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과 포르투갈 21개 도시를 유랑하며
어느덧 배낭 메고 훌쩍 서울을 떠난 지 60일 차다. 15시간의 비행 끝에 도달한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시작으로, 16개의 도시를 거쳐 포르투갈로 넘어왔다. 때로는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곳곳에서 놀랍도록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스페인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사랑과 도움으로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안고 스페인을 떠났다. 그리고 포르투갈 남부의 작은 휴양 도시들 라구스, 포르티망, 알부페이라를 거쳐 그동안 만난 모든 이들이 그토록 아름답다고 입이 닳도록 칭찬한 리스본에서 일주일을 머무르고 지금은 포르투에 와 있다. 포르투갈에서 마주한 면면들은 아름다웠지만, 어쩐지 스페인에서 스페인 사람들로부터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아 마음 한 켠에는 스페인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내 삶은 언젠가 이 모든 여정의 시작점이 되었던 스페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어떤 직감 같은 걸 느낀다. 무너졌던 삶을 다시 하나씩 바로 잡아가던 내 인생의 길 위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이름 하나 때문에 일사천리로 스페인행을 택했다. 그러나 이 여행의 중반을 넘어선 이 길목에서 어쩐지 더 이상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는 것 그 자체는 내게 큰 의미가 없어졌다. 순례길 대신, 이곳을 정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의 길’ 위에 서 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스페인 사람들과 포르투갈 사람들이 나눠준 따뜻한 사랑과 애정 어린 관심과 환대를 마주했다. 또, 불같이 열정적이면서도 느긋하고, 일상의 작은 행복들을 빠짐없이 누릴 줄 아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배웠다. 이번 전례 없는 스페인-포르투갈 대정전 사태 속에서도, ‘전기가 끊겼을 때 스페인 사람들의 모습’이라며 밈처럼 소셜 미디어에 돌아다니는 영상을 보면, 이 사람들 참으로 사랑스럽다. 교통 신호, 카드 결제, 열차운행 등 모든 것이 올스톱 된 도심 한가운데에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냅다 춤추며 놀고 있다. 하하하하
그냥 길을 걷다가 마주친 낯선 사람들을 향해 미소 짓고 인사를 주고받는 세상에 산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에 대해서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또, 광활한 자연의 경외 앞에서는 나의 불안과 고통이 얼마나 작고 하찮은지에 대해서, 따사로운 햇볕만 있다면 해변이든 풀 밭이든 족쇄 같은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지고 작열하는 태양의 손길에 주저 없이 뛰어드는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로움에 대해서, 돈이 없으면 대단히 불행해질 것만 같은 한국의 삶과 돈이 없어도 대단히 불행할 것도 없는 스페인에서의 삶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내가 얼마나 이런 삶을 그리워하고 바라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우리네 사회의 정겨움, 그리고 공동체적인 따뜻함이 그리웠다. 그래서 유독 사람 냄새나는 유퀴즈온더블록,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콘텐츠들이 그렇게 사랑을 받았던 거 아닐까 싶다. 또 길가에서 위급 상황이 생겼을 때 어떤 시민이 다른 시민을 구했다더라 하는 영상들은 늘 화제가 되곤 한다. 우리 모두 마음 한 켠에는 사람들을 어딘가 그리워하고 있는 거 아닐까 싶다. 관광 중심지에서 벗어난 스페인의 길 위에서, 나는 우리의 한국 사회가 지나친 경쟁과 비교로 타인을 의식하면서도, 모순적이게도 타인에게 지극히 무관심하다는 걸 다시 한번 새삼 느꼈다. 그리고 나의 이 여정에서 마주하게 될 생각들은, 내 삶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부분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감사하게도 이 여정 속에서 나는 늘 혼자이면서 또 누군가와 함께였다. 