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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난희 Oct 14. 2021

기다림

"가자! 뭐하냐?"

어디 갈 일이 생기면 성수씨, 길심씨는 당장 옷을 갈아입고 앉아 날 눈으로는 좇으며 입으로는 몇 번씩 재촉을 한다. 오늘도 길심씨는 아침을 먹자마자 한의원에 가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급할 것도 없고 예약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니건만 해야 할 일을 앞에 두고는 안절부절이다. 나는 시간을 정한다.

"엄마, 9시 40분에 나가네잉. 9시 40분! 알았제."

이렇게 단단히 못을 박아 두어야 한다. 그래야 뒷탈이 없다.


이러고 나 길심씨는 느긋하게 빨래를 주무르고, 마당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손질을 한다. 나는 설거지를 하고 나갈 준비를 한다. 그러고도 길심씨는 시간이 되기 전에 마당을 나가 고샅길 끝의 차 옆에 앉아 소나무를 바라보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정한 시간이 되지 않았기에 입 밖으로 재촉의 말은 꺼내지 않는다.

지난여름 시골살이 중 초반에는 외출을 할 때면 부모님도 나도 옥신각신 목소리가 커졌다. 어디를 가든 마을 밖으로 나가려면 내 차가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계속 가자고 재촉을 하고 나는 조금 있다 가자고 기다리라 하고 목소리를 키웠다. 그러다가 시간을 정해 알려드린 이후부터는 불협화음이 없어졌다.


부모는 늘 한없이 기다리는 존재다. 나도 서울에선 내 아이들이랑 같이 외출할 때면 기다린다. 남편은 더 빨리 준비하고 기다린다. 그러나 우습게도 여기서는 부모님이 늘 날 기다린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자식은 자식이고 부모는 부모인 것이다. 부모님과 시골살이 중 가끔 나는 깜짝 놀란다. 내 나이가 얼마인데 부모님 앞에서는 나이도 잊고 자식이 된다. 아침에도 내가 늦게 일어나면 두 분은 기다린다. 내가 서울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듯.


부모는 자식이 태어나 옹알이를 하면 뒤집기를 기다리고 뒤집기를 하면 기어 다니기를, 또 서기를, 또 걸어 다니기를 기다린다. 아기 때는 그때가 되기를 소리 없이 기다리지만 커가면서는 욕심을 가지고 기다린다. 욕심이 들어간 기다림은 그 기다림이 바람으로 변해서 자식을 힘들게도 한다.


어제는 구림마을에 있는 '월요 카페'에서 글을 썼다.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의 카페였다. 밭 가운데 홀로 서있는 한옥카페로 음료 맛도 좋고 분위기도 깔끔하고 정원의 푸른 잔디도 감나무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엊그제 다녀간 친구들이랑 이 카페를 같이 못 간 것이 못내 아쉬울 만큼 훌륭했다. 마음 편히  글을 쓰다 보니 벌써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서둘러 돌아와 고샅길에 주차하는데 휴대폰 벨이 울렸다. 길심씨였다.


방에 들어서니 성수씨가 한 걱정을 하며 기다렸다고 길심씨가 성수씨를 놀린다. 부모는 어쩌면 자나 깨나 자식을 기다리는 존재다. 지난여름 길심씨의 팔순 기념으로 흑산도 여행 갔을 때도 아침 일찍 일어난 부모님은 딸, 사위들이 일어나길 기다리고 우리는 또 우리 아이들이 일어나길 기다렸다. 어쩌면 부모는 젊어서도 늙어서도 한없이 자식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존재다. 오늘 밤에도 길심씨는 자다 깨서는 내가 빨리 자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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