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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나의 첫 스페인 친구

드디어 만난 나디아와 바르셀로나에서의 첫 저녁

by 이구름

Episode 9.


14시간의 비행 끝에 내 생 처음으로 스페인 땅을 밟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바르셀로나의 저녁이었다. 좀처럼 비가 오지 않는다는데, 스페인이 나를 기쁨의 눈물로 맞이해 주는구나 긍정회로를 돌려본다. 출발 직전에 기안 84의 민들레를 들으며 이륙을 하던 그때의 그 설레는 마음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흘러나오는 가사를 만끽하며, 이륙을 하는 내내 나는 마스크 너머로 실실 웃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14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주구장창 내리 잠을 잘 줄 알았는데, 웬걸 잠이 안 와서, 책 읽었다가, 메모를 끄적였다가, 일기를 썼다가, 졸다가, 아주 긴긴 시간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다시 적어보기도 했다. 내 옆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은 관계로, 난생처음 잠깐의 눕코노미도 시전 해주었다.

구름! 원 없이 봤습니다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국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현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나디아와 연락을 나누었다.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는 나의 스페인 친구다. 원래 알던 사이냐고요? 반은 맞고 반은 아니요..? 오늘 실제로 처음 만났다! 사실 바르셀로나로 목적지를 정하자마자 스페인 친구를 사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꼭 어디를 가서 뭘 보고 뭘 먹을지와 같은 계획은 솔직히 마지막까지도 거의 세운 게 없다. 대신 이번 여행에서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하면 현지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그들의 삶에 섞여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운도 좋지, 내가 인복 하나는 끝내주는 것 같다. 이 거대한 인터넷 세상 속에서 정말 마음이 잘 맞는 펜팔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그것도 바르셀로나에 사는! 나도 내가 그녀를 어떻게 찾았는지 솔직히 믿기지가 않는다. 그리고 이 모든 건 내가 갑자기 스페인, 그리고 그것도 하필 바르셀로나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다.


비 내리는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국제공항

4월 한국에 한 달간 여행을 떠날 예정이라는 그녀의 프로필을 보고, 내가 연락을 먼저 했다. 그 인사를 시작으로 우리는 몇 마디 텍스트를 주고받지 않았는데 서로 뭔가를 느꼈던 것 같다. 아, 이 친구 뭔가 있다! 언어는 달라도 영혼의 온도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게 있다. 그 영혼의 온도가 대화의 온도를 이루는 것 같다. 시시콜콜한 이야기서부터 진지한 삶의 주제에까지 조금씩 가닿으며 우리가 더 친해질 수 있을지 없을지 서로 알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처음부터 왠지 우리 많이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느꼈다. 그걸 그녀도 느꼈던 걸까?


문자를 얼마 나누지도 않았는데, 나디아가 나에게 비디오콜을 하자고 했다. 솔직히 나도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살짝 긴장됐는데, 웬걸 그 작은 용기 덕분에 우리는 더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렇게 거의 초면에(?) 영상 통화로 우리는 2시간의 수다를 떨었다. 마치 오래도록 알고 지낸 친구 같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내 친구들은, 이게 가능한 일이냐, 너 진짜 신기하다, 대체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았냐 하고 무척 신기해면서도 궁금해했다. 나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지구 반대편에서 보내온 그 간의 삶의 일부에 대한 이야기, 각자 여행을 결심하게 된 배경, 여행에서 기대하는 것들, 각자가 꾸려가고 싶은 일상의 모습들 그런 것들을 나누면서 화면 너머로 이 친구가 어떤 영혼의 소유자인지 느껴졌다. 두 사람이 동시에 마음을 활짝 열고, 진심으로 눈앞의 이 사람을 알고 싶다는 순수한 관심이 서로 동했을 때, 이러한 관계성이 가능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기꺼이 내게 마음의 문을 열고 환대해 준 나디아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참 밝고 쾌활하고,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해 따뜻한 관심을 가질 줄 아는, 따뜻하면서도 사려 깊은 친구 같다고 느껴진다.