이제는 나의 자매가 된 바르셀로나의 나디아, 30대 40대 50대라는 나이를 초월한 아름다운 우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내게 알려준 나디아의 베스트 프렌드 모니카와 미레야, 내게 많은 추억을 남겨준 올곧고 순수한 카톨릭 청년 발렌시아의 페페, 한국인보다 한국의 역사와 정치를 더 잘 아는 똑똑하고도 야생마 같은 말라가의 깔로, 특수 아동 교사를 하고 있는 따뜻하고도 몽글몽글 예쁜 마음을 지닌 세비야의 알레, 취미가 너무 많아 인생이 모자라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으로 시간을 쪼개 쓰는 세비야의 페르민, 완전한 타인에게 기꺼이 친절을 베풀어 준 카르모나의 빈센테, 그리고 호스텔에 지내며 만난 낭랑 18세 독일 소녀 비비안, 좋은 대화 상대란 무엇인지를 알려준 독일 청년 쌔미, 미국에서 대학 졸업 후 스페인에서 영어 선생님을 하며 자신의 삶의 반경을 넓히고 있는 미국 소녀 레이니, 네덜란드에서부터 자동차를 몰고 여행 중인 장난기 가득한 세바스찬, 독일에서 법을 공부하고 있는 미소가 아름다운 리오니, 런던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젊은 수학 선생님 가브리엘, 텍사스에서 종교적인 물음에 답을 찾고자 Semana Santa를 보려고 먼 길을 떠나온 제이콥, 20년간 고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학교를 때려치우고 세계 여행 중인 호주인 아저씨, 터키와 비슷한 점이 많다며 한국에 눈을 반짝이는 관심을 가진 터키 청년, 포르투갈 남부 작은 도시 라구스 작은 카페에서 만난 동네 할아버지들, 29살이 되면 돈을 모아 서울에 살고 싶어 하는 포르투갈 청년 리카르두, 일자리를 찾아 포르투갈 도시들을 유랑하다 남부로 내려온 알제리 청년 페르난도, 대정전 날 샌드위치 먹다가 눈 마주쳐 잠시 대화를 나눈 알부페이라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프랑스 아저씨, 고고학 전공을 하면서 수많은 침략 속에도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은 한국과 스코틀랜드를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리스본의 카트리나, 락스피릿과 함께 진득한 의리와 우정으로 무장한 그녀의 친구들 … 그 외에도 이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각각의 사람들과의 만남이 길든 짧든, 나를 스쳐간 이 모든 인연들은 어떤 식으로든 내게 생각거리들을 적어도 한 가지씩 남겨 주었다. 일기장에 차곡차곡 담긴 그 이야기들을 천천히 풀어가 보려 한다.
여행의 첫 시작점이었던 바르셀로나는 내게 일종의 고향이 되었다. 바르셀로나라는 도시 자체가 너무 좋아서라기보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이다. 나디아의 따뜻한 환대를 통해, 바르셀로나 위에 차곡차곡 쌓아 올려진 그녀의 사랑스러운 가족, 친구들, 동네 사람들과의 포근한 연결을 나도 함께하는 감사함을 누렸다. 10일간 나디아의 두 명의 룸메이트가 함께하는 아늑한 쉐어하우스에서 나도 일원이 되어, 함께 자고, 먹고, 생활하며, 그녀의 친구들 뿐 아니라, 아빠, 엄마, 할머니, 언니, 귀여운 조카들을 만났다. 우리는 무수한 대화를 나눴고, 나디아의 휴일에는 바르셀로나 근교의 작은 도시들로 짧은 로드 트립을 떠나기도 했다. 나디아의 친구들을 통해 나는 자매와 같은 아름다운 우정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웃으로 두고 함께 살아가는 일상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꼈다. 주말 아침, 매일 가는 동네 카페 야외 테라스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다, 창문이 열려있는 친구의 집을 올려다보고는, 문을 두드려 친구네 고양이를 들여다보는 귀여운 짓 따위를 나는 기껏해야 초등학생 이후로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하하. 그렇게 웃고 울고 포옹하며, 그 어느 때보다 깊고도 진한 영혼의 교감을 나눴다. 나디아는 천진난만한 얼굴과, 사회의 구석진 부분에 대한 깊고도 진지한 관심을 동시에 지닌 자유롭고도 아름다운 영혼이었다. 우리는 둘 다 삶에서 때로는 실수를 하기도 하고, 또 나름의 고민들을 통해 삶 속에서 배움을 얻으며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10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나디아와 생사고락의 단편들을 함께 나누며 그녀와 깊게 연결되었다. 바르셀로나에서 정말 눈부시게 아름답고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로 가득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저 나디아와 12살처럼 웃고 떠들던 평범한 하루의 순간들, 떠나기 전날 일요일 오후 나디아의 사랑스러운 부모님, 할머니와 함께했던 식사 시간이었다. 프랑스인인 나디아의 아버지께서 직접 해주신 끝내주게 맛있는 프렌치 요리를 먹으며, 말은 안 통해도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같이 깔깔댔던 기억이 난다. 떠나기 전날, 나디아의 부모님은 나를 꼭 안아주시며 이곳은 이제 너의 집이라며, 여행 중에 무슨 일 생기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셨다. 언어 교환 친구로 시작된 인연으로, 내게 바르셀로나에는 또 다른 부모님과 자매가 생긴 듯하다.
