다.


"잘하고 싶었구나,

사랑받고 싶었구나.

그동안 애쓰며 살아와줘서 고맙다.

덕분에 내가 잘 살고 있다.

고맙다."


라는 말이 뱃속 깊은 곳에서 천천히 터져 나왔습니다.


평생 어떻게 사랑받을까만 고민하던 내가

내 안의 두려움을 차분히 바라보게 되자

내 안에 차분히 떠오르는 질문 하나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나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진정한 사랑이란, 그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하고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이라는데,

나는 나의 '진정한' 행복과 건강을 위한 삶을 살고 있는지 살펴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나는

더 잘하기 위해 고등학교 때부터 20년 넘게 마셔왔던 커피를 끊었습니다.

두려움을 피하는 체력은 바닥이지만

내 삶의 활력을 위한 체력은 끌어올려야 할 것 같아 매일(하려고 노력하는)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나의 두려움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흥미진진하고 무궁무진한 쾌락을 주었던 핸드폰을 내려놓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물론 습관은 한 번에 고쳐지는 것이 아니기에 종종 유튜브 알고리즘의 세계에 빠지기도 합니다.)



복직한 지 이제 6개월

나는 여전히 실수를 합니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이 쓰입니다.

당연합니다.

자연스럽습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럴 때마다

편안하게 숨을 쉬며 어느새 내 어깨에 매달려 신나게 놀고 있는 두려움을 알아차립니다. 신나게 노는 두려움을 피하지 않고, 물리치려 하지 않고 그냥 바라봅니다. 너 또 왔니?   


그리고 나는 나에게 질문을 해봅니다.

"나는 나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그리고 또 다른 질문 하나가 떠오릅니다.

"나는 내 삶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 집에는 엄마라는 존재는 디, 항상 집에서 자신들을 기다릴 거라고 생각했다가

하루아침에 엄마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된 세 아이들이 있습니다.

세 아이들은 내가  출퇴근할 때마다 거리낌 없이(타인의 시선 따위는 1도 없이, 두려움 없이) 순도 100%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나는 10년 동안 아이들에게서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고, 덕분에 그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는 걸,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나의 볼품없고 부족한 사랑(더 좋은 엄마가 되어야한다는 두려움에 나 스스로 나의 사랑에도 가치절하하였음을 발견합니다)에도 아이들은 나의 사랑으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품고 낳고 키우고 10년이 되어서야. 아이들에게서 그리고 나에게서 진정한 사랑의 실마리이자 삶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나를 엄마로 만들어준 아이들이 고맙습니다.

엄마가 되길 참 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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