내려서 와이파이 키자마자 본 카톡. 빵터졌다. 하하하


우리는 내가 스페인으로 떠나기 전까지, 매주 2번씩 2시간의 비디오 콜을 하며 서로의 여행에 도움이 될 만한 한국어, 스페인어를 서로 가르쳐주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 달 넘게 매주 비디오 콜로 스페인어-한국어 공부를 같이 하고, 인스타그램과 카톡으로도 일상 대화를 계속 주고받았다. 나는 유럽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티켓을 구매하기도 전에, 한국에서 매주 몇 시간씩 여행과 삶과 언어에 대해 나누는 소중한 Espanol 친구를 얻게 된 것이다.


영상통화를 하면서, 이런 식으로 공부한 걸 노션에 남기며 같이 공부했다


원래는 바르셀로나에 가면 호스텔에서 머무를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디아와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계획이 변경되었다. 원래 바르셀로나에서 여기저기 같이 다니자, 나디아가 나를 근교의 어디도 소개해주고, 어디 맛집도 데려가겠다 하는 이야기들을 나눴었다. 정말 고맙게도 그녀가 몇 번이고 자신의 집에 머물러도 된다고 선뜻 먼저 손을 내밀어주었다. 민폐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원래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 같은데,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민폐를 무릅쓰고, 기꺼이 그녀의 삶에 가까이 더 들어가 보기로! 그리하여, 나는 오늘 바르셀로나 엘프라도 공항에서 빗속을 뚫고 나를 데리러 온 나디아를 마주했다. 저 멀리서 춤을 추며 달려오는 발랄한 그녀의 몸짓에 웃음이 절로 났다. 우리가 드디어 만난 것이다!


하하, 격한 포옹과 첫 베소

아무나 쉽게 믿지 말라고, 그래도 위험한 세상이라고, 조심하라고 말해주는 걱정 어린 따뜻한 조언도 있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몇 번 얻어터지고 나니,내 삶에서 경계심을 키워보려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친구를 만나기란 정말 드문 일이다. 이건 사실 한국에서도 드문 일이다. ‘아무나’하고 이런 대화가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똑같은 한국어를 구사한다고 이런 깊이와 온도의 대화가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똑같은 한국말을 쓰는데도 나의 생각이 온전히 전달된다고 느끼지 못할 때가 살면서 더 많았던 것 같다. 사람을 쉽게 믿지 말라는 조언이 사실은 아직도 참 어렵다. 솔직히 모르겠다. 워낙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이니 이해는 간다. 그리고 나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타깝지만 그런 조언을 할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서로를 믿기 어려운 세상을 살아간다고 한들, 또 아무리 내가 사람으로부터 상처받고 무너졌어도, 나는 여전히 사람에 대한 믿음을 기저에 두고 언제든 또 새로운 영혼들을 내 삶에 들일 따뜻한 마음의 품을 두고 살고 싶다. 다만 내 인생은 짧고 유한하므로, 나와 맞는 적절한 사람들을 잘 알아차리는 경계에 대해 배워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지점들을 잘 찾아가는 여행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내가 나디아와 같은 친구를 발견하고 우리가 이렇게 각자의 소중한 삶의 일부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은,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믿기 어려운 세상 속에서도 기꺼이 서로를 믿어볼 용기를 가졌기 때문인 것 같다. 죽을 때까지 나쁜 인연을 만나지 않기를 바라기보다, 관계의 예측 불가능한 어려움 속에서도 다시 또 기꺼이 사람을 있는 힘껏 사랑하는 용기를 지닌 내가 되었으면 한다. 무너져도 다시 또 내 자신을 바로 세워 기꺼이 내 안의 무언가를 나눌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첫 만남과 좌충우돌 우중 드라이브, 최고의 첫 저녁식사, 아기자기 너무 예쁜 나디아의 집까지. 따뜻한 환대로 더없이 편안한 밤이 되었다. Nadia, Gracias!!!!

내일은… 나디아의 친구 모니카의 생일 파티에 간다. 하하 나 너무 기대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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