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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난희 Oct 12. 2021

먹는 재미보다 잡는 재미가 큰 것이여!

"거기까지 갈라먼 징한디 딸 있응께 오늘은 범굴새암(범굴샘)으로 새비(새우)잡으러 갈라네."

"딸 차 타고 갈라고?"

"그람. 흐흐흐."

"좋겄네. 딸이랑 갔다 오소."

아침 밥상머리에서 성수씨와 길심씨가 주고받은 이야기다. 


나는 설거지를 하고 길심씨는 마당에서 새우(토하) 잡으러 갈 준비를 한다.  길심씨의 노랫가락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오랫동안 다닌 길이니 질린 만도 한데 신이 난 모양이다. 길심씨가 손수 만든 뜰채 2개가 벌써 나와 있다. 

"뜰채가 두 개네."

했더니

"너도 잡는 맛을 봐야제."한다. 

집에서 멀지 않은 길이지만 허리가 굽은 길심씨를 차로 호동 저수지 아래 범굴샘으로 모셨다. 아주 예전엔 호랑이가 나오는 샘이 있었다 해서 범굴샘으로 불리는 그곳은 지금도 제법 으슥한 곳이다. 겁이 없고 용감한 길심씨도 범굴샘에는 혼자 가지 않는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풀이 우거진 냇가로 내려갔다.


1급수의  맑은 물 풀숲 음지에 사는 토하를 뜰채로 더듬어 올리며 길심씨는

"너도 해봐라! 먹는 재미보다 잡는 재미가 큰 것이여."

한다. 나도 장화를 신고 텀벙거리며 뜰채를 들어 올린다.

"엄마랑 이렇게 토하를 같이 잡게 될 줄은 몰랐네."

하니 우리의 길심씨는 

"엄마가 가고 나면 이것이 또 추억으로 남겄제."

하며 의미심장한 어록을 남긴다.  '가고 나면' 이라는 말이 가슴에 딱 얹힌다. 나는 길심씨가 오로지 먹는 재미, 자식에게 나눠주는 재미에 빠져 욕심으로만 다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잡는 재미가 큰 것이라니 역시 길심씨는 가끔씩 나를 놀라게 한다. 


영암의 특산물로 유명한 토하젓은 영암군의 금정면에서 자연 생태 방식으로 양식한 토하로 토하젓을 만들어 판매한다는데 군서면에 사는 길심씨는 자연에서 그대로 얻는 토하로 젓을 담근다. 그러니 맛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어느 가을 많이 잡힌 날엔 초무침을 해 드셨다고도 한다. 여러 번에 걸쳐 잡아 온 토하는 염장을 해 두었다가 찹쌀죽을 넣어 갖은양념을 하여 길심씨표 토하젓이 탄생한다 



뜰채로 풀숲을 더듬으니 토하들이 알고 금세 후다닥 모두 도망을 갔다. 영리한 녀석들이다. 오랜만에 온 범굴샘에서 나는 어릴 때에 '비틀이'라고 불렀던 다슬기를 잡았다. 다슬기도 제 몸과 같은 빛깔의 이끼 밑에 숨어 있다. 손으로 더듬으니 하나, 둘 잡힌다. 잡다 보니 어느새 잡는 재미가 느껴진다. 길심씨가 말하는 먹는 재미보다는 잡는 재미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길심씨는 이미 먹는 재미 보다는 잡는 재미가 크다는 것을 오랜 세월 토하를 잡으면서 터득했다. 오늘 또 길심씨에게서 한 수 배운다. 뭐든 오래 길게 하려면 잡는 재미를 알아야 한다.  잡는 재미까지 들어간 길심씨표 토하젓은 우리에겐 언제나 최고다.


얼마 후면 이 토하로 만든 토하젓을 길심씨는 또 주실 것이다.

"아나 이거 갖다 먹어라. 맛있게 되았드라." 

"우와, 엄마 맛있게 먹을께이잉."

"그래에 맛있게 먹소. 그라면 되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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