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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난희 Mar 18. 2021

요리랄것도 없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음식


T.V 채널을 돌리다 깜짝 놀라 채널을 딱 고정시켰다. <아내의 맛>에 출연하는 배우 함소원의 중국인 시어머니가 수산시장 수족관에서 맨손으로 장어를 들어 올린다. 집에서는 잉어 요리를 위해 손톱으로 비늘을 박박 긁어낸다. 그에 반해 그녀의 시아버지는 낙지 한 마리를 어쩌지 못해 진저리를 치며 계속 손가락으로 건드리기만 할 뿐이다. 그걸 보는 순간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눈앞에 선히 보인다.     


나의 어머니 길심씨도 해산물 손질의 대가이다. 낙지탕탕이도, 생선회도 다 길심씨의 손에서 태어난다. 아버지는 보는 것도 싫어 드실 때만 나타난다. 낙지를 난도질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난 그런 거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며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내빼버리는 아버지는 고수다. 평생 남편 위해, 자식 위해 도마 위에서 낙지를 탕탕거리는 길심씨는 하수다. 아니 진정한 고수일지도 모른다.    


  길심씨는 딸, 사위, 손주 들이 내려오는 날엔 무조건 무슨 통과의례처럼 낙지탕탕이를 해 먹이려고 한다. 우리가 마당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어이, 황서방,  독천장으로 낙지 사러 가세" 

한다. 그럼 나의 남편, 큰사위 황서방이

"아버님도 같이 가시죠?"

"그럴까?"

아버지는 못 이기는 척하며 얼른 옷을 입고 나선다.     


시골 우리 집에서 차로 20~30분 거리에 있는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는 독천장이라고 상시 시장이 있고 5일장이 열리기도 한다. 영산강 하굿둑이 생기기 전에는 세발낙지가 유명했던 곳이다. 지금은 낙지음식 명소거리가 생겨 낙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 많다. 식당이 많지만 우리는 이곳, 식당에 가서 낙지요리를 먹은 적은 없다. 길심씨 단골 낙지 집에서 산낙지를 산다.     

“낙지다리 다 달린 놈으로 주쇼잉”

가격 흥정도 길심씨 몫이다. 우리는 아버지랑 구경만 한다. 낙지집 주인은 투명 비닐봉지에 바닷물을 담고는 커다란 고무대야에서 낙지를 잡아넣는다. 그리고 비닐봉지에 산소도 칙칙 주입하고 입구를 묶고는 다시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 준다.    


우리는 독천이 가까워 어려서부터 낙지탕탕이를 자주 먹곤 했다. 나는 낙지요리는 오로지 낙지탕탕이만 있는 줄 알았다. 낙지 요리로 낙지탕탕이, 낙지호롱이, 낙지 연포탕, 낙지볶음, 갈낙탕 등이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낙지탕탕이는 산 낙지를 먹기 좋게 잘라 회로 먹는 요리이다. 길심씨의 낙지요리는 예나 지금이나 무조건 낙지요리는 탕탕이다. 산 낙지를 칼로 탕탕 내리쳐 만든다 하여 '낙지탕탕이'라 이름이 지어졌다 하니 재밌기도 하지만 잔인하기도 하다.      


낙지탕탕이가 무슨 요리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요리는 아니다. 우리 집에서는 길심씨만 할 수 있는 요리다. 검정 비닐봉지를 거실 한가운데 놓아두고는 칼, 도마, 참기름, 참깨, 물 한 바가지를 준비한다. 이제 낙지탕탕이 요리를 한다. 거실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비닐봉지에서 낙지를 한 마리씩 꺼내어 물로 한번 헹구고는 한 손으로는 낙지머리를 잡고는 다른 한 손으로는 위에서 아래로 쭉 훑어 내린다. 8개의 낙지다리가 흐느적흐느적 춤을 춘다. 춤추는 낙지를 도마 위에 놓고는 탕탕탕탕 난도질을 한다. 낙지는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잘리고도 도마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길심씨의 손과 칼에 의해 다시 잡혀와 난도질을 당한다.     


그사이 우리는 상에 둘러앉아 젓가락을 들고 먹을 준비를 한다. 난도질을 당한 낙지들이 오목한 접시에 올리고 갓 짜온 참기름을 듬뿍 붓는다. 거기에 통 참깨는 손으로 쓱쓱 비벼 뿌려준다. 이러면 낙지탕탕이 완성이다. 길심씨는 열심히 탕탕거리고 우리는 열심히 먹는다. 낙지는 참기름과 참깨에 비벼지고도 접시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그놈을 접시 안으로 부지런히 끌어들이며 연신 입으로 가져간다. 입안에서도 꿈틀거리고 입천장에 들러붙기도 한다.     


길심씨의 낙지탕탕이는 신선한 재료에 자식에게는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먹이고 싶은 마음이 합쳐져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노란 참기름을 뒤집어 쓴 반들반들한 토막난 낙지들의 오도독 씹히는 맛과 씹히는 듯, 안 씹히는 듯 씹히는 고소한 참깨에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참기름이 합해져 그 맛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징그럽다고 도망가던 손주들도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홀려서 슬쩍 맛만 보겠다더니 이제는 그 맛에 빠져 안 불러도 달려든다.     


지쳐 쓰러져가는 싸움소에게 3~4 마리만 먹이면 벌떡 일어난다는 낙지를 먹고 우리는 싸움소처럼 벌떡 일어나 도회지의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또 지쳐 쓰러질 즈음엔 길심씨의 낙지탕탕이를 먹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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