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친구들이 찾아왔다. 이게 얼마 만인가. 길심씨가 사는 시골집에 내 친구들이 찾아온 건 수십 년 만이다. 고교시절에도, 대학시절에도 가끔 친구가 온 적은 있었지만 그 후로 떠나 살면서 그럴 일은 없었다. 영암 버스터미널로 마중을 나갔다. 작은 캐리어를 옆에 두고 두리번거리고 있는 그네들을 발견하자 차 안에서 나도 모르게 저절로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시골 읍내에서 멀리서 날 찾아온 친구들을 만난다는 것은 세월을 거슬러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무척이나 반갑고 색다른 느낌이었다.
친구들을 태우고 집으로 가는 길에 영암의 기찬랜드를 한 바퀴 휘~ 돌아 나와 우리 동네로 향했다. 오래된 벚나무 터널을 지나 마을 앞 등가래 들녘을 가로질러 길심씨네를 지나쳐 동네 안으로 올라갔다. 정자 유선각, 마을회관을 지나면서 나는 마을해설사라도 되는 양 저절로 말이 술술 튀어나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내 고향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그득했나 보다. 집집마다의 사연과 유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을에서 내려와 길심씨네 고샅길에 차를 주차하니 성수씨가 소나무밭에서 잡풀을 정리하고 있다. 집으로 들어가는 고샅 길가에 서 있는 키 큰 맨드라미와 키 작은 꽃들이 서울에서 온 낯선 이들을 겁도 없이 반긴다. 소나무밭에서 내려오며 아버지는 반가우면서 어색하게 친구들을 맞이했다. 아버지의 난감한 표정을 보니 마음 한 쪽이 쿵 내려앉았다. 아버지는 내가 중2 때 교통사고로 뇌 수술을 두 번씩이나 받고 난 후 그 후유증으로 잘 모르는 이들과의 대인관계에 서투르다.
"멀리서 왔겄소잉. 놀다 갔쇼"
어색한 한 마디를 했다.
연기가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굴뚝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섰다. 길심씨는 굽은 허리로 새 집 아궁이에 생선을 굽고 부뚜막의 하얀 백솥에서는 고구마와 밤이 부글부글 익어가고 있었다. 석쇠 위의 조기가 금세 구워지며 회색 연기와 함께 구이 냄새가 마당으로 풀풀 날렸다. 아버지는 헌 집으로 들어가고 나는 친구들에게 새 집을 안내하고는 헌 집 부엌으로 달려가서 준비해 둔 반찬을 담고 밥을 퍼서 새 집으로 날랐다. 헌 집에도, 새 집에도 소박한 한 상이 차려졌다. 길심씨가 신경 쓸까 봐 친구들이 오기로 한 전날에야 잠시 집에 들렀다 집 구경만 하고 따로 나가서 점심을 사 먹겠다고 했더니
"천리길 내 집에 온 손님인디 입은 다시고 가야제. 다른데 가도 별 반찬 있다냐. 있는 반찬하고 부삭(아궁이)에다 조구(조기) 구워서 먹으면 되제."
했다. 맞는 말이었다.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는 길심씨의 평소 말처럼 어른의 말에 따라 멀리서 온 친구들과 함께 거실에 앉아 월출산을 바라보며 점심상을 마주하니 괜스레 가슴이 뜨듯해졌다.
단출한 한 끼지만 맛있게 시골 밥을 먹었다. 식후 아궁이 솥단지에서 밤과 고구마 가져다 먹으며 본 지 오래지 않았지만 실로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즐거움을 나누었다. 큰 딸아이의 중학교 학부모 모임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고 이제 시골에 와서 한 지붕 아래 같은 바람을 쐬고, 같은 하늘의 같은 하얀 뭉게구름을 바라보고 있자니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대단하고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학창 시절의 친구보다 더 편하고 속내를 내 보일 수 있는 소중한 인연에 감사한 생각이 샘솟았다.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문득 먼 곳에서 친구들이 찾아와 만나고 보니 학창 시절에 배운 한 구절이 떠올랐다. 「논어」에서 공자가 '배움의 즐거움' 다음으로 이야기한 두 번째 즐거움이다. 이는 벗이 먼 곳을 찾아가는 즐거움과 설렘, 먼 곳에서 찾아오는 벗을 기다리는 즐거움과 설렘 등 친구를 향한 서로의 많은 감정이 포함된 말일 것이다. 신기한 일이다. 그동안 잊고 살았는데 이 구절이 저절로 떠오르다니.2박 3일의 즐거움을 예약받아 집을 나서는 길에 친구들은 한사코 뿌리치는 길심씨의 호주머니에 두터운 현금을 깊이 찔러 주었다. 나는 가슴에 뭉클 피어오르는 따스한 느낌으로 가만히 차의 시동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