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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난희 Oct 13. 2021

가는 길, 오는 길

친구들과의 둘째 날, 강진 백련사에 갔다. 고즈넉한 절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백련사의 자랑인 천연기념물(제151호)로 지정된 동백나무숲보다도 나를 더 사로잡은 건 '다산초당 가는 길'과 '백련사 가는 오솔길'이다. 이 길은 같은 길이다. 백련사에서는 '다산초당 가는 길'이고 다산초당에서는 '백련사 가는 오솔길'이다. 백련사와 다산초당이 오솔길로 이어져 혜장선사와 다산 정약용이 서로 유학과 불교를 주고받으며 아름다운 차 인연을 맺은 길이라고 한다.

여행은 누구와 하는지가 중요하다더니 그 말은 진리다. 가족들과 같이 왔을 때와는 달리 친구들과 함께 오니 나는 다른 눈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백련사 만경루 앞의 웅장한 배롱나무에 같이 반하고 만경루에 올라 창으로 보이는 액자 프레임 같은 멋진 풍경에 반했다. 백련사를 두루 천천히 돌아보고 만경루 아래의 '만경다설'에서 녹차를 마셨다. 보살님이 정성껏 우려 준 차를 마시며 백련사의 동백꽃의 아름다움을 말로 전해 들었다. 말로만 들어도 그 꽃의 아름다움이 처연하게 가슴으로 들어왔다. 떨어진 꽃은 달려 있는 꽃을 바라보고, 달려 있는 꽃은 떨어진 꽃을 바라본다는 그 말이 안 보고도 그려졌다. 떨어지고서도 그 아름다움을 그대로 유지한 채 달려 있는 꽃을 한동안 바라볼 수 있다니 그 표현이 참으로 기가 막히다.  


 혜장선사와 다산이 마셨을, 마셨다고 믿고 싶은 그 차를 마시고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동백나무숲을 지나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에는 백련사에서 재배하는 차밭과 야생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친구 셋이 가는 길에 한 친구가 신발이 불편해 둘이 다녀오라고, 기다리겠노라 손을 흔들었다. 둘이서 오솔길을 걸었다. 혜장선사와 다산이 걸어 오갔다고 생각하니 나도 그 두 분의 마음이 조금은 느껴지기도 했다. 나란히 말고 뒤서거니 앞서거니 서로의 뒷모습을 보며 걷다 보니 다산초당에 다 왔다. 


다산초당으로 가는 오솔길 끝에는 '백련사로 가는 오솔길' 팻말이 서 있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길이 시작되는 오솔길이다. 친구랑 같이라서 팻말에 그득히 쓰여있는 그 이야기가 더 깊이 들어왔다. 다산초당에서 문화해설사를 만나 잠깐 해설을 들으며 땀을 식히고 백련사 가는 길로 다시 뒤돌아 걸었다. 중도에 남아 있는 친구가 마음에 걸려 서둘러 걷는데 마침 백련사로 돌아가 있다고 했다. 백련사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는 만경다설에서 마신 작설차 향을 떠올리며 하늘과 바람과 놀고 있다며 소식을 전했다. 마음 편히 오라는 말일 터였다.  

찌뿌듯한 하늘이 맑게 갠 어느 봄날, 냉이 밭에 하얀 나비가 팔랑거리자 다산은 자기도 모르게 초당 뒤편 나무꾼이 다니는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들판이 시작되는 보리밭을 지나며 그는 탄식했다. "나도 늙었구나. 봄이 되었다고 이렇게 적적하고 친구가 그립다니." 백련사에 혜장선사(惠藏禪師)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벗 될 만한 이가 없는 궁벽한 바닷가 마을에서 혜장은 다산에게 갈증을 풀어주는 청량제 같은 존재였다. 


혜장은 해남 대둔사(大屯寺) 출신의 뛰어난 학승이었다. 유학에도 식견이 높았던 그는 다산의 심오한 학문 경지에 감탄하여 배움을 청했고, 다산 역시 혜장의 학식에 놀라 그를 선비로 대접하였다. 두 사람은 수시로 서로를 찾아 학문을 토론하고 시를 지으며 차를 즐기기도 했다. 혜장이 비 내리는 깊은 밤에 기약도 없이 다산을 찾아오곤 해서 다산은 밤 깊도록 문을 열어 두었다고 한다. 


다산과 혜장이 서로를 찾아 오가던 이 오솔길은 동백 숲과 야생차가 무척 아름답다. 그러나 이 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친구를 찾아가는 설렘일 것이다. 

보고 싶은 친구를 가진 기쁨, 친구를 찾아가는 길의 행복 

                                                                               '백련사(白蓮社) 가는 오솔길'


백련사는 여러모로 깨달음을 주는 곳이었다. 이곳은 11월부터 동백꽃이 피어서 3월 말 만개하면 고즈넉한 숲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 꽃이 통째로 떨어져 바닥을 수놓으면 우리는 또 백련사를 거닐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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