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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난희 Sep 15. 2021

밥도둑 보다 더한 도둑

  

간혹 집에서 혼밥을 할 때가 있다. 나만을 위해 무언가를 하기는 귀찮다.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냉장고 문을 열어 이리저리 살피게 된다. 반드시 냉장고 어딘가엔 늘 그녀의 음식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마침 구석에 박혀있는 작은 병을 하나 발견했다. 밥도둑이 따로 숨어 있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이 아까운 것을 내버려뒀다니... 단박에 그녀 얼굴이 떠오른다. 그녀, 길심씨의 수고로움과 정성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반찬이 없을 때, 입맛이 없을 때, 소화가 잘 안될 때 요긴한 반찬이다. 안쪽에 남은 열무김치도 있다. 옳거니, 이 둘은 먹어보나마나 환상 궁합이다. 비벼 먹을 요량으로 참기름도 꺼냈다. 밥을 퍼서 식탁에 앉아 가만히 보니 모두 길심씨표다.     

  

밥도둑으로 두둑이 배를 채우고 나니 비로소 그날의 일이 어제의 일처럼 스쳐 지나간다. 몇 해 전 길심씨를 따라 고향마을 범굴샘 저수지에 간 적이 있다. 그 저수지에는 우리 마을을 굽어보는 월출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골짜기물이 흘러든다. 집의 고샅길을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잠시 미끈한 아스팔트를 지나니 풀이 부스스 무성하고 아스팔트가 무너진 울퉁불퉁 패인 길이 나온다. 그 길은 내가 알던 길이 아니었다.

마을 들녘 등가래 아래로 큰 길이 새로 나면서 인적조차 드문 길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그 아래로 또 더 넓은 길이 생겨 그 길 또한 옛 길이 되어버렸다. 두 개의 길이 새로 나는 동안 이 길은 좁아지고 패이고 있었다. 나의 중.고교 시절만 해도 하루에도 몇 차례 버스도, 큰 트럭도, 스쿨버스도 온갖 차량들이 분주히 다니던 길이었다. 길이 좁아진 것인지 내 몸집이 커진 것인지 길 양옆은 풀들이 오래된 낡은 아스팔트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가로수는 터널을 이루었다.‘빨강머리 앤’에서 나오는 길처럼 느껴졌다. 앤이라면 분명 근사한 이름을 붙여 주었을 텐데 나는 도무지 적당한 길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범굴샘을 지나고 길에서 벗어나 산으로 접어들어 둑으로 올라가니 저수지가 한 눈에 들어 왔다. 그 옛날 내가 알던 커다란 저수지는 어디 갔을까? 넘실거리던 물은 또 어디로 갔는가? 앙상하게 드러난 나무의 뿌리들이 가장자리에 붙어서 그 계절의 강수량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도시의 빌딩숲에서는 가뭄을 모른다지만 골짜기 숲 아래 저수지는 몸으로 갈증을 말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만 해도 보트에 줄을 매어 띄우고 놀았던 곳인데 그 많던 물은 어디로 갔는가. 수문을 끼고 돌아 저수지 가장자리의 아래로 내려갔다. 길심씨는 지나쳐간 산의 둥근 무덤처럼 굽은 허리로 익숙하게 앞장섰다. 그녀만의 비밀장소이니 그럴밖에. 나는 더듬더듬 따라 갔다. 으슥한 곳이라 못미더웠던지 한참 후 아버지도 뒤따라 왔다.   

     

바닥흙이 드러난 저수지 가장자리에 앉아 어머니는 허벅지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고무줄로 허벅지를 꽉 묶어 단단히 무장을 했다. 나뭇가지를 베어다 불에 달구어 묶어두었다가 모양새를 잡아 거기에 그물망을 대어 손수 만든 뜰채를 들었다. 타원형에 기다란 손잡이가 있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길심씨만의 뜰채이다. 나는 양동이를 들고 뒤를 따랐다. 길심씨는 나뭇잎이 쌓인 저수지 가장자리 물가 풀숲에 뜰채를 넣고 더듬어 들어 올렸다. 검불과 함께 작은 무언가가 호도독, 호도독 튀어 올랐다. 작은 새우, 토하(土蝦)였다. 토하(土蝦)는 오염되지 않은 계곡이나 연못, 저수지 등 1급수에서만 서식한다. 전라도 사투리로 일명“또랑 새비”이다. 흑갈색으로 일반 민물새우와는 조금 다르다.     

토하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아우성을 쳤다. 하지만 우리의 용감한 길심씨에게 걸린 이상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길심씨는 새우를 잡아 양동이에 담고는 뜰채는 돌부리에 탁! 소리나게 내려쳐서 검불과 이물질을 털어냈다. 뜰채를 더듬어 올릴 때마다 토하가 잡히는 건 아니었다. 수없는 더듬이질을 하여 건져올려 한 마리 두 마리 모아서 밥도둑을 만들었다니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고 경건해지기까지 했다.     

“엄마, 그란디 이렇게 한 마리, 두 마리 씩 밖에 안 나와?”

“그라제. 안 나올 때도 많제. 입에 밥 들어갈라믄 뭣이 쉬운 것이 있간디”

앉아서 받아만 먹을 때는 몰랐다. 길심씨는 저수지를 한 바퀴 돌았다. 숱한 수고에도 새우는 고작 한 종지도 되지 않았다. 여러 번의 저수지 나들이 끝에 잡은 새우는 소금에 절여 모아 두었다가 찹쌀밥, 생강, 마늘, 다진 파 고춧가루, 깨소금 등 갖은 양념을 하여 토하젓을 만든다. 4~5일 정도 삭히면 찹쌀밥 알갱이도 사라지며 맛있는 귀한 밥도둑이 된다.  

   

어려서부터 토하젓이 밥상에 올라왔지만 그때는 그맛을 몰랐었다. 결혼하고 나이가 들면서 그 진가를 알게 되었다. 어느 날 길심씨가 먹는 방식대로 토하젓으로 비빈 밥 한 숟가락에 그녀가 직접 기른 재콩나물 무침을 얹어 먹으니 그 맛은 밥을 부르는 천상의 맛이었다. 젓갈류라면 아예 입에 대지도 않던 남편도 토하젓만은 예외이다. 절대 먹지 않던 음식도 누군가가 맛있게 먹는 걸 보면 먹어보기도 한다. 그래서 밥은 같이 먹어야 맛있는 것이다. 길심씨와 나, 동생이 맛있게 먹는 걸 보던 남편이 먹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토하젓 맛을 아는 영암사람이 되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도 자식은 언제나 이기적인 존재다. 길심씨의 정성도 잊어 버리고 냉장고에 쳐박아 두었던 토하젓을 꺼내 싹싹 비벼 먹고 배부른 후에야 어미를 생각한다. 감사에 무감각해져 밥도둑보다 더한 도둑이 되어버린 내 마음도 설거지를 하며 싹싹 씻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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