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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난희 Sep 13. 2021

못밥

   

출근길 차 안 라디오에서 모내기가 한창이라는 뉴스가 나온다. 불현듯 유년시절 그리운 고향마을 시골 들판이 눈에 보이는 듯 그려진다.

“어이!,  자!”

하며 논 양끝에서 못 줄을 팽팽하게 붙잡고 못 줄 대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새 그 소리를 따라서 내 마음은 구불구불한 다랑이 논, 논둑으로 달려간다. 모내기를 하는 날, 논에는 물이 찰랑찰랑 하늘의 뭉게구름을 가득 담고 있다.  모내기를 마친 논은 푸른 싹의 작은 모가 둥글게 흐느적흐느적 선을 그리며 줄을 섰다. 모심을 준비를 하는 논에는 누렁이 소가 써레질을 한다. 모내기를 하는 논에서는 못 다발을 여기저기 길게 던지고 있다. 어떤 논에서는 못자리에서 모를 찌고 있다. 농로를 따라서 아기를 업고 젖 먹이러 가는 아이도 보인다.     


모내기하는 날, 내 어머니 길심씨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 떡을 찌는 큰 시루에 밥을 쪘다. 하지 감자 듬뿍 넣어 국물 자작하게 갈치조림도 했다. 영산강 하굿둑을 막기 전인 그때는 아침이면 고무 다라이 가득 생선을 머리에 이고 팔러 오는 행상이 있었다. 생선이 흔해서 지금처럼 비싸지도 않고 맛도 좋던 시절이었다. 그 행상에게서 갈치를 샀는지 시장에서 샀는지 기억은 없다. 하지만 모내기하는 날 먹었던 갈치조림이 어찌나 맛있었는지. 들판에 둘러앉아 함께 먹는 밥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찐 밥과 갈치조림, 거기에 다른 몇 가지 반찬과 그릇, 수저 등을 큰 광주리에 담아 리어카에 실었다. 주둥이를 막은 막걸리 주전자도 한 자리 차지했다. 길심씨는 리어카가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앞에서 끌었다. 리어카의 수평을 맞추느라 허리도 펴지 못한 채 구부정한 모습이었다. 나는 울퉁불퉁한 길에 흔들려 음식이 쏟아지기라도 할까 눈도 떼지 못하고 뒤에서 조심조심 밀었다. 경지정리가 안 된 들판은 지금의 바둑판 모양 같은 반듯한 형태에 비해 구불구불해도 멋이 있고 인정이 있었다.     


너른 논둑 풀밭에 점심이 차려졌다. 그날은 우리 논에서 모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 저 멀리 다른 논에서 일하는 사람도, 아기 젖 먹이러 온 아이들도 모두 불러 모았다. 누구네 논에서든 모내기하는 날은 잔칫날 같았다. 모를 심다 말고 나온 아짐, 아재들은 흙탕물로 뒤범벅이 되었다. 논에서 걸어 나오며 다리에 붙은 거머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떼어 길바닥에 패대기를 치기도 했다. 나는 진저리를 쳤지만 그렇거나 말거나 막걸리 한 사발에 밥 한 그릇이면 족한 얼굴이었다. 그때 둘러앉아 먹었던 감자 넣은 갈치조림이 어찌나 맛있었던지 난 모내기철이 되면 늘 생각이 난다.     


 그때는 일손이 모자랐다. 내 친구 열에 서넛은 아홉 살에 학교에 갔다. 동생들을 돌보느라 학교에 데리고 오는 친구도 있었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만큼 일손이 부족했었다. 요즘은 들판에 둘러앉아 밥 먹을 일이 없어졌다. 논농사 기계화율이 98%를 넘어서고 있다니 논에서 사람이 할 일이 줄었다. 새참이든 밥이든 이제는 먹을 수 없는 과거가 되고 말았다. 그리울 때면 좋은 재료에 더한 양념을 넣어 만들어 보아도 들판에 앉아 먹었던 못밥을 흉내 낼 수는 없었다.    


나이 오십의 중반을 훌쩍 넘었다. 그런데도 집에 손님 몇 사람 온다 해도 쩔쩔매다가 밖에서 해결하고 만다. 요즘 같으면 결혼도 안 했을 30대에 길심씨는 그 많은 음식을 장만하고 농사일에, 집안일까지 해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모내기하다 말고 들에 앉아 아기에게 젖을 물리기도 했던 그 시절 엄마들은 다 그렇게 살았다. 아기 젖을 물릴 때이니 20대, 30대가 아니었겠는가.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오늘 저녁에는 길심씨가 보내 준 하지 감자와 갈치 몇 도막 넣고 지져봐야겠다. 시골에서 올라온 같은 재료지만 그리운 그 맛을 낼 수 있을 런지 모르겠다.    


나에게 가장 맛있는 밥은 들판에 앉아 먹었던 못밥이다. 이제는 잃어버린 맛이다. 음식은 어디서, 누구랑, 언제 먹었냐가 중요하다. 같이 먹는 밥이 역시 맛있다. 함께 나눔의 의미는 크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반찬에 먹었다 하더라도.  “배고픔은 어떤 먹거리로든지 달랠 수가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먹었던 음식의 맛에 대한 그리움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황석영의 <밥도둑> 개정판 서문에서 읽고 크게 공감했다.


그 그리움은 수 십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지금 당장 그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나에게 이제껏 내가 먹어본 가장 맛있는 밥으로 꼽히진 않았을 것이다. 먹을 수도 없고 그날의 풍경을 재현할 수도 없어 가장 맛있는 밥으로 꼽힌다. 국민학교 시절 모내기하는 날 몇 번 먹었을 뿐이고 기계화가 되면서 금세 사라지고 말아서일 수도 있다. 맛이란 참으로 오묘하다. 그 맛이 아직도 입안에 구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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