나디아와 바르셀로나 근교의 아름다운 소도시 Girona로 짧은 로드 트립을 떠났던 날,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도시에서 한국으로부터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언제나 내가 기억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나의 존재 그 자체로 사랑만을 주신 나의 사랑스러운 작고 소중한 할머니. 90세가 넘도록 허리가 꼿꼿하셨고, 애석하게도 말년에 두 눈과 두 귀는 어두우셨지만, 젊은 날의 기억들만은 생생하다고 하셨다. 부디 아름다운 무지개다리 너머에서, 할아버지, 둘째 외삼촌, 오래전 먼저 간 사촌 오빠를 만나 오랜 회포를 풀고, 편히 쉬시기를 염원했다. 가족들과의 통화를 통해, 나는 나의 여정 위에서 마음으로 함께하며, 할머니를 애도하고 보내드리기로 하였다. 종교는 없지만, 머나먼 땅의 아름다운 성당에서 할머니를 위한 기도를 드리고 애도했다. 감사하게도 그 순간을 함께했던 나디아의 따뜻한 포옹과 위로,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께서 나눠주신 따뜻한 포옹과 애도의 마음 덕분에, 나는 슬프지만 머나먼 땅에서도 외롭지 않게 기쁜 마음으로 할머니를 보내드릴 수 있었다.
최근 몇 달 동안 몇 번의 가족의 죽음을 가까이서 경험하며, 시간이 길든 짧든 우리의 삶은 어쨌거나 유한하다는 것, 언젠가 끝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한 진실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면, 어쩌면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기에도 삶은 너무나 짧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게 허락된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사랑을 느끼고 나누면서,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크든 작든 가치 있는 기여를 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게 나의 숙제가 될 것 같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정말 짧다는 메시지는 여행 중에 문득문득 내게 계속해서 다가왔다. 스페인 세비야에서 40분 거리 떨어진 카르모나라는 작은 마을에 며칠 머물렀을 때, 우연히 그곳의 박물관을 방문했었다. 그 박물관에서 나는 그 작은 마을이 신석기시대부터 로마제국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5000년 된 역사를 지닌 마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쩐지 동네를 둘러싼 성벽과 건물들이 예사롭지 않다 했다. 가늠도 안 되는 과거의 유물들을 바라보며, 나는 왜인지 충격과 경이로움에 휩싸였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그저 이 무구한 역사의 한 일부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거대한 시간의 흔적 앞에서, 우리의 찰나 같은 삶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새삼 그 오랜 과거부터 인류가 창조해 내고 일궈온 수많은 것들 앞에서 또 다른 경외감을 느끼며 나는 또 한 번 겸손해졌다. 나는 그렇게 스페인과 포르투갈 21개 도시의 길 위에서 수많은 삶들을 마주하며, 내 삶을 이뤄가는 생각의 조각들을 하나씩 발견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